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오진에 빙상연맹의 혹사 겹친 비극…변호사 “혹사 책임 물을지 논의중”
쇼트트랙 국가대표 에이스였던 고 노진규 선수. 골육종으로 사망한 뒤 4년에 걸친 소송 끝에 담당 의사의 과실이 일부 인정됐다. 사진=연합뉴스
유족은 2016년 노 씨가 사망한 뒤 건국대병원과 담당의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노 씨가 2013년 병원에서 어깨뼈에 종양이 생겨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병원과 의사가 해당 종양이 악성일 가능성을 낮게 보고 진단해 생존 기간이 단축됐다는 주장이었다.
의정부지방법원 제13민사부는 6월 4일 악성 종양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소치동계올림픽 출전을 우선에 두고 적극적인 조직검사나 치료를 하지 않았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해 유족에게 4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다만 법원은 일찍 치료를 받았더라도 호전됐으리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일실수입과 국가대표 연금, 치료비와 장례비 등 원고 요구를 기각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담당의 A 씨는 2012년 7월 왼쪽 어깨 부상을 입은 뒤 지속해서 통증을 호소하는 노 씨에게 “악성일 가능성은 떨어집니다. 동계올림픽 금메달 따고 그다음에 수술 결정합시다. 올림픽 후 수술합시다”라고 말해왔다. 해당 종양이 2013년 9월에서 2014년 1월 사이 4개월여 만에 6.5×4×8cm에서 13×15×13cm로 두 배 가까이 커지는 등 악성일 가능이 충분했지만 A 씨는 절개생검과 같은 수술적 조직검사 등의 적절한 추가 검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에 한국의료분쟁조정원은 법원에 보낸 답변에서 양성종양이라고 생각했던 종양의 크기가 급격히 커지는 경우, 처음부터 악성종양이었을 가능성 또는 양성종양이 악성종양으로 전환됐을 특이 사례일 가능성을 의심하고 이에 초점을 맞춰 검사와 처치를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노 씨는 2013년 12월 건국대병원에 내원해 A 씨에게 “많이 부어서 아픕니다. 운동은 하고 있는데 살살 하고 있습니다. 비행기 타고 왔다 갔다 하면 커지고 빵빵해지는 것 같습니다”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노 씨는 2014년 1월 원자력병원을 찾은 뒤 골육종 진단을 받고서야 해당 종양이 악성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상태였다. 노 씨는 병원의 오진과 대한빙상연맹의 혹사 속 통증을 참고 고강도 훈련을 해오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전명규 전 한국체육대학교 교수가 2019년 1월 기자회견을 열어 빙상계 폭력·성폭력 사태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전명규 전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1월 혹사 논란을 두고 노 씨 가족의 결정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전 전 교수는 “저는 의학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은 부모님들 판단에 맡겼고 저는 거기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인재 변호사는 “물론 법원에선 의사의 오진이 진규의 예후와 큰 연관이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초기에 발견했더라면 완치는 어려워도 목숨은 유지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안타깝다”며 “앞으로 빙상연맹을 상대로 혹사의 책임을 물을지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