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원 대표의 디스커버리 펀드 투자금 회수 막혀…신생 운용사 급성장 배경에 ‘정권실세 개입설’ 솔솔
요즘 서울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점 앞에서는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기업은행이 판매한 펀드로 원금을 날렸다는 고객들의 항의 시위다. 금융권에 따르면 IBK기업은행은 총 1800억 원 규모의 ‘US핀테크글로벌채권’ 펀드에 투자한 200여 명에게 695억 원의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이 설계·운용한 US핀테크글로벌채권 펀드를 팔았는데, 이 펀드는 미국 운용사인 DLI에 의해 현지에 투자됐다. 그런데 지난해 4월 DLI가 실제 수익률과 투자 자산의 실제 가치 등을 허위 보고한 것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적발돼 고발당했고, 이에 따라 투자금이 묶였다.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IBK기업은행 본점. 사진=박정훈 기자
이에 따라 기업은행은 일부 투자자들에게 이미 만기가 지났는데도 수익은커녕 원금도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 원금마저 떼일 위기에 처한 투자자들은 판매사인 기업은행이 불완전판매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채 영업을 했다는 것이다.
디스커버리가 기업은행에 제공한 자료를 보면 이 펀드는 펀드 위험 등급이 6등급 중 1등급으로 ‘매우 높은 위험’이라고 적시돼 있다. 그런데도 이를 고객에게 알리지 않고 ‘일반 고위험-고수익 펀드가 아니며, 손실 위험이 없는 대신 연 3%의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펀드’라고 판매했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목소리다. ‘펀드 계약서의 본인 확인이 없었다’ ‘대리 사인을 받았다’ 등의 주장도 나오고 있다.
특히 디스커버리의 장하원 대표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성 주중 대사의 동생이라는 점에서 논란은 더 확산되는 분위기이다. 피해자들은 정치권 개입설까지 제기하고 있다. 디스커버리는 2017년 4월 전문사모집합투자업을 등록한 신생 운용사인데, 기업은행 등을 주요 판매처로 두면서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했다는 것이다. 애초에 디스커버리가 시장에서 몸집을 키운 데에는 ‘정권 실세의 동생’이라는 타이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금융권에서도 “전혀 근거 없는 얘기만은 아니다”고 보고 있다.
실제 디스커버리는 2017년 상반기만 해도 수탁액이 500억 원 수준이었지만, 현재 설정액이 4933억 원 수준으로 72개 펀드를 운용 중이다.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 시기는 문재인 정부 경제사령탑으로 장하성 정책실장이 활동한 기간(2017년 5월~2018년 11월)과 겹친다. 장 실장은 청와대를 나온 이후에도 주중대사로 직행하며 정권 실세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게다가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 이 사모펀드의 판매액과 가입자 수에서 모두 1위를 한 것도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기업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2018년 이후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판매현황’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디스커버리의 펀드를 5800억 원 넘게 팔았다. 기업은행 계열 증권사인 IBK투자증권(782억 원)의 7배가 넘고 증권사 중 판매액 2위인 신한금융투자(220억 원)보다는 20배 이상 많은 액수다.
디스커버리의 규모와 이력을 보면 의문은 더욱 커진다. 디스커버리의 지난해 기준 사모펀드 순자산 총액기준 순위는 88위로 기업은행 판매 상위 10개 운용사 가운데 가장 작은 규모다. 자산총계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 봐도 마찬가지다. 10곳 가운데 디스커버리(167위·44억 원)의 규모가 가장 작았다.
금융권에서 ‘정권 실세의 입김’이라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신생 운용사가 대형 금융사들을 모두 제치고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에서 가장 많은 사모펀드를 판매할 수 있었던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기업은행은 ‘디스커버리펀드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현황 파악과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전무이사를 단장으로 하는 ‘투자상품 전행 대응 TF’를 구성해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디스커버리 파문’은 앞으로 더욱 커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디스커버리의 ‘US핀테크부동산담보부채권’ 펀드와 ‘US부동산선순위채권’ 펀드 등 다른 펀드도 최근 환매가 연기됐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을 필두로 신한은행 등 은행권과 주요 증권사 등에서 판매한 이 펀드들은 약 1000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 손실을 보는 투자자가 더 늘어날 수 있는 셈이다. 해외 펀드에 투자했다가 논란이 발생, 환매 중단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라임사태와도 유사하다.
금융당국도 불똥을 맞고 있다. 당장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중순 검사를 했지만 아직까지 “경위 파악 중”이라며 관련 조치를 차일피일 미루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라임자산운용의 환매 중단 사태에 대해서도 지난해 10월 검사에 착수해 4개월 후에야 중간검사 결과를 발표해 논란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누가 봐도 의심받기 딱 좋은 구조 아니냐”면서 “장하원 대표의 해외 도피설까지 나도는 상황인 만큼 그냥 덮고 가기에는 일이 너무 커졌다”고 진단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불완전 판매에 대해 조사 중이다. 제기된 의혹들과 사실관계가 다른 부분이 있어 명확히 파악 중”이라며 “예컨대 가입자 본인 사인을 받기 힘든 경우에는 전화로 투자 위험성을 알리고 녹음을 했다”고 설명했다. 장 전 실장의 영향력 의혹에 대해서는 “그가 청와대에서 근무 하기 전부터 판매해 시기가 맞지 않는다. 당시 인기가 있었던 상품이라 다른 은행들도 판매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