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는 30분짜리 동영상 대체…실습도 없는데 수업료는 환불 불가
‘코로나대학생119’가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앞에서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학의 실질적인 대책 수립과 입학금·등록금 환불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다큐로 수업 대체, 내 수업료는 어디로?
코로나대학생119는 3월 20일부터 31일까지 등록금 일부환불 및 입학금 전액환불에 대한 대학생들의 신청을 받았고 전국 550여 명의 대학생들의 사례를 모았다.
H 대학 20학번 김 아무개 학생은 “사이버 대학을 다니는 건지 일반 대학을 다니는 건지 헛갈린다. 수업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실습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면 강의에 비해 수업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수업 방침은 이해하지만 당연히 그에 따른 수업료 환불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B 대학 19학번 박 아무개 학생은 “교내 서버 다운으로 인해 제 시간에 강의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실시간 온라인 수업에 들어가면 마이크를 켜고 게임을 하거나 혼잣말로 욕하는 학생도 있는 등 전혀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컴퓨터 마이크를 켜 놓은 줄 모르고 온라인 수업 내내 방에서 성관계 하는 소리를 중계(?)한 사례도 있었다. 또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된 강의에서는 학생 외에 외부인이 무단으로 들어와 일베 용어를 남발하며 무례한 댓글을 달아 강의 진행에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일부 대학에선 교수의 실시간 강의 대신 동영상 자료만 올라오거나 오래전에 녹화된 강의 동영상 등이 올라오는 등 수업 질이 심각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나마 동영상 자료라도 올려놓은 강의는 다행이다. 준비가 안됐다는 이유로 강의가 올라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실습이 필수적인 수업들도 모두 이론 수업으로만 대체되고 있다.
D 대학 18학번 이 아무개 학생은 “대부분의 교수들이 1시간 15분 수업을 30~40분 동영상으로 마무리했다. 한 교수는 유튜브 다큐 동영상 링크로 1주 수업을 대신했다” 고 전했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대학들은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작스레 온라인 강의를 진행해 기존 대면 강의에 비해 질적 저하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노원지역 대학생들이 광운대학교 앞에서 대학생 입학금·등록금 환불운동과 함께 수업 여건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신입생 입학식·OT 없는데…
특히 20학번 신입생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입학식이나 오리엔테이션(OT)도 없이 첫 대학생활을 온라인 강의로 시작했다. 신입생들은 전공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무작정 과제로 대체되는 강의에 부담을 느낀다고 토로하고 있다. 한 신입생은 “코로나19로 인해 입학식과 새터 같은 행사도 진행되지 않았는데 입학금은 어디에 쓰이는 건지 궁금하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재수를 해서 올해 신입생이 된 또 다른 학생은 “몇 주째 온라인 강의만 듣다보니 여전히 인강(인터넷강의) 들으며 입시준비 하는 기분이다. PPT화면을 띄워놓고 녹음한 영상을 온라인 강의라고 업로드하는 교수도 있었다”며 실망을 드러냈다.
실습이 필수인 학과 학생들의 불만은 더 심하다. 패션디자인과에 재학 중인 H 대 19학번 학생은 “실기 수업에 필요한 재봉틀 등이 있는 강의실 사용료가 포함된 등록금을 지불했는데 온라인 강의로 대체된다면 환불받는 것이 마땅하다. 교수님의 시범을 직접 보지 못하는 점과 피드백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점 등이 이해도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실기 수업이 많은 음대생이나 미대생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실기 수업이 제일 많은 과인데 일대일로 만나서도 안 된다, 연습실 사용도 안 된다며 화상채팅이나 온라인 강의실을 통해서만 수업하라고 공지가 떴는데 레슨이나 합주, 연주 수업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예체능 계열의 경우 전공 수업의 대부분이 이론이 아닌 실습으로 배정되어 있어 교수와의 대면 강의가 필수적이다.
코딩수업 등의 컴퓨터 실습이 많은 공대 역시 수업의 절반 이상이 실습인데 교수가 프로그램 사용법을 일일이 보여주며 시작해야 하는 구조상 아예 시작도 못 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N 대 15학번 사진학과 학생은 “사진 수업에서 카메라와 조명 등 기존에 학교에서 제공하던 고가의 장비를 쓸 수 없는 상태다. 장비에 대한 사용료도 등록금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과제 제출을 위해 추가로 돈을 들여서 장비를 구입해야 하니 수업료 환불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실습이 많은 학과일수록 등록금이나 수업료가 더 비싼데도 불구하고 수업료 환불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어 대학생들의 불만이 높은 상황이다.
대학원생들도 비슷한 불만이다. 주로 논문 연구를 진행하는 대학원생이 교수로부터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대학원생은 “논문 수업 1개를 들으면서 576만 원이라는 등록금을 내는 게 솔직히 너무 아깝다. 지금은 논문 지도뿐 아니라 논문 진행을 위한 활동도 극히 제한적인데 등록금 및 논문 심사비에 대한 절충 관련 안내는 전혀 없는 실정이다”며 한숨 섞인 말을 전했다.
‘코로나대학생119’ 대학생들이 참여연대에서 대학생 학습권 피해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참여연대 제공
#수업은 저질, 서버·방역 비용은 교육부에 전가
반면 대부분의 대학은 “수업료 환불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한 대학 측은 “온라인 강의에 대한 시설과 준비로 인해 비용이 들어가며 학생들의 수업료는 직접적인 수업료 외에도 학사관리와 대학운영, 학생복지 등 여러 분야에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말에 따르면 학교에서는 서버 다운에 대해서도 “학생이 몰리는 시간대를 피해서 들어가라”거나 “강의 수강 마감일을 7일에서 14일로 연장해주겠다”는 임기응변을 지시할 뿐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학들은 막상 서버구축과 방역 비용 등을 교육부에 청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보다는 학교의 피해를 줄이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게다가 온라인 수업이 기본적으로 교수 재량으로 진행되다 보니 교수의 온라인 이해도와 활용도에 따라 수업의 질이 천차만별이다. 코로나대학생119는 “한 주만 버티면 된다는 식의 질 낮은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처음 2주였던 온라인 수업이 2주 더 연기되자 급히 수업내용을 바꾸는 등 어수선하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해 직장의 무급휴가와 임금삭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지방에 거주하면서 자녀를 서울로 보낸 부모의 심정은 더 절박하다. 아들을 서울로 대학 보낸 부산에 사는 강 아무개 씨는 “서울에 얻어놓은 자취방은 3월 내내 사용하지도 않고 월세를 냈다. 개학을 안 한 상태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니 굳이 서울로 올려 보낼 필요가 없어서 집에 머물게 했는데 그런데도 등록금은 등록금대로, 월세는 월세대로 나가니 힘들다”고 토로했다.
대학들은 온라인 강의로 인한 강의 부실과 집행되지 않은 신입생 입학금, 졸업예정자들의 학사일정 차질 등 구체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을 방관한 채 대학 수입 챙기기에 급급하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코로나대학생119 활동가 유롯은 “현재 학생들은 기존 대면 강의에서 이뤄졌던 수업의 질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일부 등록금 환불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또 코로나대학생119와 반값등록금국민운동본부는 온라인 강의로 인한 수업의 질 하락과 학사일정 변경으로 제공받지 못하게 된 교육서비스에 대해 재난 상황에 대한 법 제정, 대학에 필요한 조치 등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