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소재 경쟁력 지녀 성장 가능성 커…굵직한 대기업 참전 관측 속 ‘콜옵션’ 포함 주목
두산솔루스는 두산그룹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 등판한 첫 번째 구원투수다. 지난 4월 13일 두산그룹이 최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에 제출한 자구안의 핵심이 ‘두산솔루스 매각’이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당초 두산그룹은 지난해부터 인수에 관심을 보였던 일명 ‘진대제 펀드’라 불리는 토종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와 두산솔루스 지분 51%를 두고 매각 협상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스카이레이크와 협상은 결국 결렬됐다. 스카이레이크와 두산은 협상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가격에서 눈높이가 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협상 결렬 이후 두산은 공개매각으로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두산그룹이 두산솔루스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이 포함된 자구안을 채권단에 제출하면서 향후 진행될 인수전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성장 가능성 높은 ‘알짜’ 계열사
두산솔루스는 지주사 (주)두산의 인적분할로 세워진 신설회사다. 2019년 10월 재상장했다. (주)두산(17%)과 박정원 두산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 특수관계인 36명(44%)이 지분 총 61%를 갖고 있다. ‘두산그룹의 미래’로 통할 만큼 최근 세계적으로 관심도가 높은 기술 사업들이 모여 있다.
특히 주력 사업인 동박(전지박)의 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해부터 폴크스바겐과 일본 도요타, 한국의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업체는 앞다퉈 전기차 시장에서 보폭을 늘리고 있다. 전기차 성능은 엔진이 아닌 모터와 배터리로 결정된다. 동박은 배터리 소재다. 동박은 얇을수록 배터리 효율이 높아진다. 구리를 머리카락 두께의 약 15분의 1 수준으로 펴서 만드는 만큼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다. 진입장벽 자체가 높아 후발주자도 거의 없다. 중국도 동박 사업에서만큼은 격차를 쉽사리 줄이지 못하고 있다.
두산솔루스는 극소수 업체만 생산하는 6㎛(마이크로미터)의 동박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 올해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헝가리에 공장도 짓고 있다. 헝가리는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는 물론 유럽 완성차 업계의 생산 전진기지로 통한다. 헝가리 공장이 완공되면 유럽에서 유일한 동박 생산 공장이 된다. 그 밖에 두산솔루스는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도 생산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두산솔루스의 가파른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하나금융투자는 두산솔루스의 동박 부문 매출이 2020년 246억 원에서 2021년 1287억 원으로, 유진투자증권은 2024년 매출이 1조 420억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영업이익 역시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증권사들은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두산그룹은 두산솔루스의 몸값을 1조 5000억 원가량으로 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투자업계에선 두산이 국내 동박 생산 업체인 일진머티리얼즈와 KCFT 등을 비교기업(상각전영업이익 기준 20~25배)으로 선정해 가격을 계산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기준으로 최근 증권가에서 책정한 가격은 적게는 9600억 원부터 최대 1조 4000억 원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여기에 공개매각에 따른 경쟁이 붙고 박정원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을 모두 합한 지분 전체(61%) 매각이 확정될 경우 경영권 프리미엄 등이 붙어 가격이 추가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두산그룹이 가격을 마냥 과도하게 책정한 것만은 아니라고 평가된다”고 말했다.
#인수 후보는 대기업들…거래 시작되면 고려할 변수 많다
금융투자업계에선 높은 몸값에도 두산솔루스 인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수 후보로는 우선 삼성, SK, LG, 포스코 등 배터리와 디스플레이 관련사업을 하는 대기업들이 꼽힌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SK그룹 계열사 SKC다. 지주사 (주)SK가 아닌 SKC가 최근 두산솔루스 투자 안내서를 받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초 세계 1위 동박 생산업체인 KCFT를 1조 2000억 원에 인수했지만 자금 여력은 충분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3월 SKC코오롱PI 지분 27.03%를 매각해 3000억 원을, 쿠웨이트 PIC와의 화학사업 합작사 설립 과정에서 이전한 지분 49%에 해당하는 5600억여 원을 각각 확보했다. 현재 KCFT 공장 증설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시장에선 두산솔루스 인수로 방향을 틀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삼성그룹에선 삼성전자가 투자안내서를 받아갔다. 다만 삼성SDI가 2차전지를 생산하고 있고,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미 두산솔루스로부터 OLED 소재를 공급받고 있는 만큼 만약 인수전에 참여한다면 두 계열사 가운데 한 곳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삼성SDI도 두산솔루스처럼 헝가리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LG그룹도 두산솔루스 투자안내서를 받아갔다. 한동안 ‘빅딜’에선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곳이라 관심을 끌고 있다. LG그룹은 구광모 회장의 ‘선택과 집중’ 전략 아래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면서 2조 원대 실탄을 쌓아두고 있으나 신사업이나 굵직한 추가 투자 소식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SKC와 함께 KCFT 인수를 추진했다가 철회했던 포스코도 인수 후보로 거론됐다. 그러나 전중선 포스코 부회장은 4월 24일 콘퍼런스콜에서 “두산솔루스 사업군은 우리가 추진하는 양·음극재와 관련 없다”며 인수설을 일축했다. 앞서 언급된 다른 기업들도 인수와 관련해선 “확인해 줄 수 있는 내용이 없다”거나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대기업 외에 재무적투자자(FI)들도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2년 전 3000억 원에 KCFT를 산 뒤 SKC에 4배 높은 가격에 팔았다. 두산솔루스 인수전에 참여할 FI들도 이 같은 목적으로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가격이 더 높아질 수 있다.
향후 진행될 인수전에선 조율해야 할 내용이 적지 않다. 높은 가격은 물론 시간, 콜옵션 조항까지 거론되는 변수가 다양하다. 특히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한시라도 빨리 매각해야 하는 두산과 최대한 지연시켜 가격을 떨어뜨리려는 인수 후보들 간의 기싸움이 펼쳐질 가능성도 높다.
특히 매도자가 매각한 주식을 추후 다시 살 수 있는 ‘콜옵션’ 조항의 경우 두산솔루스가 알짜 회사인 만큼, 그룹 오너일가가 향후 그룹 재건을 위해 되찾고자 계약서에 넣을 가능성이 높다. 사모펀드에게 판매할 경우 콜옵션 조항이 들어갈 수 있다. 과거 금호그룹을 둘러싼 M&A들에서 이 조항이 등장해 여러 차례 잡음이 나왔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