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강의 몰아 들으면 2~3시간 내 끝나…장비 지원 여부 등 지역·학교마다 ‘교육격차’ 뚜렷
4월 9일, 중3과 고3이 개학을 맞았다. 당초 3월 2일이던 개학일이 4차례에 걸쳐 미뤄진 지 38일 만이다. 9일과 10일 1단계 온라인 개학에 이어 16일부터는 초등학교 4~6학년, 중1‧2, 고1‧2가 2단계 온라인 개학을, 20일부터는 초등학교 1~3학년이 원격수업으로 정규 교육과정을 시작한다. 전국 초·중·고교생 약 550만 명이 컴퓨터 앞에서 개학을 하는 셈이다. 이번 온라인 개학은 원격수업의 형태로 운영된다. 원격수업이란, 교수와 학습활동이 서로 다른 시간 또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을 말한다.
앞서 3월 27일 교육부가 발표한 ‘원격수업 운영 기준안’에 따르면 원격수업의 형태는 크게 3가지다. 교사와 학생이 화상 수업을 하며 실시간 토론 및 소통을 하는 ‘실시간 쌍방향 수업’, EBS 교육방송 강좌 혹은 교사의 강의 자료 등의 학습콘텐츠를 시청하는 ‘콘텐츠 활용 중심 수업’, 독서 감상문이나 학습지 등의 학습활동을 주로 하는 ‘과제 수행 중심 수업’ 등이다. 이 외에도 학교장이 인정하는 수업이라면 교육청 및 학교 여건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수업이 정규 수업시수로 인정된다.
#일반고 vs 특목고…온라인에서도 뚜렷한 교육 격차
9일 오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온라인 출석 확인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국 550만 명의 학생이 3가지 유형의 수업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보이지 않는 온라인 세계에도 교육 격차는 뚜렷하게 보이더라”는 것이 앞서 온라인 개학을 치른 이들의 중론이다. 특히 입시를 앞둔 자녀의 학부모들은 학교의 재량으로 운영되는 원격수업이 되레 교육 격차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9일 일찌감치 예비 개학을 맞은 중3 자녀를 둔 김미연 씨(48‧경기도 고양시)는 “문서화된 수업 자료로 각 과목마다 15~20분의 수업이 이뤄졌고 아이가 문제를 풀어 올리고 수업이 끝났다. 화상 수업을 할까 설레며 사두었던 화상 카메라는 사실상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미술치료사를 겸하고 있는 김 씨는 “학생과 교사 간의 라포(상호신뢰관계) 형성도 중요한데 담임교사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개학을 맞은 부분에 대해서는 아이도 조금 당황해 하는 것 같다. 개학 첫날 접속이 원활하지 않았는데 교사의 목소리만 듣고 상황을 수습하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지역의 사립학교나 특수목적학교는 이미 3월에 온라인 개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허탈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원격수업은 지역마다, 학교마다 다르게 운영된다. 운영방식은 크게는 학교장, 작게는 교과목 교사의 재량에 달려있다. 당초 알려진 것처럼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하는 학교는 기자재 등 여건상의 이유로 시범학교를 포함 일부 학교에서만 진행되고 있었다. 대다수의 학교에서는 EBS 강의 등 콘텐츠 활용 중심 수업이나 과제 수행 중심 수업이 진행됐다.
16일 본격적인 개학에 대비해 총 2차례 온라인 시스템 접속 테스트를 했다는 분당에 거주 중인 김재연 학생(15)은 “전 과목을 EBS 방송으로 대체했는데 어떤 면에서 개학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강의를 몰아서 들으면 2~3시간 안에도 수강이 가능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7교시 시간표로 진행된 수업은 당일 오후 1시에 끝났다. 영상 콘텐츠에 따라 과목마다 최소 25분~최대 45분까지 수업 시간이 다른 까닭이다. 이마저도 학생마다 끝마치는 시간이 달랐다.
반면 과학고등학교를 포함한 특수목적학교와 자율형사립학교 등에서는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교 시간도 일정했다. 내신을 고려해 이미 3월부터 온라인 개학을 진행한 학교도 다수였다. 과학고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모든 수업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실시간 수업을 듣고 있다. 조·종례시간과 점심시간도 실제 시간표대로다. 7교시 수업이 끝나면 4시로 학교 다닐 때와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중학교를 다니는 학생은 “첫 날 화상수업을 하고 두 번째 수업부터는 채팅창을 통해 실시간 소통을 하며 수업을 하고 있다. 질문을 하거나 반대로 선생님 질문에 채팅으로 대답을 하면 점수를 1점씩 받는다. 실제로 태도 점수에 반영될지는 모르겠지만 수업시간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고 말했다.
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실시간 쌍방향 수업처럼 교사가 학생의 학습 수행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에는 이를 학생부에 기재할 수 있다. 이때는 창의적 체험활동,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등에 기재가 가능하다. 그러나 독후감, 학습지 풀이 등 과제의 수행 과정이나 그 주체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는 학생부 기재가 불가능하다. 이후 해당 과제물과 연계한 수업활동을 진행한다면 학생부 기재도 고려해볼 수 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교사들의 중론이다.
다만 교사들의 입장도 있다. 익명을 부탁한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EBS의 유명 강사들 다수가 현직 교사들일 정도로 공립학교에도 인터넷 강의에 능통한 교사가 많다. 다만 학교에서 적절한 기자재를 갖추고 있느냐의 문제가 가장 크다. 일부 사립학교나 특수목적학교는 화상수업 등을 위한 장비를 이미 갖고 있거나 빠르게 구입이 가능하다. 반면 공립학교는 강의 녹화에 필요한 장비를 교사가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 무료로 지원이 되는 녹화 프로그램을 찾다 영상 녹화를 포기하고 EBS 강의로 대체하는 동료 교사가 여럿이다. 마이크와 카메라, 녹화 프로그램까지 교사 개인에게 맡기면 열정이 있어도 힘들다”고 말했다.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 항상 좋은 것만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입시생들은 일원화된 개념 위주의 수업보다는 개인별 수준의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교사와 학생 간 피드백만 원활하게 이뤄진다면 과제 중심의 원격수업이야말로 온라인 개학을 맞은 현 시점에서 가장 큰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원 향하는 아이들…자기주도학습 능력 길러야
4월 대구 수성구의 한 학원은 수업을 재개했다. 현재 학원은 정부의 방역지침을 준수한 경우에만 운영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는 학생들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생부에 기재되지 않는 원격수업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강의를 틀어놓고 게임을 하는 학생도 있는가 하면 일부는 학원에서 학교 수업을 듣기도 한다. 네이버 밴드나 카카오톡 등 SNS를 이용해 출결 관리를 하는 학교의 경우 어디서나 출석이 가능한 까닭이다. 서울 대치동 등 학원가에서는 오전에는 학원 자습실에서 학교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학원 강의를 듣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학부모들도 슬슬 학원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학교 수업만으로는 수능 준비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고2 자녀를 둔 이승재 씨(50‧서울시 강남구)는 “특목고는 학교에서 잘 챙겨줄 것이라는 믿음이라도 있지만 일반고는 좀 다르다. 입시를 앞둔 학부모 입장에서는 사교육을 쉰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두 달은 인터넷 강의로 버텼는데 주변 상황을 보면 고민이 된다. 다들 개학은 반대하면서 학원은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실제로 주위 고3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외 선생님이나 학원에서 ‘지금 시간이 많다’며 진도를 더 빨리 뺀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수학 학원에서 ‘우리 아이만 안 온다’고 연락이 왔다. 4~5명 소수 정예로 운영되니 괜찮다는 거다. 영어 학원은 학교처럼 실시간 온라인 수업을 진행한다고 해서 결국 이번 주(13일)부터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 달 동안 하루 3~4시간의 EBS 강의만으로 수능을 준비할 수 있을 만큼 아이가 똑똑하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반면 “자녀들에게 자기주도 학습 습관을 길러줄 수 있는 기회”라는 의견도 있었다. 중3 자녀를 둔 이상미 씨(45‧서울시 마포구)는 “4월까지는 학원 없이 버텨볼 생각이다. 어설픈 쌍방향 수업보다는 공인된 EBS 강의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번 기회로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무료로 접할 수 있게 됐다. 정해진 시간 안에 과제를 해서 올려야 하니 미룰 일도 없고 자기 주도 학습 습관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한편 교육부는 4월 9일 학교 원격수업을 학원에서 듣도록 한 학원에 대해서는 집중 점검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그러면서도 “학원의 어려움을 알고 있다. 학원도 원격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겠다”고 밝혔다. 온라인 개학과 동시에 일부 학원에서 개원 조짐을 보인 것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는 8일 코로나19 집단 발생 위험성이 높은 학원 및 교습소 등을 대상으로 운영 중단을 권고했다. 불가피하게 운영하는 경우에는 정부의 방역 지침을 준수해야 한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