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논리 따라 판단 엇갈려…“정치권 영입돼 저격수 전락” 우려도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가운데)은 2018년 12월 정부의 블랙리스트 명단 작성 의혹 등을 폭로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는 “조직에 적응을 못한 사람”이라고 평가했고,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김태우 특검‘을 요구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2018년 12월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로 정치권은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정부와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의혹, 환경부 블랙리스트 논란, 적자 국채 발행 의혹들이 잇달아 터져 나오면서 여권은 긴장, 야권은 고무된 모습이었다. 같은 고발을 놓고 여권에선 ‘비밀 누설’ 야권에선 ‘비리 고발’로 해석을 달리하며 신경전을 이어갔다.
여당은 폭로 내용에 집중하기보다 고발 주체로 초점을 전환했다. 당시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들에 대해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뛰는 것일까. 가짜뉴스 배포와 거짓 주장에는 철저한 책임이 뒤따른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고 했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조직에 적응을 잘 못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야당은 이들을 ‘양심적 공익제보자’라고 감싸는 동시에 정부와 여당 공세의 기회로 삼았다. 당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등 야당은 ‘김태우 특검’과 ‘신재민 청문회’를 추진하며 국회를 뒤흔들었다. 자유한국당은 이들의 폭로와 무관한 2월 임시국회 소집을 볼모로 잡았다. 폭로를 검증하기 위한 특검법 도입과 청문회 소집에 응하지 않으면 임시국회를 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이용해 국정 주도권을 잡으려는 야당과 방어에 나선 민주당의 강 대 강 대치로 결국 2월 임시국회는 무산됐다.
정치 의혹 폭로자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여권과 이를 공세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야권에 대해 모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원은 “내부고발자들의 순기능은 조직에서 벌어지는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인데 정치권으로 들어오면 산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며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개선사항을 찾아내기보다 한쪽은 공격, 다른 쪽은 방어하며 정쟁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분석했다.
21대 총선에는 그 어느때보다 많은 내부고발자들이 후보로 출마했다. 거리에 설치된 21대 국회의원 후보자 선거 벽보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박정훈 기자
내부고발자들에게는 ‘배신자’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는다. 그런 이들에게 정치권은 비교적 문을 두드리기 쉬운 곳이다. 이념이 갈리는 정치권 특성상 여권 혹은 야권으로부터 환영받기 때문이다. 이번 21대 총선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내부고발자들이 후보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미래통합당은 공천에서 가산점 30%를 줄 정도로 정치권은 이들에게 문을 열어줬다.
대표적인 인물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 미래통합당에 입당한 김태우 전 수사관이다. 이탄희 전 판사와 이수진 전 판사는 박근혜 정부의 ‘양승태 사법부 사법농단’ 관련 내용을 폭로했다.
이들의 정치권 입성 소식에 시민단체들은 기대감을 내비쳤다. 정계로 진출해 공익제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 때문이다. 박헌영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대표는 “공익제보자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서 이들이 정치권에서 제도 등을 개선하고 공익제보자에 대한 인식 변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내부고발자를 영입한 것이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채진원 연구원은 “정치권에서는 내부고발자들의 관행, 순수성, 진정성이 발휘되기 어렵다”며 “정치권은 내부고발자들을 악용하기 때문에 국회의 대화와 타협, 협치라는 문화가 훼손된다. 21대 총선에 유독 많은 내부고발자들이 출사표를 던졌는데 이러한 점에서 21대 국회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채 연구원은 이어 “내부고발자가 공익제보자인지 저의를 가진 비리 폭로자인지 확인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에 바로 정치권에 입성시키기보다 검증을 거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도 “정치권에 입문하는 내부고발자들은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같이했다. 이지문 이사장은 “김태우 전 수사관에 대한 사법절차가 남아 있기 때문에 이를 넘겨야 하고, 그동안 공익제보와 관련한 활동도 해야 한다”며 “같은 처지에 놓인 내부고발자들을 보호해주는 등 활동 경력 없이 자신이 공익제보에 따른 피해자라고만 강조하며 출마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비판했다.
일요신문i 특별취재팀
(이수진 박형민 김예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