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앨범과 스토리북 ‘1719’ 출시…가족사부터 페미니스트 행보까지 거리낌없이 밝혀
핫펠트의 첫 정규앨범 ‘1719’에는 지난 3년간의 방황을 포함해 어두운 과거 이야기를 날것 그대로 담겨 있다. 사진=아메바컬처 제공
“놀라시는 분들도 많이 있을 거고, 아마 관심이 없으신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하지만 대중의 반응이 어땠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단 어쨌든 음악도, 글도 다 예술이니까 그냥 많은 분들이 즐겨주셨으면 해요. 이런 이야기들이 있구나, 이런 음악들이 있구나 하시면서 가볍게 들어주시고 봐주셔도 충분히 감사할 것 같아요.”
그가 2017년부터 조금씩 준비해 왔던 곡들은 ‘1719’라는 타이틀로 2020년이 돼서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밑바닥부터 훑고 올라오는 노래와 울분이 알알이 맺혀 있는 ‘스토리북’ 속 글은 자기파괴적이면서도 동시에 자기애를 보여준다. 이처럼 모순적이지만 다면적인 그의 작품세계는 ‘예은’이 아닌 ‘핫펠트’로서의 그를 완전하게 만들었다.
“2017년부터 작업을 시작해 왔어요. 아마 이번 앨범 중에 반 정도가 그 기간에 작업한 곡들일 거예요. 그 당시에 곡들이 많이 어둡게 작업돼서 ‘너무 어두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발매가 늦어지고 있었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가벼운 곡들도 나오고, 따뜻한 곡도 채워지면서 2019년이 지날 때쯤에 ‘이제는 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핫펠트는 이번 정규앨범과 함께 스토리북 ‘1719’를 발매했다. 부제로 ‘잠겨 있던 시간들에 대하여’라는 이름을 붙인 이 책에는 그의 과거와 속내가 날것 그대로 담겨 있다. 특히 그의 가족 이야기를 거침없이 써내려간 부분에서는 발매 전 먼저 책을 받아본 기자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공개하기까지 많은 가슴앓이를 했을 게 분명해 보이는 감정들이 글 곳곳에 묻어나왔다. “나는 아빠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그의 감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챕터 제목이 제일 먼저 눈길을 끌었다.
핫펠트는 이번 앨범과 함께 스토리북 ‘1719’를 발매했다. 책을 통해 그간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바 없는 가족사를 처음으로 밝혀 눈길을 끈다. 사진=아메바컬처 제공
핫펠트의 책 가장 첫 장에는 이런 구절이 쓰여 있다. “1719는 제 삶에서 가장 어둡고 지독했던 3년 동안의 일들을 음악과 글로 풀어낸 묶음집입니다. 무거운 얘기는 부담스러운 분들, 우울한 얘기는 보고 싶지 않은 분들은 다시 책을 덮으셔도 좋습니다.” 서약을 하고 나서야 뒤쪽을 넘길 수 있는 식이다. 타인의 어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을 위한 일종의 배려인 셈.
“제 성격이 원래 숨기거나 감추는 걸 잘 못해요. 거짓말도 못하고. 아마 책이 부담스러운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안내문을 넣었어요(웃음). 어떤 식으로든 저는 편견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원더걸스니까 넌 밝고 당당한 아이돌을 해야 해’ 하실 수도 있고, 제가 항상 강하고 할 말 다 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쟤는 아픔이 없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일련의 기사들이 났을 때는 ‘쟤는 저런 상황에 있는데 어떻게 밝은 노래를 하지?’라고 하실 수도 있고. 답답할 때도 있지만 연예인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비춰지는 모습만 보여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거죠. 그래서 제 음악들을 좀 더 자연스럽게 보여드리기 위해 이번처럼 ‘스토리북’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핫펠트 속 ‘예은’이라는 인간의 과거와 그의 가족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다른 가족들의 마음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이런 글을 써도 돼?”라고 물었을 때 “네가 원하는 대로 해도 돼”라는 응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 결코 작지 않은 축복이었다.
“알려진 연예인의 가족으로 13년 정도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시선도 있고, 어머니도 설명하고 싶지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라 연예인 딸을 가진 답답함도 있으셨던 것 같아요. 오히려 글을 보고 후련해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글로 표현한 걸 보니 네가 아티스트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고(웃음). 언니와 동생은 제가 힘들어 하는 걸 보고 지지와 응원을 많이 해줬어요. 만일 (책 출간을) 반대한다면 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걱정하지 말고, 이왕 하는 거 멋있게 잘 만들어’라고 해줘서 좀 편하게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최근 페미니스트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핫펠트는 이에 대해 “제가 변한 게 아니라 사회가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아메바컬쳐 제공
“각자 인생의 시간표가 다르단 생각을 한 지 꽤 됐어요. 다른 사람이 뭘 하는 것을 보고 ‘나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잘 안 하는 스타일이에요. 다들 각자의 시간표대로 잘 가고 있다고만 생각하죠. 제 커리어적인 시간표로 보자면 물론 좀 더 일찍 솔로로서 뭔가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아메바컬처(현 소속사)에 와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시간을 보내며 ‘1719’란 타이틀이 정해진 건데, 3년간 헤매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타이틀이고 이렇게 패키지가 되지도 않았을 거예요. 조바심 때문에 2017년에 앨범을 냈다면 지금 같은 퀄리티나 완성도 있는 앨범을 만들지 못했을 것 같아요. 모든 것엔 다 때가 있는 법이죠(웃음).”
최근 핫펠트는 페미니스트 행보로도 많은 이들의 지지와 반대편의 야유를 동시에 받고 있다. 걸그룹으로 데뷔 후 높은 인기를 누리며 고생이라곤 해본 적도 없을 젊은 여자가 왜 ‘험한 길’을 자초하고 있는지.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마 그들이 핫펠트의 ‘스토리북’을 읽고 난다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핫펠트는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것이란 점을 분명히 밝혔다.
“저는 뭘 숨기거나 감추는 걸 잘 못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걸 말할 때 속이 시원해요. 그게 제 속을 맴돌거나 맘에 남아 있으면 불편하죠. 한편으론 제가 내뱉는 말이나 행동의 영향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 마디를 할 때도 조심하기 위해 제 나름대로 룰을 정했어요. ‘세 번 참고 말하기(웃음).’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세 번 참고, 고민하고 말하려고 해요. 한편으론 원더걸스 시절과 지금의 저는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는데, 좀 더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고 다양한 삶의 선택이나 방향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원더걸스 시절엔 위만 보면서 ‘위로, 위로’ 하면서 살았는데 지금은 좀 더 주변을 둘러볼 수 있고, 사회의 다양한 삶의 형태나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도 가지게 됐죠. 사실 저는 변한 게 없고 그냥 사회가 바뀐 것 같아요, 여성 아티스트를 대하는 시각이나 그런 게(웃음).”
핫펠트는 23일 오후 6시 첫 번째 정규앨범 ‘1719’를 발매했다. 앨범에는 더블 타이틀곡 ‘새틀라이트(Satellite)’ ‘스윗 센세이션(Sweet Sensation)’을 비롯해 14곡이 수록됐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