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 전선옥 씨 “서울 덕수중 전학 적응 못해 ‘눈물바람’…남매 희생에 창모는 항상 미안한 마음”
NC 좌완 구창모는 현재 KBO 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투수다. 사진=연합뉴스
KBO리그가 ESPN을 통해 미국 전역에 중계되는 상황에서 최근 ESPN은 좌완 투수 구창모의 활약에 주목했다. 그가 급격히 성장한 배경을 분석하면서 메이저리그(MLB) 100년간 한 달에 5차례 이상 선발 등판해 평균자책점과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를 모두 0.60 이하로 유지한 투수는 2015년 제이크 아리에타와 1986년 마이크 위트뿐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구창모와 관련된 다양한 분석 기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일요신문은 구창모를 뒷바라지한 어머니 전선옥 씨(54)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성장 과정을 살펴봤다.
구창모는 아버지 구동현 씨(56)와 어머니 전선옥 씨의 2남 1녀 중 둘째다. 어릴 때는 합기도 꿈나무였다. 세 살 위의 형과 함께 합기도장을 다니며 천안 합기도시범단에서 활약할 정도로 남다른 실력을 발휘했다.
“형인 경모도 운동신경이 뛰어났지만 창모도 운동신경이 발달돼 있었다. 합기도 관장님이 두 아이들을 합기도 선수로 키우고 싶다며 애지중지하셨다. 그때는 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던 터라 아이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몰랐고, 그냥 관장님한테 모든 걸 맡겼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전화해서는 창모를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시키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이유는 야구부 때문이었다. 야구선수 구창모를 만들겠다며 야구부가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시킨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구창모 아버지는 한양대 야구부 출신
어머니 전선옥 씨는 구창모가 처음 야구와 인연을 맺은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구창모 아버지인 구동현 씨는 한양대학교 야구부 출신이다. 프로 선수를 꿈꾸며 대학 때까지 야구 선수로 활약했지만 부상으로 야구를 접은 회한이 있었다. 두 아들 중 왼손잡이인 구창모에게 야구 선수의 자질을 발견한 아버지는 아들이 합기도 선수보다 야구 선수로 더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야구부가 있는 초등학교 감독과 면담 후 구창모를 전학시켰다고 한다.
“당시 창모는 전학 자체를 힘들어 했다. 성격이 워낙 내성적이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아침에 차로 학교까지 데려다 줄 때마다 눈물을 쏟았다. 그때 창모를 달랬던 말이 ‘휴대폰 사줄 테니 야구 열심히 하자’였다. 그 말을 들은 후 가까스로 눈물을 멈추고 차에서 내렸다. 나 또한 처음에는 창모 아버지의 생각을 따를 수 없었다. 상의 한 마디 없이 아들을 야구 시킨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을 리 없었는데 창모 아버지가 워낙 지극 정성으로 창모를 뒷바라지했다.”
구창모는 천안남산초등학교 졸업 후 덕수중학교 야구부에 입학한다. 천안이 집인 구창모는 아버지의 친구인 최해명 코치(두산 베어스)의 보살핌을 받으며 서울에서 생활한다.
“그때 창모가 왜소한 편이었다. 최해명 코치 사모님이 창모를 잘 챙겨주신 덕분에 조금씩 살이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야구선수로서의 체격에는 못 미쳤다. 당시 덕수중학교 감독님께서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지금 창모가 시합에 나가는 것보다 마음 비우고 체격과 체형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하고, 창모의 기본기가 잘 돼 있으니 몸만 키우면 지금보다 더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다고 조언해주신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시합 못 나가는 게 걱정이었는데 감독님은 미래를 내다보고 말씀해주셨다. 감독님이 나한테 연락하실 때마다 ‘어머님, 창모한테 맛있는 음식 많이 해 주세요’라는 말만 반복하셨으니까. 나랑 창모 아버지도 창모에게 야구 관련해서 스트레스 받지 말고 좋은 거 먹으면서 재미있게 야구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당시 덕수중학교에는 야구 잘하는 선수들이 정말 많았다. 문석종(NC), 신동민(SK), 김주성(LG) 등이 창모랑 같이 야구했던 선수들이다. 창모의 출전 기회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천안북일고 아닌 울산공고 간 사연
덕수중학교를 졸업한 구창모는 서울이 아닌 울산공고에 입학한다. 서울의 명문 야구팀에서 구창모를 스카우트하려 했지만 구창모 아버지는 친구가 감독으로 있는 울산공고에 입학시킨다. 그 친구는 앞에 언급한 최해명 코치다. 최 코치는 두산 코치로 가기 전 울산공고 야구부 사령탑을 맡았다.
“창모는 고등학교 진학 관련해서 가급적이면 북일고를 희망했다. 집이랑 가까운 데서 학교에 다니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일고 진학이 성사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 설득으로 울산공고로 갔다. 최 감독님(최해명 코치)이 창모를 어린 시절부터 보셨고, 장단점을 잘 파악하셨기 때문에 믿고 맡길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서울이 아닌 울산공고에서 야구했던 게 창모한테는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구창모 아버지는 아마추어 시절 혹사로 팔 상태가 악화되는 바람에 더 이상 공을 던질 수 없었다고 한다. 이 경험은 구창모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버지가 구창모의 몸 상태에 각별히 신경 쓰면서 집중 관리한 것이다.
“사실 창모 형인 경모도 야구를 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우리 집 형편으로 두 아들을 모두 운동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창모가 야구하면서 형과 여동생이 희생한 부분이 크다. 둘 다 학원 한 번 보내지 못했을 정도니까. 그걸 창모가 항상 미안해하고 고마워한다.”
어머니 전 씨는 집안 형편이 안 좋아지면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운동 시키는 다른 학부모들과 달리 아들이 야구하는 걸 제대로 지켜보지도, 챙겨주지도 못했다. 그러다 구창모가 고2 때도 성장 속도가 더딘 걸 보고 회사를 정리한 다음 울산공고 인근에 방을 얻어 혼자 지내면서 아들의 식단을 챙겼다고 한다.
“창모가 점심 저녁은 학교에서 먹기 때문에 아침과 간식을 챙겨줬다. 중학교 때부터 계속 체격 문제로 고민했지만 학부모들이 창모가 공 던질 때마다 ‘폼이 정말 예쁘다’고 칭찬해줘서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고2 때는 대학이든 프로든 미래가 걸린 시기라 내가 옆에서 챙겨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덕분에 창모도 안정된 상태에서 선수 생활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고2 때 큰 키가 지금의 키다.”
#“경기 보려 해도 심장이 떨려”
어머니 전 씨는 2014년 9월 KBO 신인 드래프트 현장에 남편과 함께 참석했다. 처음에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면 대학 진학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고 현장에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 당시만 해도 창모가 프로 지명을 받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 줄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다 드래프트장에 온 많은 선수들이 지명받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우리 창모가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걸 깨달았다. 창모가 NC 유니폼을 입을 때 가장 감격했던 사람이 남편이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이 해줬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을 정도다.”
프로팀 입단이 전부인 줄 알았던 전 씨는 프로 선수가 된 아들이 더 크고 치열한 경쟁 세계에서 싸우고 있다는 걸 알고 매일 잠을 이루지 못한 채 걱정을 달고 살았다고 한다.
“창모가 등판하는 날이면 나는 절로 향했다. 창모의 경기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절에서 백팔배, 삼천배 하며 불공을 드렸다. 창모가 티켓을 구해 주며 경기 보러 오라고 해도 심장이 떨려 차마 야구장으로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 씨는 용기를 내 아들의 등판일에 맞춰 야구장을 찾았다. 마침 NC 팀 동료 박민우 부모를 만나 함께 관전할 수 있었는데 그때 박민우 아버지가 전 씨에게 이런 조언을 해준다.
“창모 어머님, 야구장에 오시면 주위에서 하는 말에 귀 닫고 보세요. 선수가 조금이라도 못하면 관중들이 엄청나게 욕을 하기 때문에 마음 단단히 잡수세요.”
박민우 아버지의 조언 덕분에 전 씨는 야구장에 가면 자리에 앉아 있지 않고 뒤에 서서 기도하는 심정으로 아들의 투구를 지켜봤다고 한다.
“야구는 잘할 수도, 못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로봇이 아닌 이상 어떻게 한결같이 잘 던질 수 있겠나. 창모한테 항상 마음 비우고 편하게 던지라고 말한다. 올 시즌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 길게 보고 가자고 했다. 주위에서는 류현진 선수 이름을 언급하며 칭찬이 자자한데 아직 갈 길이 멀다. 부모 입장에서는 부디 부상 없이 시즌을 잘 치르기만 바랄 뿐이다. 그래야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구창모의 소원은 돈을 많이 벌면 전원주택을 지어 가족들이 즐겁고 편안하게 사는 것이다. 야구장으로 출근하는 순간부터 시간 될 때마다 수차례 전화 걸어 어머니와 가족의 안부를 챙기는 구창모의 마음 씀씀이에 어머니 전 씨는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가족들의 희생과 사랑이 지금의 구창모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