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혐의 증거 부족 반면 피해자 주장 일관…피해자 측 변호 맡은 강용석 논란도 ‘변수’
12시간여의 수사를 받고 경찰서에서 나올 당시의 김건모 표정은 비교적 밝았다. 그렇지만 경찰의 ‘기소 의견 검찰 송치’ 결정으로 상황은 그에게 불리하게 됐다. 사진=연합뉴스
#기소의견 근거 ‘피해자 일관된 진술’
수년 전 벌어진 사건이고 CCTV 증거도 없다. 그렇지만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은 가장 결정적인 증거다. 증거가 되려면 일관된 진술이어야 하며 다른 증거들과 충돌이 없어야 한다. 피해자 A 씨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를 통해 이 내용을 폭로한 시점부터 경찰 수사 기간 내내 일관된 진술을 유지했다. 피해자 진술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김건모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시나리오를 준비한 뒤 완벽하게 암기 습득해서 경찰 조사에 임할 수도 있다. 실제로 간혹 이런 무고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수사기관에선 완벽한 시나리오를 매번 똑같이 진술한다고 ‘일관된 진술’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김건모의 경찰 수사 결과가 무혐의로 나올 가능성이 제기됐던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성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관계자는 “이미 수년 전 발생한 사건이라 성폭행 피해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한다고 해도 경찰을 설득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얘기한다. 단순히 시나리오를 준비해 외워서 되는 일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 검찰 관계자는 “사건 직후 친구들과 나눈 관련 대화나 문자, 자신의 내밀한 속내를 적은 일기 등이 있는 게 아니라면 진술이 증거 능력을 가질 만큼 구체적이고 탄탄해야 한다”고 밝혔다.
#‘ㅋㅋㅋ‘ 문자와 ‘배트맨’ 셔츠의 유불리
피해자 진술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신빙성을 무너트릴 증거가 필요하다. 경찰 소환 조사를 앞두고 김건모 측도 그런 ‘증거’를 준비했다. 대표적으로 2017년 4월 초 피해자 A 씨가 김건모에게 보낸 “ㅋㅋㅋ같은뱅기탔오ㅋㅋㅋㅋㅋ”라는 짧은 문자였다. A 씨가 주장한 성폭행 시점이 2016년 8월임을 감안하면 8개월 뒤에 발송된 문자다. 사건 이후 고통스러웠다는 진술과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자 내용이다. 특히 ‘ㅋㅋㅋ’라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그렇지만 문자는 하나 더 있었다. 다시 1년여가 흐른 뒤인 2018년 3월 피해자 A 씨는 당시 ‘미투’가 불거진 것을 언급하며 김건모에게 사과할 마음이 없는지를 묻는 문자를 보냈다. 이는 성폭행 혐의를 부인하는 김건모에게 불리한 증거다.
SBS ‘미운우리새끼’를 통해 유명해진 ‘김건모 배트맨 셔츠’는 2016년 12월에 처음 제작됐지만 김건모는 그 이전부터 배트맨이나 슈퍼맨 등 슈퍼히어로가 프린트 된 셔츠를 즐겨 입었다. 2016년 10월 방송된 ‘미운우리새끼’ 방송에 김건모가 일반적인 배트맨 티셔츠를 입고 출연한 모습. 사진=SBS ‘미운우리새끼’ 방송 화면 캡처
배트맨 셔츠의 제작 시점도 결정적 증거로 거론됐다. A 씨가 성폭행을 당할 당시 김건모가 배트맨 셔츠를 입고 있었다고 진술한 터라 이는 ‘사건 당시에 대한 구체적 묘사’에 속한다. 그런데 방송에서 김건모가 즐겨 입는 배트맨 셔츠의 제작자가 해당 셔츠를 2016년 12월에 처음 제작했다고 밝혔다. 그 셔츠가 2016년 8월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김건모는 그 전부터 배트맨, 슈퍼맨 등 슈퍼히어로가 프린트된 셔츠를 즐겨 입었다. 성폭행 사건 당시 SBS ‘미운우리새끼’를 통해 유명해진 ‘김건모 배트맨 셔츠’는 세상에 없었지만 김건모가 일반적인 배트맨 셔츠를 입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또한 김건모 측은 문제의 그날 술집에서 결제한 100만 원의 신용카드 결제 내역도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A 씨의 진술을 뒤엎을 만큼 결정적이진 못했다. 그 사이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김건모 차량 GPS 기록을 분석하는 등 A 씨와 김건모의 진술을 자세히 들여다봤고 결국 기소 의견 송치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검찰 기소 여부, 그리고 법원…아직 갈 길 멀어
이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다. 검찰 수사 역시 김건모에게 불리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 수사에서 피해자 A 씨의 일관된 진술을 뒤집지 못한 김건모 측에게 어떤 반격 카드가 남아 있는지도 미지수다. 물론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보낸 사건을 검찰이 불기소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워낙 여론이 집중된 사건이라 검찰 역시 상황을 뒤집을 확실한 뭔가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기소가 불가피해 보인다.
검찰이 기소를 결정하면 김건모 성폭행을 둘러싼 논란은 법정 다툼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게 된다. 다만 양측의 진술이 워낙 상반된 데다 관련 증거를 두고 다양한 논란이 제기됐던 만큼 치열한 법정 다툼이 예상된다. 게다가 이번 사건을 폭로하고 변호까지 맡은 강용석 변호사를 둘러싼 논란 등 변수도 많은 재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