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광장 지정된 시유지에 서울시 몰래 설치 후 ‘나몰라라’…교통사고 증가 불구 무대책
서울특별시 용산구(성장현 구청장)가 ‘원효로 다목적 체육관’을 불법으로 준공했다. 검토 과정에서 위법 사실을 알았지만 이를 무시한 정황도 나왔다. 사진=박현광 기자
용산구 문화체육과 관계자는 “불법으로 지적받은 사실은 알지만 현실적으로 지어둔 체육관을 허무는 건 어렵다. 용도변경을 시도하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 당장은 힘들다. 서울시와 관련 협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용산구는 2017년 11월 ‘원효로 다목적 체육관 설치’ 관련 사업자를 선정한 뒤 바로 착공에 들어가 5개월 만인 2018년 4월 준공했다. 배드민턴 국제 규격에 맞게 만들어 배드민턴장을 필요로 했던 용산구의 숙원사업으로 평가됐다. 원효로 다목적 체육관은 2378㎡ 대지에 연면적 939㎡ 규모다. 단면적으로 따지면 지역 내 체육관 가운데 가장 크다.
용산구는 도시계획시설 계획에 따라 교통광장으로 지정된 서울시 시유지(원효로3가 51-25)에 체육관을 설치했다. 국토계획법과 건축법에 따르면 도시계획시설의 설치 장소로 결정된 교통광장에 도시계획시설이 아닌 건축물이나 가설건축물 설치를 허가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국토계획법 64조 1항은 ‘특별시장 등은 도시계획시설의 설치 장소로 결정된 곳은 그 도시계획시설이 아닌 건축물의 건축이나 공작물의 설치를 허가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또 건축법 20조 2항 1호에 따르면 국토계획법 64조를 위배하는 경우 구청장은 가설건축물 설치를 허가할 수 없다.
원효로 다목적 체육관 내부 모습. 사진=용산구 제공
일요신문이 입수한 감사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용산구는 교통광장에 체육관을 설치하는 행위가 불법인 것을 알고도 ‘셀프 허가’를 냈다. 체육관 설치를 주관한 용산구 문화체육과는 2017년 4월 4일 도시계획과와 건축디자인과에 법령 검토를 의뢰했다. 도시계획과와 건축디자인과는 2017년 4월 10일과 11일 국토계획법 64조 위반 여부 확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건축 허가 권한을 가진 구청이 불법으로 셀프 건축 허가를 했다는 사실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원석 중앙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만약 민간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구청이 가만히 있진 않았을 것”이라며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용산구는 서울시 시유지에 체육관을 설치하면서도 서울시와 협의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해당 교통광장은 서울시의 시유지다. 물론 용산구는 시울시 조례에 따라 시유재산을 서울시에게 위임받아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본래 용도와 다르게 사용할 경우 서울시와 협의해야 한다. 2017년 3월 23일 개정·신설된 서울특별시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 조례 3조 5항은 ‘구청장은 위임받은 목적을 변경할 경우 서울시장과 협의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문제는 교통광장에 체육관이 들어서면서 인근 교통사고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통광장은 교통이 번잡한 곳에 원활한 차량의 통과를 위해 만들어 놓은 넓은 공간이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교통안전공단과 민간연구소 소속 연구원들이 체육관이 주변에 끼치는 교통 영향을 분석한 결과 체육관 이용자 차량과 도로 회전 차량 간의 상충이 증가한다고 분석됐다. 또 체육관 반경 100m 이내 2018년 교통사고 건수가 2017년과 비교해 1.8배 증가했고, 차량과 차량 사이 추돌사고는 4.5배 늘었다 .
교통광장에 체육관이 들어서면서 인근 교통사고가 증가하고 있다. 2018년 교통사고 건수가 2017년과 비교해 1.8배 증가했고, 차량과 차량 사이 추돌사고는 4.5배 증가했다고 나타났다. 용산구는 현재까지 아무런 대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사진=박현광 기자
용산구는 감사원 지적을 받고 우선적으로 서울시와 협의해 교통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입장이다. 게다가 용산구와 서울시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용산구 문화체육과 관계자는 “서울시에 교통 대책 관련 공문을 보내둔 상태다. 교통 대책을 수립할 계획이지만 코로나19로 논의가 더뎌지고 있다”라며 “감사원 지적 이후 도로를 보수했고 반사경을 설치했다. 과속방지턱을 설치하려고 하는데 늦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감사원 지적을 받은 날은 2019년 7월이고 본격적으로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날은 2020년 1월 20일이다.
서울시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용산구에 대안을 마련하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이 없다. 아직 기다리는 중”이라며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용산구가 체육관을 짓는 건 몰랐다. 항상 현장을 나가서 살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협의가 없는 한 알기 어렵다”고 답했다.
고진숙 미래통합당 용산구의원은 “용산 구민들을 위한 체육관을 짓겠다고 하면 합법적으로 지어야 마땅하다. 체육관이 시야 확보를 방해해 교통사고 건수가 증가했다고 감사원 보고서에 나와 있다”며 “구는 늦었지만 시와 협력해 구민을 위한 행정을 바로잡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