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최초 양 타석 홈런, 장원진 이종열도 팀에 공헌…미국 STL 8명 보유 상대팀에 지옥 선사하기도
KT 로하스는 최근 좌우 연타석 홈런이라는 진귀한 기록을 세웠다. 사진=연합뉴스
올해 KBO 리그 보류 명단에 정식으로 등록된 ‘우투양타’ 선수는 총 7명. 국해성(두산 베어스), 윤영삼·문찬종(키움 히어로즈), 김재현(SK 와이번스), 홍성민(NC 다이노스), 고장혁(KIA 타이거즈), 멜 로하스 주니어(KT 위즈)가 전부다. 키움이 유일하게 2명의 스위치히터를 보유했고 LG 트윈스,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롯데 자이언츠 소속 선수는 한 명도 없다.
이 가운데 유일한 외국인 선수인 로하스는 시즌 개막 첫 달부터 스위치히터만 만들 수 있는 진기록을 세웠다. 지난 5월 23일 잠실 LG전에 4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전해 5회 오른쪽 타석, 7회 왼쪽 타석에서 각각 홈런을 쳤다. KBO 리그 역대 세 번째 좌·우 연타석 홈런 기록이다.
첫 번째 홈런은 3-0으로 앞선 5회에 나왔다. 1사에서 상대 선발투수 차우찬을 상대로 좌월 홈런을 때렸다. 로하스는 좌완인 차우찬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우타자로 나섰고, 볼카운트 2볼-2스트라이크에서 6구째 낮은 커브를 걷어 올려 왼쪽 담장을 넘겼다. 시즌 3호포. 타격 밸런스가 무너져 무릎을 구부린 자세로 타격했는데도 타구가 담장을 넘어갔다.
로하스의 홈런쇼는 4-2로 앞선 7회 공격에서도 이어졌다. LG 우완 투수 송은범을 상대로 좌타자로 나서 홈런을 터뜨렸다. 2사 1루 볼카운트 1볼에서 바깥쪽 낮은 공을 밀어쳐 좌월 투런포를 쏘아 올렸다. 시즌 4호. 이 홈런도 한가운데로 들어온 공이 아니라 바깥쪽으로 휘어 나가는 공을 밀어서 담장 밖으로 보낸 홈런이라 큰 화제를 모았다.
스위치히터가 한 경기에서 좌·우 타석 모두 홈런을 친 사례는 그동안 총 여덟 번 나왔다. 최초 기록은 1999년 롯데 외국인 타자 펠릭스 호세. 그해 5월 29일 전주 쌍방울전에서 4회 왼쪽 타석, 8회 오른쪽 타석 홈런을 각각 쳤다. 2년 뒤인 2001년에는 호세의 팀 동료였던 롯데 최기문이 국내 타자로는 최초로 5월 20일 인천 SK전에서 4회 우타석, 9회 좌타석 홈런을 터트렸다. LG 서동욱은 2008년 9월 25일 인천 SK전(6회 좌타석, 9회 우타석)과 2010년 5월 12일 청주 한화전(5회 좌타석, 8회 우타석)에서 2년 간격으로 이 기록을 작성해 화제를 모았다.
이후 네 번은 모두 외국인 선수의 기록이다. LG 소속이던 조쉬 벨이 2014년 4월 1일 잠실 SK전에서 3회 오른쪽 타석 홈런과 9회 왼쪽 타석 홈런을 만들어냈다. 이후 로하스가 2018년 7월 28일 수원 LG전(3회 좌타석, 8회 우타석)과 2019년 8월 24일 잠실 LG전(1회 우타석, 8회 좌타석)에 이어 올해 개인 세 번째 기록 달성에 성공했다. KBO 리그에 처음 발을 내디딘 2018년부터 3년 연속 한 경기 좌·우 타석 홈런 기록을 만들어내고 있다. 상대 팀이 모두 LG라는 점도 눈에 띈다.
여덟 번의 기록 가운데 양 타석 홈런을 연타석으로 때려낸 기록은 단 세 번뿐이다. 서동욱이 2008년과 2010년에 두 번 모두 연타석 홈런을 쳐 유일한 기록 보유자였다가 올해 로하스가 10년 만에 역대 세 번째로 같은 명장면의 주인공이 됐다.
#전설의 스위치히터는 누가 있었나
한 경기에서 좌·우 타석 홈런을 친 적은 없지만 LG 박종호는 KBO 리그 전체 타자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두 타석에서 모두 홈런포를 쏘아 올린 주인공으로 남아 있다. 1993년 5월 4일 태평양전에서 3회 오른손 안병원을 상대로 홈런을 친 뒤, 이틀 뒤인 6일 같은 팀과 경기서 왼손 김홍집을 상대로 다시 홈런을 뽑아냈다.
박종호는 1992년 LG에 내야수로 입단한 뒤 수비에 비해 타격이 약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스위치히터로 변신한 사례다. 처음에는 스스로 반신반의해 회의감에 휩싸였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양쪽 타석에서 모두 좋은 타격을 할 수 있게 됐다. 그 후 역대 가장 성공한 스위치히터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1980년대 후반 태평양에서 뛴 내야수 원원근은 KBO 리그 최초의 스위치히터로 기록돼 있다. 장원진 이종열 황진수 등도 현역 시절 스위치히터의 희소가치를 잘 살려 팀에 힘을 보탠 선수들이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선 치퍼 존스, 카를로스 벨트란, 에디 머레이, 호르헤 포사다 등이 전설적인 스위치히터로 꼽힌다. 미키 맨틀은 스위치히터로는 역대 최다인 통산 홈런 536개를 때려내는 기염을 토했다.
심지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1985~1987년 스위치히터 8명을 보유해 쏠쏠한 덕을 봤다. 빈스 콜먼, 윌리 맥기, 톰 헤어, 잭 클락, 앤디 반슬라이크, 테리 펜들턴, 아지 스미스, 톰 니에토 등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타자 대부분이 양쪽 타석 타격이 가능해 상대 투수들에게 지옥 같은 경험을 선사했다. 2009년엔 뉴욕 양키스가 타선에 마크 테셰이라-호르헤 포사다-닉 스위셔-멜키 카브레라, 스위치히터 4명을 중심 타자로 기용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박종호는 KBO 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스위치 히터로 평가받는다. 사진=연합뉴스
#왜 스위치히터는 사라지고 있나
하지만 현대 야구에서 스위치히터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성공하기가 무척 어려운 탓이다. 양쪽 타석에서 모두 타격 밸런스를 찾아야 하니 남들보다 2배 이상 노력해야 하고, 실패했을 때 위험 부담도 너무 크다. 과거에도 KBO에 ‘우투양타’로 등록된 선수 대부분이 사실상 왼쪽 타석에서 주로 타격을 했다. 아무리 스위치히터라 해도 원래 자신이 주로 쓰는 손으로 타격하는 게 훨씬 편하기도 하고, 인간의 신체 구조상 왼손 타격과 오른손 타격 때 쏟을 수 있는 힘을 고르게 분배하기가 어려워서다.
이 때문에 스위치히터 대부분이 좌타석와 우타석에서 다른 타격법을 사용하고 있다. 왼쪽 타석에서는 타율이 떨어지는데 홈런이 많고, 오른쪽 타석에서는 타율이 높은데 홈런이 많이 안 나오는 식이다. 왼쪽 타석에서는 수준급 성적을 내는 타자가 오른쪽 타석에서는 평균 이하의 성적에 그치는 사례가 가장 많다.
물론 이 정도만 되어도 수준급 스위치히터로 불릴 수 있는 성공 사례에 속한다. 많은 타자들이 양쪽 타석을 다 준비하다 한 타석도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아마 시절 큰 기대를 모았던 유망주들이 프로에 와서 스위치히터 변신을 시도하다 결국 다시 좌타자나 우타자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SK 간판타자 최정도 한때 스위치히터 변신을 시도하다 포기한 적이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훈련하지 않았다면, 잘하는 한쪽 타석에 집중하는 게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KBO 리그 스위치히터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로하스는 “스위치히터를 원하는 후배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아무래도 공을 보는 데 이점이 있다”면서도 “양손으로 타격하는 것은 무척 힘들고, 훈련도 2배로 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양손으로 모두 잘 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는 ‘인내’와 ‘끈기’다. 로하스는 “스위치히터가 되기 위한 고생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과 두 배의 노력을 할 수 있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따라서 일상생활을 오른손으로 하지만 좌타석에 서고 싶은 선수들은 대부분 스위치히터 대신 ‘우투좌타’를 선택했다. 본능을 거스르되 양쪽으로 힘을 분산하지 않고 아예 한쪽에 ‘올인’하는 것이다. 2001년 등록선수 기준으로 우투좌타 선수는 12명, 스위치히터는 10명일 정도로 숫자가 비슷했지만, 지금은 스위치히터보다 우투좌타 선수가 10배 이상 많다.
이유가 있다. 야구는 기본적으로는 왼손타자가 유리한 종목이다. 같은 타자가 공을 친 다음 1루까지 달리면, 좌타자가 우타자에 비해 최소한 두 발 정도는 앞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좌타자는 타격 후 몸이 자연스럽게 1루 방향으로 회전하게 된다. 스타트를 더 원활하게 끊을 수 있다. 발까지 빠른 선수라면 내야 땅볼 타구로도 안타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프로야구에는 오른손 투수가 왼손 투수보다 훨씬 많다. 좌타자들은 타석의 위치상 오른손 투수들의 공을 더 오래 볼 수 있다. 한 원로 야구 관계자는 “1997년부터 프로 출신 지도자들이 아마 야구를 지도할 수 있게 됐는데, 이때 프로에서 직접 왼손타자들의 장점을 느껴본 지도자들이 선수들에게 일제히 좌타석에 설 것을 권유하기 시작하면서 스위치히터와 좌타자 전향 붐이 일었다”며 “다만 스위치히터 도전을 하다 실패하는 선수들이 늘어나자 점점 좌타자 쪽으로 편중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래도 여전히 스위치히터는 많은 선수들에게 ‘이루지 못한 소망’이다. 오른손잡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좌타자 훈련을 해 프로에서 성공한 A 선수는 “지금은 늦었지만 다시 태어나면 어릴 때부터 스위치히터 훈련을 하고 싶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치퍼 존스처럼 스위치히터로 성공한 선수가 많지 않느냐”며 “나도 어릴 때 좌타자를 선택했지만 좌타자가 이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좌투수가 나올 때 좌타자는 부담이 많아서 오른쪽 타석에도 설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털어 놓았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