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성착취물 사고팔고…자기 신체 품평받는 ‘몸까방’도
수위방에 올라온 미성년자 음란물 공유글. 사진=페이스북 캡처
10대 청소년의 온라인 소통공간인 페이스북에서 성착취물이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다. 중‧고등학생들은 페이스북에 있는 ‘그룹’ 기능을 이용해 ‘수위방’을 만들고 n번방과 박사방 등 다양한 아동 성착취물을 공유해 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페이스북 그룹은 특정한 사람들과 공통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능이다. 그룹 관리자의 허용이 있어야 가입이 가능하다.
일요신문은 지난 4일 4개의 수위방에 가입을 신청했다. 가입 승인을 위한 사전 질문은 ‘음란물을 앞으로 많이 공유할 것인가‘ ’음란물을 많이 갖고 있나‘ ’야한 것을 좋아하나‘ ’06년생(특정 나이)이 맞나‘ 등이었다. 별도의 성인인증은 불필요했다. 4개의 수위방 가입자는 그룹별로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 명 수준이었다.
페이스북에서 성착취물이 유포되는 방식은 텔레그램의 성착취물 유포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애초 ‘수위방’으로 알려졌던 페이스북 그룹은 성착취물의 판매‧구입을 원하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실제로 성착취물이 거래되는 곳은 수위방 안에 있는 또 다른 하위 방들이었다. 수위방에 가입하는 것보다 이 하위 방에 초대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즉, 수위방은 가입자와 하위 방 운영자를 연결하는 일종의 창구였다. 수위방이 텔레그램의 고담방에 가깝다면 실제 성착취물이 거래된 하위 방은 n번방과 그 역할이 유사했다. 다만 하위 방에서 성착취물이 제작되었는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실제 거래가 이뤄지는 하위 방은 페이스북 메신저인 ‘그룹 대화’로 만들어졌다. 1개의 수위방에는 여러 개의 하위 방이 운영되고 있었다. 문제는 메신저 특성상 누구든지 그룹 대화를 만들 수 있는 까닭에 방 운영자와 단순 회원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6일 한 가입자가 수위방 그룹에 “자료방 만들었다. 자료 많은 사람부터 입장”이라는 게시글을 남겼다. 이 글에는 곧 “ㅈㅇ(저요)”라는 댓글이 68여 개 달렸다. 지원자가 몰려 방 입장이 지연되자 위 게시글에 댓글을 남겼던 사람이 나타나 “답답해서 내가 직접 방 만든다”며 새로운 하위 방을 홍보하고 나서기도 했다.
이렇게 운영된 하위 방의 종류도 다양했다. 성착취물을 주고 받는 ‘자료방’, 중‧고등학생의 또래가 모여 서로에게 음란한 말을 주고 받는 ‘수위대화방’, 딥페이크나 미성년자의 신체 사진 등을 올리는 ‘사진방’, 자신의 신체 일부를 찍어 올리고 서로 품평하는 ‘몸까방’ 등 각 방마다 이름도 제각각이었다. 특히 몸까방 회원들은 “여자가 적다”며 수위방 그룹의 여성 청소년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도 했다.
하위 방 중 하나인 자료방에서 나눈 대화. 사진=대화방 캡처
이들 방에는 n번방과 박사방 등에서 제작된 성착취물이 거리낌없이 재유포됐다. 7일 기자가 있던 한 자료방에서 박사방 성착취물이 유포됐다. 이 유포자는 “(나는) 판매자이지만 그룹원한텐 그냥 줄 때도 있다”고 말하며 자신이 갖고 있는 성착취물과 가격이 적힌 메모장을 함께 올렸다. ‘2번방’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n번방 영상은 2만 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하단에는 ‘결제는 문화상품권 또는 계좌이체로’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유포자는 2005년생 남성 청소년으로 두 사람 사이에 실제 거래 유무는 확인할 수 없었다.
문제는 n번방에서 제작된 성착취물을 접하면서도 정작 n번방 사건을 모르는 청소년도 있었다는 점이다. 2006년생들로만 이뤄진 또 다른 수위방에서는 n번방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한 남성이 “그게 뭐야?”라고 되물었다. 앞서 이 방에서는 박사방에서 제작된 성착취물이 유포된 바 있었다. 일부 청소년들은 가학적인 성착취물을 올리며 “(여성이) 좋아하는 것 같다” “얼른 커서 저렇게 해보고 싶다” 등 비뚤어진 성의식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페이스북 내에서 또 다른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할 위험성도 보였다. 하위 방 입장을 위해서는 별도의 절차를 거쳐야 했는데 남자는 소유하고 있는 성착취물 목록을, 여자는 특정 신체 부위 사진을 통해 성별을 인증해야 했다. 6일 기자가 15세 여성의 신분으로 방 입장을 문의하자 하위 방 운영자는 “여자 인증을 하라”며 얼굴을 제외한 특정 신체 부위를 사진으로 찍어 내라고 요구했다.
운영자는 신체 사진을 받는 이유에 대해 “여자라고 속이고 가입하는 남자들이 많다. 남자들의 과도한 가입을 막기 위해서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름을 적은 포스트잇과 함께 손 사진을 찍어 올리라고 했다. 처음에는 어렵지 않은 요구였으나 점점 그 수위가 높아졌다.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졌다. 기자가 운영자의 메시지에 더 이상 답장을 하지 않자 이름이 적힌 포스트잇 사진과 음란한 사진이 2~3분 간격으로 전송되기 시작했다. 일종의 협박이었다.
이 밖에도 수위방 가입자라는 이유만으로 “밖에서 만나자” “야한 것을 좋아하냐” 등 성희롱성 발언의 메시지가 다수 날아왔다. 발신자는 대부분 10대 후반의 남성이었다. 수위방에 가입한 이후에는 단순 검색으로는 찾을 수 없었던 또 다른 수위방이 자동 추천 목록에 뜨기도 했다.
한편 “페이스북에서도 성착취물이 유통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공론화되자 큰 규모의 수위방은 6일과 7일을 기점으로 대부분 폐쇄됐다. 그러나 수위방 폐쇄 이후에도 일부 회원들은 페이스북 메신저, 즉 하위 방을 통해 성착취물 공유를 시도하기도 했다.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성교육의 부재가 만들어낸 상황이다. 10대들은 거의 매일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통해 왜곡된 여성상을 접한다. 주변에 올바른 성의식을 심어줄 어른은 없고 성착취를 재미로 소비하는 또래 친구들만 있다. 실제로 n번방 사태 이후에도 ‘교육에 좋지 않다’며 쉬쉬하는 학부모도 여럿 봤다. 사회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10대들은 불법촬영이나 성착취물을 유포하는 것이 범죄라는 인식을 하지 못 한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