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할 매각 결정 현대HCN, SK바이오랜드 인수주체로 나서…‘유료방송 3위’ SK텔레콤, 현대HCN 점유율 절실
현대백화점그룹의 현대HCN이 최근 추진되는 두 건의 M&A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가운데, SK그룹과 현대백화점그룹이 계열사 간 M&A를 성사시킬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 SK텔레콤 본사 전경. 사진=박정훈 기자
현대HCN은 지난 3월 30일 공시를 통해 회사분할 결정을 알렸다. 현대HCN은 방송·통신 사업부문을 신설법인 현대HCN으로 분할하고, 이를 제외한 사업부를 존속법인 현대퓨처넷으로 남기기로 했다. 현대HCN은 “분할되는 회사(현대퓨처넷)는 새로운 성장동력 또는 잔존 사업과의 시너지가 높은 신사업을 발굴 투자하고 신설회사(현대HCN)는 시장 상황을 고려해 지분 매각, 외부 투자유치 등으로 경쟁력 강화 및 재무구조 개선을 도모하겠다”고 분할 목적을 설명했다. 분할 후 현대HCN을 매각할 계획을 이미 세워둔 셈이다.
현대HCN이 방송‧통신 사업부문을 매각 전 분할하는 이유는 매물의 덩치를 줄여 몸값을 낮추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시된 분할계획서에 따르면 분할 후 현대퓨처넷의 자산은 7362억 원, 현대HCN의 자산은 4125억 원이다. 또 기존 현대HCN 유동자산 4033억 원은 현대퓨처넷에 3347억 원, 신설회사 현대HCN에 686억 원으로 나뉘어 넘어갈 예정이다.
분할과 매각이 예정된 현대HCN이 SK바이오랜드의 인수주체로 나서게 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분할 이후 존속되는 현대퓨처넷의 유동자산은 3347억 원, 유동부채는 69억 원으로 재무 상태가 양호하다. 그룹에서 화장품 사업을 담당하게 된 패션 계열사 한섬의 경우 지난해 기준 부채비율이 26.31%,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370억 원인데 비해 현대퓨처넷의 부채비율은 1%,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556억 원이다. 더욱이 한섬은 지난 5월 11일 100억 원을 투자해 화장품기업 클린젠코스메슈티칼 지분 51%를 인수하기도 했다.
현대HCN은 사실상 분할 공시 때부터 SK바이오랜드를 인수해 화장품 사업을 영위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HCN이 공시한 분할계획서에는 현대퓨처넷의 사업목적에 신사업 발굴 투자와 지주사업이 포함돼 있다. 더불어 정관 목적에는 “자회사 등의 주식 또는 지분취득, 소유, 자회사의 제반 사업내용을 지배, 경영지원, 정리, 육성하는 지주사업”과 “의약품,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식품첨가물 제조 및 판매”가 포함됐다.
다만 현대HCN은 지난 5월 28일 조회공시 요구에 대한 답변을 통해 “SK바이오랜드 인수를 위해 SKC와 논의 중이나, 현재까지 인수여부 및 조건에 관해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SK텔레콤 유력하게 꼽히는 이유
현대HCN 신설회사는 매각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 26일 마감된 현대HCN 예비입찰에는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가 모두 참여했다.
현대HCN 인수전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곳이 SK텔레콤이다. 인수 동기와 의지가 강력하고 자금 사정도 넉넉하다. 이와 관련, 통신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유료방송 M&A로 통신 3사의 유료방송 시장 순위가 변경되면서 3사 모두 인수해야 할 이유가 하나씩은 있다”면서도 “SK텔레콤은 지난해 티브로드를 인수했지만 유료방송에서 LG유플러스에 밀려 3위로 내려앉았다. 3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유료방송시장 점유율은 KT(KT스카이라이프)가 31.52%, LG유플러스(LG헬로비전) 24.91%, SK텔레콤(SK브로드밴드, 티브로드) 24.17% 순이다. SK텔레콤이 현대HCN(시장 점유율 4.07%) 인수한다면 단숨에 순위를 뒤집을 수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현대HCN이 최근 추진되는 두 건의 M&A에 이름을 올리며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사진=최준필 기자
더욱이 SK텔레콤은 SK브로드밴드를 비롯 ADT캡스와 11번가 등 자회사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SK텔레콤은 SK브로드밴드의 연내 상장을 계획 중이었으나, 지난 3월 주총에서 코로나19 여파로 1년가량 계획이 지연될 수 있다고 밝혔다. SK브로드밴드는 상장 시기가 늦춰진 사이 현대HCN을 인수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
SK텔레콤의 재무구조 또한 경쟁 통신사에 비해 양호하다. 지난해 말 기준 SK텔레콤은 유동자산 5조 113억 원, 현금성자산 4972억 원을 보유하고 있다. KT의 경우, 수치상으로 유동자산과 현금상자산이 많지만 부채비율이 SK텔레콤에 비해 높다. LG유플러스 역시 CJ헬로비전 인수 이후 부채비율이 늘어난 상황이다.
특히 3사 가운데 현금성자산 규모가 가장 큰 KT의 경우, 합산규제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합산규제는 특정 사업자의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이 33.3%를 넘을 수 없도록 한 규제다. 이런 가운데 KT는 지난해 무산된 딜라이브 인수 딜에 대해 아직까지 끈을 놓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유료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HCN이 SK텔레콤과 사전에 탭핑(Tapping·시장조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신사들이 입찰에 모두 참여했다”며 “현대HCN의 재무나 영업 등 상태를 살펴볼 수 있어 추후 다른 M&A에 참고자료로 삼으려는 것이거나, 다른 통신사가 낮은 가격에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려는 심리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서로 가려운 곳을 아는 사이?
현대HCN을 중심으로 두 건의 M&A에서 현대백화점그룹과 SK그룹 간 계열사 빅딜 가능성도 엿보인다. SK그룹은 이미 2015년 현대HCN 인수를 위해 현대백화점 측과 접촉한 경험이 있고, 지난해에도 SK텔레콤 측이 먼저 현대HCN에 매각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SK바이오랜드 매각 또한 SK그룹 차원의 비즈니스모델(BM) 혁신 차원에서 예정된 수순이었던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매각을 준비하며 화장품 사업 진출 등 사업 재편을 준비 중인 현대백화점그룹과 접촉했을 가능성도 있다.
SK바이오랜드 경영권 지분 27.9%를 보유한 모회사 SKC는 BM 혁신 1단계를 마무리는 단계다. SKC는 지난해 비핵심 자산을 다수 매각하고 KCFT(현 SK넥실리스)를 인수했다. SKC는 SK바이오랜드를 매각해 KCFT 인수에 따른 재무부담을 덜 수 있다.
2014년 SKC와 함께 SK바이오랜드 인수에 참여했던 2대주주 파라투스인베스트먼트의 사모집합투자기구(PEF) 파라투스제일호의 존속기간이 지난해 11월 만료 예정이었던 것 또한 SK바이오랜드 매각이 예정됐다고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파라투스제일호는 지난 1월과 3월, 5월 연이어 지분을 매각하고 지난 6월 1일자로 보유 지분 전량을 처분했다. SKC와 특수관계자 또한 지난 1월과 4월 지분을 매각해 32.28%였던 지분을 28.05%로 낮췄다.
이와 관련, SK텔레콤 관계자는 “SK바이오랜드는 SKC 계열이라 매각 건은 SK텔레콤과 관계가 없다”고 전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 또한 “M&A 건에 대해서는 밝힐 내용이 없다”며 “(현대HCN 매각 관련) SK그룹이나 SK텔레콤 측과의 사전 논의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