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출연금 경쟁 규제…‘지역재투자’ ‘탈석탄’ 평가 중요성 커져
지난 2019년 6월 19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전국 지자체 탈석탄 금고 지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그린피스, 환경운동연합, 기후 솔루션 등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간 지자체 금고 재선정시 유치전의 핵심은 ‘협력사업비’였다. 이는 은행이 지자체와의 약정에 따라 지급하는 출연금이다. 협력사업비는 평가항목 가운데 배점이 가장 작지만, 타 평가항목에서 은행 간 변별력이 크지 않은 만큼 유치전의 당락을 가를 정도로 존재감이 컸다. 때문에 은행들은 금고를 유치하기 위해 과열 경쟁을 벌이며 적정 규모를 넘어선 협력사업비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금융당국과 행정안전부는 은행들의 지나친 협력사업비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평가기준을 개선하는 등 출연금 규제에 나섰다. 행안부는 지난해 3월 금고지정 평가기준을 개선하면서 협력사업비 배점을 기존 4점(총점 100점)에서 2점으로 축소하고 금리 배점을 기존 15점에서 18점으로 높였다. 더불어 금고 입찰에 참여한 금융기관의 순위와 총점을 공개하기로 했다.
앞서 금융감독원도 올해부터 은행권 금고 출연금을 규제하는 행정지도에 나선 상황이다. 금감원은 지난 1월 발표한 올해 검사업무 운영계획에 따라 은행 종합검사 시 재산상 이익제공 업무의 적정성(내부통제‧지배구조)을 핵심부문으로 들여다볼 방침이다.
은행들은 변경된 평가항목 배점에 주목하고 있다. 주목을 받고 있는 항목은 ‘지역재투자’. 행안부는 평가기준을 변경하며 기타사항으로 자치단체 자율항목 배점을 기존 9점에서 11점으로 높였다. 행안부는 자율항목 점수를 활용해 금융위의 지역재투자 평가결과 혹은 주민의견 수렴결과를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지역재투자’ 항목이 실제 주요 변수로 떠오른 곳은 오는 9월 시금고 재선정을 앞둔 부산광역시다. 한 해 12조 원 규모의 예산을 관리하는 부산시 금고 재선정에는 현재 주금고를 맡고 있는 BNK부산은행과 부금고를 맡고 있는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등이 참여해 경쟁을 벌일 예정이다.
부산시는 지난 5월 ‘금고 지정 및 운영 조례 일부 개정안’을 마련했다. 협력사업비 총액을 공개하고, 기존 평가항목을 합쳐 ‘지역재투자 실적’ 항목(7점)을 신설했다. 이와 관련, 부산경실련은 “부산시의회가 지역재투자 실적에 따른 배점(7점) 부여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지역재투자 실적 항목 전체 배점도 상향 조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사표를 던진 은행들은 저마다 행안부의 금고지정 평가기준 개선안에 따라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다. 지역은행보다 더 많은 출연금을 지출할 수 있는 타지역 시중은행 입장에서는 협력사업비 배점이 줄어든 것이 달갑지 않다. 반면 지역은행은 금리 배점이 높아진 것에 따른 금리경쟁에서 시중은행보다 우위를 차지하기 어렵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역재투자 부문 배점이 늘어나거나 지자체가 정하는 자율항목 배점의 경우 지역은행이나 지역에 네트워크가 잘 되어있는 NH농협은행이 유리할 수 있다”고 전했다. 반면 한 지역은행 관계자는 “지역은행의 경우 지역재투자 항목의 배점이 높아진 것에 긍정적이지만, 1‧2금고에 복수 교차지원이 가능해지는 부분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며 “그간 지자체 금고의 경우 대부분 지역은행이 1금고를, 시중은행이 2금고를 맡아왔다”고 말했다.
지역재투자와 함께 지자체 금고 선정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키워드는 ‘탈석탄’이다.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세계 금융권에서도 석탄투자에 발을 빼는 추세가 이어진 탓이다. 대표적으로 세계적인 투자은행 JP모건은 지난 2016년 부분적인 탈석탄 투자를 선언했으며, 지난 1월에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기후리스크는 투자리스크”라며 석탄투자 회수를 선언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부터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탈석탄 금고 지정 운동이 활발해졌다. 지난 2019년 6월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환경운동연합 등은 탈석탄 금고 지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단체는 “지자체가 금고 지정 시 탈석탄 투자를 선언, 이행하는 은행을 우대하면 탈석탄 투자에 무관심한 국내 금융기관들의 관심을 유도할 강력한 신호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충청남도는 지난해 10월 금고 관리 은행을 선정하며 국내 지자체 가운데 최초로 ‘탈석탄’과 ‘친환경에너지’를 평가항목에 넣었다. 충청남도는 배점 5점인 ‘지역사회 기여 및 협력사업’의 세부항목으로 탈석탄 선언 및 금융투자 여부(1점)과 친환경에너지 발전 투자횟수 및 총사업비(1점)를 포함시켰다.
다만 충청남도의 탈석탄 금고 선언에도 불구, 실제 금고지기 선정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충청남도 주금고에 선정되며 ‘탈석탄 은행’으로 언급된 NH농협은행과 부금고 KB국민은행의 석탄발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규모는 지난해 3월 기준 각각 371억 원, 864억 원이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은 지자체 금고 선정을 앞두고 매번 조금씩 변화하는 평가 기준에 대응해왔다”면서도 “탄소배출 감축의 경우 탈석탄 금고 흐름과 별개로 오래 전부터 이슈가 되었던 만큼 은행들이 그룹 차원에서 ESG경영(환경·사회·지배구조 요소를 반영하는 기업경영)을 추구하며 석탄투자를 줄이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