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 체류설 두고 ‘코로나 피신’ ‘기만전술’ 분분…김정은 복귀 시 존재감 커진 김여정 잠시 자취 감출 수도
일요신문이 입수한 김여정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표준상.
김여정은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뒤를 이을 대표적인 ‘백두혈통’ 일원으로 꼽힌다. 김여정은 2017년을 기점으로 김정은을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며 정치적 위상을 과시해 왔다. 지금은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 등 요직을 맡고 있다. 차근차근 북한 권력 핵심에 둥지를 튼 김여정은 ‘포스트 김정은 시대’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점쳐진다.
중국에 거주하는 북한 내부 소식통은 지난 4월 24일 기자에게 김여정 표준상을 건넸다. 그는 “북한이 김여정 표준상까지 준비했다”면서 “적어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정운영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라고 주장했다. 그는 “표준상이 공개된 건 본격적인 ‘김여정 시대’의 도래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하는 정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김여정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국내외 언론은 김여정이 김정은과 함께 원산에 체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 언론은 4월 26일 정부 당국자 발언을 인용해 “김여정 부부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원산에 함께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북한 전문가 역시 “김여정은 언제나처럼 김정은 최측근으로서 보좌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국내외 언론은 건강 이상설에 둘러싸인 김 위원장이 원산에 머물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4월 25일 원산 일대 위성사진을 공개하면서 “김정은 전용열차로 추정되는 열차가 4월 21일부터 원산역에 정차해 있다”고 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4월 26일 미국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4월 13일 이후 원산에서 머물고 있으며 살아있다”고 말했다. 국회 국방위원장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4월 2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코로나19를 피해) 안전차원에서 피신시킨 것이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일요신문DB
태구민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당선자는 38노스 보도와 관련해 “(김정은 원산 체류설은 북한의) 기만전술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태 당선자는 4월 2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북한은 항상 미국 정찰위성이 북한을 감시하고 있다고 의식하며 대비한다. 그런 이유로 김정은 동선을 은폐하려 다양한 기만전술을 항상 쓰고 있다”며 “언론과 일부 전문가들은 전용열차가 원산 김정은 초대소 옆에 있으니 김정은이 원산에 있을 거라 추측한다. 그러나 김정은 신변경호대가 정상적인 생각을 가졌다면 김정은이 원산 초대소에 있을 경우 오히려 전용열차를 옆에 두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 당선자는 “북한에서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한 나는 김정은 신변이상설에 대해 북한체제 관성적 측면에서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간주한다”면서 “김정은 신변이상설과 관련해 추측이 난무하지만, 누구도 (사실을) 확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태 당선자는 현재 북한의 ‘이례적인 점’ 네 가지를 꼽았는데 내용은 이렇다.
“김정은이 태양절(김일성 생일 4월 15일) 금수산 태양궁전 참배를 하지 않은 것, 김정은 잠적에 대해 북한 당국이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는 것, 북한 외교관들이 기자들 질문에 대응하지 않는 것, 최룡해-박봉주 등 다른 북한 최고위층의 동향이 없는 것.”
탈북민 출신으로 국회 입성을 앞둔 지성호 미래한국당 국회의원 당선자도 4월 21일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 건강이상설은 사실”이라면서 “현재 북한은 섭정체제에 들어갔으며 김여정이 섭정하고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자국 최고지도자 신변을 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지만 북한 측 대처는 소극적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4월 26일 “최고 영도자 김정은 동지가 ‘삼지연시 꾸리기’를 성심성의로 지원한 일꾼들과 근로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북한 당국과 언론은 김 위원장 관련 일반 동정 보도만을 이어가고 있을 뿐, 실질적으로 김 위원장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는 형국이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사진=연합뉴스
중국의 또 다른 북한 소식통은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정은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을 것이란 분석이 무게를 얻고 있다”면서 “김정은이 현장지도 등 실질적인 행보에 나서지 않는 이상 ‘백두혈통 오누이’ 김여정에 대한 관심도는 계속해서 높게 유지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김정은 행보가 노출되지 않는 상황에서 김여정의 새로운 ‘표준상’이 공개된 점은 의미 있게 지켜볼 만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만약 김정은이 건강할 경우 자신의 ‘신변이상설’을 두고 김여정이란 존재가 부각된 것에 적잖이 심기가 불편했을 것이다. 김정은이 정상적인 대외활동을 재개한다면, 오히려 김여정이 북한 정치권에서 잠시 자취를 감출 가능성도 적지 않다”며 “2014년 10월 김정은이 다리 수술을 해 잠적했을 당시에도 김여정이 유력 후계자로 언급됐다. 김정은이 건재한 사실이 대내외적으로 공개된 뒤 한 달여 동안 김여정의 행보가 묘연한 적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