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등 기지개…김종인 새 인물 영입 성공 여부엔 회의론 높아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왼쪽)와 유승민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박힌 돌 “감히 나를? 어림없지”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하기도 전 당내 잠룡들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간판을 한번 걸면 강제로 떼어내기 어려운 만큼, “내가 대권주자”라는 선언을 통해 간판부터 서둘러 달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무소속 신분인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21대 국회 개원 직후 ‘전국 순회 정치 버스킹’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당의 도움 없이 인지도와 개인기를 앞세워 자력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려, 통합당이 자신을 대권주자로 선택하도록 만든다는 전략이다.
실제 홍 전 대표는 지난 총선에서도 버스킹을 통해 대구 수성을 유권자들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평가를 들었다. 홍 전 대표의 버스킹을 본 대구 수성을의 한 40대 여성 유권자는 “홍 전 대표가 입이 거칠고 막말하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거리에서 시민들과 직문직답을 하는 광경을 보니 아는 것이 굉장히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막말이 아니라 유머도 있고 어려운 정치 논리를 쉬운 언어로 풀어주는 재주가 보였다”고 평했다.
통합당 한 재선 의원은 “정치판에서는 ‘지지율이 깡패’라는 말이 있다. 지지율이 높으면 비대위원장 아니라 비대위원장 할아버지가 와도 지지율 높은 주자를 대선 후보군에서 배제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홍 전 대표가 통합당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기 위해선 복당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는데 김종인 체제에서는 홍 전 대표 조기 복당이 쉽지 않을 것이다. 홍 전 대표가 당이 자신을 불러 대권 후보로 앉히지 않을 수 없도록 버스킹을 통해 외부에서 자력으로 ‘홍카콜라 바람’을 몰고 들어가겠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정치권에서 ‘신중하기로 소문난’ 유승민 의원도 이례적으로 빠른 행동에 나섰다. 20대 국회를 끝으로 16년 의정활동이 일단 중단된 유 의원이 임기 종료를 앞두고 5월 26일 팬카페에 남긴 영상 메시지를 통해 2022년 대선 도전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는 “내년 대선후보 경선과 1년 10개월 후 있을 2022년 3월 9일 대선이 마지막 남은 정치 도전이다. 반드시 보수 단일후보가 돼서 본선에 진출, 민주당 후보를 이기겠다”며 배수진 의지를 비쳤다.
유 의원은 21대 국회 개원 이후 국회 인근에 사무실을 내고 본격적으로 대선 준비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제 위기가 닥친 만큼 해법 제시를 통해 ‘경제 메시지’ 발신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원희룡 제주도 지사는 언론을 통해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5월 26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너무나 절박하고 무한 책임감을 느낀다. (차기 대선에서) 모든 걸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대권도전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
원희룡 제주지사. 사진=박은숙 기자
그는 지사직을 유지한 상태에서 당내 경선에 참여한다는 방침이다.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과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가 지자체장 자리를 지키면서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 나갔던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모습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김태호 무소속 의원 등도 이미 대권 도전을 위한 물밑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지도와 개인기가 탄탄한 만큼 언제라도 치고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권주자는 아니지만 김무성 의원은 4·15 총선에 불출마하며 국회와 가까운 서울 마포에 사무실을 열고 ‘대선주자 만들기’에 이미 들어갔다. 김 의원은 김성태·강석호 의원 등과 힘을 합치면서 ‘킹메이커’ 세 불리기에도 나서고 있다.
통합당 인사는 아니지만 ‘보수·중도 연합군’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경우 아직은 구체적 행보를 시작하지 않고 있다. ‘총선 패장’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도 김종인 체제의 진행 상황을 보면서 행동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박힌 돌’ 잠룡들은 일단 김 위원장과의 초반 정면충돌은 피하는 모양새다. 처음부터 전면전을 벌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홍 전 대표는 “이왕 됐으니 당을 제대로 혁신·개혁 해달라”며 일단 몸을 낮췄고, 오 전 시장도 “청년의 목소리를 담아달라”고 당부했다.
영남의 한 다선 의원은 “지금은 김종인 위원장이 입장해 국민들 관심이 쏠린다. ‘저 사람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할까’라는 호기심이 있다. 컨벤션 효과다. 그렇기에 대선 잠룡들은 일단 ‘나는 대선후보’라는 간판만 먼저 걸어놓고 공세적 입장보다는 김 위원장이 싸움을 걸어올 때에 대비해 총알을 비축해놓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굴러온돌, “차르 식으로 돌진”
6월 1일 취임하는 김 위원장은 그동안 언론 인터뷰를 통해 홍준표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 등 2017년 대선 당시 후보들에 대해 “지난 대선에서 검증이 끝났고 시효가 다했다”는 선언적 발언을 했다. 이어 다음 대선의 시대정신은 ‘40대’와 ‘경제전문가’라고 적시했다. 김 위원장 발언대로라면 현재 이름이 거론되는 잠룡들은 대선 후보 명단에 올라오지 못한다.
6월 1일 취임하는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주호영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김 위원장의 세대교체 시도는 비대위원 선임에서도 나타난다. 전체 9명 비대위원 중 여성이 2명, 1980년대생 청년이 3명으로 구성됐다.
김 위원장은 속내를 초반부터 드러내기도 했다. 5월 27일 통합당 전국조직위원장회의 비공개 특강에서 김 위원장은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관련 “정말 바보 같은 짓”이라며 오 전 시장 면전에서 직격타를 날렸다. 특강에 참석한 의원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오 전 시장이 보는 앞에서 “당시 한나라당(통합당 전신)이 ‘이건희 아들에게도 공짜로 밥 주란 얘기냐’는 반대논리를 폈는데, 이건희 아들 같은 사람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되느냐. 참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을 잘 아는 이들은 그가 나이는 많지만 어느 젊은이보다 유연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있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학자’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의 추진 방식, 결정의 순간에는 ‘차르’식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쾌도난마식으로 달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김 위원장은 서강대 교수 재직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요청해 현행 의료보험 제도 도입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경제관료들로부터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고, 노태우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 재직 때는 토지공개념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좌파 사회주의 정책이란 재벌의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2012년 대선에선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경제민주화 공약을 관철하려다 당시 박근혜 후보와 마찰을 빚어 결국 사퇴했다.
비대위는 지도부회의 공개 발언을 가급적 김종인 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만 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비대위원들이 공개 석상에서 당내 민감한 사안 등을 놓고 각자 견해를 밝히거나 언쟁을 벌이는 상황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는 곧 ‘한 목소리만 내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통합당의 수도권 한 전직 당협위원장은 “김 위원장이 정책적 사고를 할 때는 시대를 뛰어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 맞다. 국민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는 시대정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게 김 위원장 생각”이라면서도 “비대위원 선임만 봐도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원이 보이지 않는다. 김 위원장이 ‘내 뜻대로 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회의 방식도 다양한 의견이 많이 나오도록 진행하지는 않고, 자신의 메시지를 관철하려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김 위원장 발언과 행태만 봐도 당내 잠룡들에게 ‘치명적 결과’가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내다봤다.
오 전 시장에 대한 공개 비판 발언만 봐도 향후 김 위원장이 가혹한 비판을 통해 잠룡들을 한 명씩 주저앉힐 것이라는 전망이 여러 당내 구성원을 통해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여러 사람이 듣는 자리에서 “지금 통합당에는 대선주자가 없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잠룡들은 ‘자칭’ 대선주자일 뿐,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타칭’ 대선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새 인물을 통해 기존 잠룡들을 압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혜성같이 등장해 대권을 거머쥔 사례는 대한민국 헌정사에 없었기 때문. 김 위원장도 최근에는 “연령을 꼭 고정시킬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입장을 바꾸고 있다. 40대에서 찾지 못하면 50대에서도 가능하다는 식이다.
통합당 한 현역 의원은 “김 위원장이 좋은 인물을 찾는 노력을 하는 것은 좋지만 지명·점지 방식은 안 된다. 왜냐하면 김 위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같은 보스형 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망각하고 밀어붙이는 식으로 가면 수습할 수 없는 파열음이 나온다. 모두가 나와서 경쟁하는 한마당 잔치가 가장 좋다”고 지적했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