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종료 코앞 후임자 하마평에 다른 ‘현직’ 가능성…은행연합회부터 민간 금융지주까지 ‘도미노’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의 임기가 4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그가 다른 자리로 옮겨 갈 경우 금융권 CEO들도 연쇄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사진=박은숙 기자
금융권에서는 이동걸 회장이 산은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더라도 ‘은퇴’는 아닐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올해 68세로 적지 않은 나이지만 풍부한 이론과 행정 능력까지 갖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산업연구원과 금융연구원을 거쳤고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에서, 노무현 정부에서는 금융감독위원회와 증권선물위원회에서 일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금융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현 정부 금융부문 인력풀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금융권의 관측이다. 실제로 이동걸 회장은 지난해 9월 ‘야심’이라 불릴 만한 속내의 일단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9월 열린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개인 의견이라는 전제를 달면서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의 통합을 정부에 건의해볼 생각”이라고 발언해 파장을 일으켰다.
정부가 산은-수은 합병론을 일축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동걸 회장의 이 발언은 정책금융 분야를 총괄하는 거대 국책은행의 수장 자리를 원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최근에는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한국은행을 작심 비판해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결국 관심은 이동걸 회장이 자리를 옮긴다면 어디로 갈 것이냐에 쏠린다. 현 정권에서 이 회장의 무게감을 감안하면 장관급 자리도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여당과 마찰을 빚으면서 교체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자주 거론된다. 하지만 이 회장의 성향을 감안할 때 인사청문회와 언론 검증 등을 거쳐야 하는 자리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금융권은 이동걸 회장이 상대적으로 어깨가 가벼운 자리를 원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막중한 책임을 덜어낼 수 있는데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자리가 날 곳들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회장 자신도 지난해 말 “임기가 끝나면 사회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커리어를 마무리해볼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거물인 이동걸 회장이 움직이게 되면 금융권에서는 연쇄적인 자리 이동이 불가피하다. 우선 비워둘 수 없는 자리인 산은 회장을 누가 채울지가 급선무다. 금융권에서는 이미 후임자 하마평까지 나돌고 있다. 기업 지원과 구조조정이 가장 중요한 임무가 된 시점인 만큼 산업은행 내부 사정은 물론 정부와 손발을 맞출 인물들이 주로 거론된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나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꼽힌다. 김용범 차관은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증권선물위원장을 거쳐 지난해 기획재정부로 옮겼다. 손병두 부위원장은 기재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2014년 이후 금융위에서 근무 중이다. 금융정책국장, 사무처장을 지냈다. 두 사람 모두 금융 전문가인 만큼 산은과 화학적 융합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다. 다만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될지에 관해서는 이견도 나온다.
이동걸 회장이 새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점쳐지는 자리들도 벌써부터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자리가 은행연합회 회장이다. 김태영 현 은행연합회 회장의 임기는 오는 11월에 끝난다. 은행연합회장도 역대 연임 사례가 전무한 자리다. 특히 은행연합회장은 시중은행보다는 국책은행장이나 특수은행을 거친 인사들이 차지한 사례가 많았다. 김태영 현 회장도 NH농협은행의 전신인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 출신이다.
이동걸 회장이 한국거래소 이사장 자리를 원한다는 소문도 퍼져 있다. 금융 공기업이라는 점에서 이 회장의 커리어를 마무리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평가받는다. 이 회장이 증권선물위원장 출신인 만큼 업무 파악도 빠를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현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의 임기는 오는 11월 1일까지다.
민간부문의 자리도 거론된다. 올해 11월 두 번째 임기가 만료되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을 대신해 이동걸 회장이 등판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렇듯 민관 분야 여러 곳에서 이동걸 회장이 차기 수장으로 거론되면서 금융권은 그의 거취가 어떻게 정해지는지에 시선이 고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 회장이 산은에 남느냐 떠나느냐에 따라 다른 자리들이 연쇄적으로 들썩이기 때문이다.
금융권 고위급 인사는 “이동걸 회장은 정파를 뛰어넘는 정무적 감각까지 겸비했으니 그가 움직인다면 현직 수장은 자리를 비워준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