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40대 기수론’ 천기누설에 차기 주자들 발끈…홍준표 vs 심재철 설전 등 중진 서로 속내 의심하며 ‘내부총질’
4월 24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21대 국회, 어떻게 해야하나?’ 토론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긴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 사진=박정훈 기자
#통합당 명의 영입 시도 배경
현재의 통합당 처지에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만 한 명의는 없다는 게 통합당 내부 구성원들 절대다수의 생각이었다.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을 오가며 ‘정당 개조’를 해본 쇄신 전문가 경험을 고려해본다면 이만 한 카드가 없다는 것이었다. 명의를 빨리 데리고 와 집중 치료를 받으면 선거 패배로 입은 상처를 빨리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당내 동의는 쉽게 만들어졌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통합당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통합당 내부도 총선에서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어느 정도는 들여다봤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인데 김종인 전 위원장은 상대도 알고, 우리 편도 잘 아는 사람인 셈이었다.
당 내부 인사가 비대위원장을 맡으면 반대파 저항이 나타나며 분란이 일 것이라는 걱정도 외부인사 김 전 위원장 선호도를 높였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설이 고개를 들 때 “또 외부인사 비대위 체제냐”라는 당 내부 일부 반발이 있긴 했지만 큰 파도를 만들진 못했다. ‘김종인 말고 누가 있느냐’는 대안부재론도 대세로 자리 잡았다.
평양 감사도 본인이 싫으면 안 되는 것인데, 김 전 위원장은 올해 만 나이로 여든인데도 비대위원장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과거 민주당에서 김 전 위원장을 가까이 해본 한 정당인은 이렇게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성취욕이 매우 강하다. 어떤 목표를 세우면 몰입도가 굉장하다. 그의 과거를 돌아보면 여러 정당을 다닌 경험이 많지만, 정말 이뤄보고 싶었던 것을 못했다는 미련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을 통합당 비대위원장으로서 한번 이뤄보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경제학자인데 경제를 잘 운용하는 정치 구조를 만들어보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때문에 저렇게 강한 의지를 갖는 것이다.”
#김종인 천기누설에 당 진료 거부
순항할 것 같던 ‘김종인 비대위 체제’는 김 전 위원장 스스로가 건너기 힘든 난관을 만들어버렸다. 비대위원장이 되기도 전에 스스로 속내를 드러내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건드려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는 표현까지 썼다.
김 전 위원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 등 지난 대선에서 고배를 마신 당 안팎의 인물들은 이미 국민의 심판이 끝났다는 요지로 발언, 당 내외 유력 대권주자들에게 사실상 ‘대선 경기장 출입금지’ 도장을 찍어버렸다. 이어 젊은 경제 전문가 후보를 대선에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즉각 언론들은 홍정욱 전 한나라당 의원 등 김 전 위원장의 심중에 들어맞을 만한 인물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4월 28일 서울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제1차 전국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자유청년연맹 회원들이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반대하며 조기 전당대회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대선 후보 배제 대상이 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부터 즉각 발끈했다. 김 전 위원장에 대한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입심으로는 보수 정치권에서 당할 사람이 없다는 홍 전 대표는 김 전 위원장의 가장 아픈 부분인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연루 부분까지 파고들었다.
‘김종인 흔들기’가 시작되면서 “김종인 말고는 없다”던 대안부재론도 흔들렸다. 우여곡절 끝에 4월 28일 전국위에서 김종인 비대위가 추인됐지만, ‘오는 8월 31일 이전 전당대회 실시’ 당헌 조항 삭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즉 김 전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내정자 신분이 됐지만, 4개월짜리 초단기 비대위원장이 된 셈이다.
김 전 위원장은 이를 사실상 거부했고, 고민에 빠진 당 지도부는 비대위 체제 관련한 결정을 5월 8일 선출되는 원내지도부에 넘기기로 했다. 통합당 내부에서는 “저희는 선생님한테 진료 안 받겠습니다”라는 진료거부 통지가 김 전 위원장에게 넘겨진 것으로 보고 있다.
당 내에선 김 전 위원장이 치료 시작도 전에 환자정보를 누설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자유한국당 비대위를 이끈 경험이 있는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 역시 홍 전 대표만큼은 아니지만 김종인 전 위원장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김병준 전 위원장은 “왕조 시대도 아니고 비대위원장이 특정 후보를 점지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또 젊은 후보 얘기하는데 외국의 젊은 지도자들은 젊다고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지방의원 등 각종 정치활동 경력이 엄청나게 많이 쌓여있는 사람들이다. 우리와 정치 환경이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김종인 비대위를 찬성했던 의원들도 속속 돌아서는 중이다. 찬성 의견을 보였던 김세연 의원은 YTN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 아침’에 나가 “(김종인 비대위) 동력을 조금 상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장제원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종인 비대위에 대한 미련은 버렸으면 좋겠다. 시간 낭비이자 갈등만 재생산하는 소모적인 미련”이라고 밝혔다.
통합당의 핵심 지지기반인 대구의 한 국회의원 당선자는 “쉽게 비대위원장이 될 수 있었고 당내 분위기도 좋았는데 본인이 해서는 안 될 말을 하면서 일이 완전히 꼬였다. 본인이 정말 자리를 맡고 싶으면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도 해야 하는데 조건을 내밀면서 모시러 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저런 식이라면 당의 곪은 상처를 치료하는 성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물 건너가는 자가치료
비대위 체제가 무산 위기에 놓이면서 통합당은 자중지란으로 빠져들고 있다. ‘김종인 불가론’을 지지하는 당 구성원들은 “의사는 필요 없고 우리가 스스로 치료하면 된다”는 자가 치료론을 내세우지만, 자가 치료에 나서야 할 당 중진급들이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4·15 총선에서 대구 수성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홍준표 당선자. 사진=연합뉴스
김종인 흔들기를 주도해온 홍준표 전 대표는 현재 당을 이끌고 있는 지도부가 사심을 갖고 ‘김종인 카드’를 계속 고집한다고 지적한다. 홍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총선 패배 이후 당을 이끌고 있는 심재철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를 겨냥 “총선 폭망 지도부를 보면서 당을 어디까지 망가트리고 나갈 심산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경기지사 후보 공천 건 때문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심 권한대행이 혹시 모를 경기도지사 보궐선거에 대비,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서 공천권을 받아보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다.
심 권한대행은 홍 전 대표가 ‘대권 병’에 빠져 김 전 위원장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고 반박한다. 심 권한대행은 홍 전 대표가 김종인 비대위원장 내정자를 팔십 넘은 뇌물 브로커라고 비난한 것을 지적하며 “처음에는 찬성하다 대선 패배 지적과 40대 기수론이 제기되자 반대로 돌변한 것은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다.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에 따라 정치적 견해가 어제와 오늘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사람에게 당원과 국민들이 어떤 기대를 할 수 있겠는가. 품위 없는 언사의 반복은 외면을 가속할 뿐”이라고 공격했다.
이처럼 다선 중진들은 매일 위험수위를 넘다들며 비난의 화살을 무차별적으로 날리고 있다. 일부 당내 인사들은 “오늘 끝장 보자, 내일은 없다” 식의 발언이라고 걱정한다.
정진석 의원이 홍 전 대표에게 “국민의 손가락질이 보이지 않느냐”고 지적하자, 홍 전 대표는 정 의원을 향해 “자민련에서 들어와서 MB(이명박 전 대통령)와 박근혜에게 붙었다가 이제 김종인에게 붙는 걸 보니 안타깝다. 이런 사람들이 들어와서 설치는 건 이 당에 미래가 없는 것”이라고 반격했다.
그러자 정 의원은 페이스북에 “(홍 전 대표가) 막말로 나를 모욕했다. 그가 김종인 내정자에게 ‘뇌물 받아먹은 사람’이라며 욕하는 것이 비겁해 보여서 며칠 전 충고 한마디 했더니, 그걸 못 참고 나를 향해 ‘총질’을 하고 있다. 공당을 자신의 사유물처럼 생각하는 전근대적인 사고에는 넌더리가 난다”고 밝혔다.
20대 국회를 마지막으로 국회를 떠나는 한 현역 의원은 “통합당 구성원들 상당수가 엘리트 관료나 법조인 출신이 많다. 그러다보니 내가 최고라는 생각이 강하고 협력하는 모습이 부족하다. 양보하고 타협하는 리더십이 없으면 과감히 지도부에서 배제시켜야 한다. 8일 원내대표 선거가 그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