이 대표 2월 비례정당 설립 관여 정황…‘적통’ 더불어시민당보다 ‘친조국’ 열린민주당이 약진
더불어민주당발 비례정당 논의는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면서 바로 물밑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졌다. 조국 수호 집회를 주도한 개싸움국민운동본부(개국본)와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의중을 어깨 너머 읽고 시작했다는 얘기다.
3월 8일 오후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열린민주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이근식 신임 당대표와 손혜원, 정봉주, 박홍률, 김대성 최고위원(왼쪽부터)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해찬 대표는 3월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을 탈당한 사람들이 유사한 당명의 정당을 만들었는데 더불어민주당을 참칭하지 말 것을 부탁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출신인 정봉주 전 의원과 손혜원 무소속 의원 등이 주도하는 열린민주당을 저격한 것으로 읽혔다.
이어 이해찬 대표는 “비례정당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가 확정돼 우리 비례후보 20명 명단이 여기에 올랐다”며 “더불어시민당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전당원 투표로 나온 유일한 비례연합정당이자 문재인 정부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뒷받침할 유일한 당”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열린민주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해찬 대표에 대해 당 안팎에선 곱지 않은 시선이 감지된다. 이 대표가 비례정당 만들기에 관여했다는 정황이 나오고 있는 까닭이다. 2월쯤 현직 국회의원에게 더불어민주당 비례정당 비례대표 후보 영입 제의를 받았던 한 인사의 말이다.
“당시에 이미 비례정당 구성이 시작되고 있었다. 언론에서 연일 ‘더불어민주당은 안 할 것’이란 말이 돌았기에 영입 제의가 들어왔을 때 이상했다. 그래서 ‘대체 누가 이 기획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날 영입하려던 의원은 ‘이 대표의 의중’이라고 답했다.”
이 인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비례정당 논의가 시작됐을 때 중심에 있었던 건 개국본과 손혜원 의원이었다. 하지만 둘의 동행은 오래 가지 못했다고 한다. 방송인 김어준 씨가 뒤에 선 것으로 알려진 개국본과 손 의원 간 파열음이 나기 시작했고, 여기에 정봉주 전 의원이 등장했다. 정 전 의원은 손 의원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건넸고, 둘의 의기투합은 열린민주당 설립으로 이어졌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원래 손혜원 의원과 정봉주 전 의원 사이는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개국본과 손 의원 사이의 냉랭해진 분위기를 정 전 의원이 잘 파고 들었다. 당시 당 내부에선 조국 수호 집회에 대한 고마움도 있고 해서 은근히 ‘개국본에 조금 더 힘을 실어주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결국 무게추가 개국본으로 기울자 동력을 잃던 손 의원과 버림 받은 모양새였던 정 전 의원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 떨어졌다”고 했다.
이렇게 탄생한 열린민주당은 곧장 당 로고를 발표하며 세간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손혜원 의원의 손을 거친 밝은 이미지의 로고는 호평을 받았다. 정의당에게 빼앗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색을 살린 점도 지지자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열린민주당이 집권 여당인 민주당보다 선명성 경쟁에서 앞서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민주당과 그 적통을 이어받은 더불어시민당이 아직까지 조국에 대한 당론을 정리하지 못한 모양새를 보이는 반면 열린민주당은 아예 친조국 성향 인사들을 비례대표 후보로 올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비리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최강욱 전 청와대 비서관이 2번을 받았고, 조 전 장관과의 친분을 널리 알린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4번을 받았다. 조 전 교수와 가까운 황희석 전 법무부 검찰개혁추진지원단장도 8번을 받았다.
상황이 이러니 여권 내에서조차 의견이 갈리는 모습이다. 한 민주당 당원은 “열린민주당은 친문·친조국을 내세운 비례정당에 불과하다. 정치를 친문·친조국으로 하는 건 명분도 없어 보인다”며 “더불어시민당이 구색 맞추기라고 보일지라도 민주당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비례정당이라 정통성 차원에서는 더불어시민당에 투표하는 게 맞다”고 했다.
반대로 한 열린민주당 지지자는 “나보다 더 세게 내가 내고 싶은 목소리를 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앞 번호에 있어서 열린민주당을 찍을 예정”이라고 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