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김정남 사망 후 제3국 거주설…백두혈통 적자 명분에 중국과 가까워 존재감 부각
김정일의 손자이자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 사진=유튜브 채널 ‘KHS 비디오’ 캡처
먼저 북한 전문가들이 김한솔을 주목하는 배경을 살펴보자. 1995년생인 김한솔은 백두혈통의 실질적 장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김한솔 아버지는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다. 김정남은 김정일과 그의 ‘비공식 부인’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정은-김여정 ‘백두혈통 오누이’와는 배다른 형제인 셈이다.
김정일의 차남 김정철과 김정은-김여정 남매는 또 다른 ‘비공식 부인’ 고용희 소생이다. 고용희는 성혜림(김정남 모친) 뒤를 이은 후처다. 고용희는 김정일이 후계자 지명을 받은 뒤인 1976년부터 김정일과 동거를 시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의 어머니인 고용희가 등장한 뒤 성혜림은 김정일과 멀어졌다. 이는 훗날 김정남이 북한 권력계승에서 밀려난 이유와도 맞물린다.
김정일의 비공식 부인으로 북한 주민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고용희는 2010년대 들어 재조명됐다. 김정은 체제가 공고화 된 뒤 최고 지도자의 모친을 미화하는 작업이 꾸준히 진행된 까닭이었다. 고용희 미화 작업은 김정은이 자신의 어머니를 미화해 ‘백두혈통 정통성’을 강화하려는 취지로 읽혔다.
권력계승 싸움에서 밀려난 ‘북한의 왕자’ 김정남은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숨졌다. 동남아 여성 2명으로부터 화학무기 ‘VX 액체’ 공격을 받았다. 이른바 ‘김정남 피살사건’이다. 김정남은 생전 ‘김정은 체제’의 눈엣가시로 여겨졌다. 백두혈통 장자임과 동시에 ‘친중파’로 중국 내 인맥이 막강했기 때문이었다. 여기다 수차례에 걸쳐 불거진 김정남의 망명설은 북한 지도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2013년 12월엔 북한 내 또 다른 친중 유력인사인 장성택 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행정부장이 처형됐다. 김정남-김정은 이복형제의 고모부 장성택은 김정남의 물밑 후원자로 알려지기도 했다.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남의 입지는 불안해졌다. 여기다 북한 망명정부를 추진하던 ‘천리마민방위(현 자유조선)’의 수장 에드리언 홍창이 김정남에게 수차례 접근해 “망명정부 지도자가 돼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리고 2017년 2월 김정남은 숨을 거뒀다.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피살된 김정남. 사진=연합뉴스
김한솔의 존재감은 김정남 피살 이후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김한솔은 김정남 피살 이후 한 달 정도가 지난 시점인 2017년 3월 7일 유튜브 영상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다. 김한솔은 영상에서 자신을 “김일성 일가의 김한솔”이라고 소개했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 발언은 “사실상 자신이 백두혈통 적자임을 강조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이 영상은 김정남에게 ‘망명정부 지도자직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진 천리마민방위 명의로 올라왔다.
같은 날 천리마민방위는 “긴급한 시기에 한 가족의 인도적 대피를 후원한 네덜란드 정부, 중국 정부, 미국 정부와 한 무명의 정부에 감사를 표한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게시글에 명시된 ‘한 가족’은 김한솔을 포함한 김정남의 유가족인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 11월 2일 국가정보원은 “김한솔은 중국이 아닌 제3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현재 김한솔이 머무는 ‘제3국’의 정체는 알려진 바 없다. 김한솔이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역시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정도다. 분명한 것은 김한솔이 살아있다는 점이다.
2019년 3월 1일 설립된 북한 망명정부 자유조선 로고.
중국 거주 북한 소식통은 “체제 안정 차원에서 봤을 때 북한 지도부는 김한솔의 존재 자체를 부담으로 느낄 수 있다”면서 “김정은을 둘러싼 건강이상설이 확산되는 가운데, 북한 내부 반정부 세력을 중심으로 김한솔을 부각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만약 북한 내 반정부 세력이 북한 정부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다면, ‘백두혈통 정통성’을 명분 삼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덧붙였다.
중국에 거주하는 또 다른 북한 소식통도 “중국 현지에서도 김한솔을 향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소식통은 “현재 북한에서 백두혈통 적통이라 여겨지는 김정은-김여정 남매는 2013년 장성택 숙청 이후 중국 외교 알짜 라인과의 교류가 대부분 끊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그는 “대표적인 ‘친중파’였던 김정남의 아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은 중국에서 적잖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면서 “북한 지도부 입장에서도 김한솔의 존재감은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김정은에게 변고가 생겨 북한 지도부가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경우, 중국과 미국 등 한반도 문제 외교 관계국들이 ‘북한 정상화’를 명분으로 내밀 수 있는 최후의 히든카드로 김한솔을 제시할 수 있다. 만약 면밀하게 백두혈통의 정통성을 가린다고 치면, 김한솔이 김정은-김여정 등 현 집권세력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여지도 충분하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