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중개인, 매매보다 비싼 전세 거래로 리베이트 챙겨…명의 빌려준 바지사장 보증금 먹고 잠적 잇따라
2019년 6월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에선 한바탕 난리가 났다. 빌라 전세 입주민들의 전세자금이 한 번에 날아가게 생겼기 때문이다. 빌라를 대량으로 사들인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시점이 되자 잠적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문제가 된 집주인 가운데 한 명인 강 아무개 씨는 빌라 283채를 보유하고 있었다.
전세 사기 피해자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 이들에게도 꼼수를 써 집을 팔아준다는 검은 유혹이 찾아 온다.
이들이 물량을 대량으로 갖게 된 배경이 뭘까. 신축 빌라와 구옥 빌라 매매를 나눠 볼 필요성이 있다. 구옥 빌라는 기존 빌라 주인과 중개업자가 협상해 가격을 정하고 그 이상 받는 돈은 부동산 중개업자의 몫이 된다. 중개업자는 이렇게 구한 집에 들어갈 세입자를 구하기 시작한다. 대신 판매액이 2억 원인 빌라면 전세금을 2억 5000만 원 받는 식으로 계약을 한다.
전세 보증금을 많이 내는 대신 세입자에게는 돈으로 지원해 주는 경우가 많다. 중개업자는 전세 대출 받고 낼 이자에 보태 쓰라며 세입자에게 1000만 원 넘게 지원해주는 식이다. 최근 대출 이율을 따져보면 2억 원을 빌려도 2년 동안 이자비용이 1000만 원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잘만 풀리면 1000만 원 지원금을 받고 들어온 세입자는 아무런 지출도 없이 2년 살고 나갈 수도 있다.
만약 이런 조건을 미심쩍어하는 세입자에게는 전세보증보험을 권한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가입만 된다면 보증금을 떼일 위험도 없기 때문에 안심하고 입주할 수 있다. 최근 전세보증보험 가입률이 폭증세를 보이는 까닭이 빌라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2015년 3941건에 불과했던 전세금보증보험 가입자 수는 5년간 30배 증가했다. 전세보증보험 규모는 2015년 7000억 원대에서 2019년 30조 원을 돌파했다.
세입자를 구하고 나면 집주인을 바꿔야 한다. 중개업자는 빌라 주인에게 전세 계약을 맺으라고 한다. 빌라 주인이 집을 팔겠다고 했는데 전세 계약을 맺는 이유를 물으면 “전세 계약만 맺으면 바로 팔 수 있다”고 둘러댄다. 빌라 주인은 전세 계약을 체결하고 세입자는 보증금 2억 5000만 원을 주인에게 보낸다. 세입자는 부푼 꿈을 안고 새로운 집으로 들어온다.
빨간 선 안에 네모가 지원금이고 한 개에 100만 원이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아니면 알아보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빌라 주인은 2억 원을 챙겼다. 중개업자는 보증금 중 일부인 5000만 원을 받았다. 5000만 원 가운데 일부를 명의를 빌려준 사람에게 준다. 요즘 ‘명의 값’ 시세는 대략 300만 원에서 500만 원 선이라고 한다. 여기에 명의 대여자가 내야할 취등록세 및 각종 세금까지 내주고 나면 중개업자에게 떨어지는 돈은 대략 2000만 원에서 3000만 원 정도다. 공인중개사 B 씨는 “2억 원짜리 전세 계약 하나 하고 나면 양 쪽에서 받는 돈은 합쳐도 100만 원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이런 거래를 하는 부동산들이 은근히 많다”고 설명했다.
명의를 빌려준 사람은 본인 소유 집이 한 채, 두 채 늘어난다. 나중에는 500채 이상이 된다. 이렇게 되면 중개업자 입장에서는 전세 계약을 하기 더 좋다. ‘집주인이 집이 500채다. 그런 분이 사기를 치겠나’라고 설명하면 된다. 일반인들은 500채 재력가가 사기를 친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실상은 수백 채를 가진 빌라 주인이 빌라 반 지하에 사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쌓여가던 빌라는 한 번에 터진다. 처음 빌라 계약을 하고 2년 뒤 전세 만기가 돌아오면 강 씨처럼 잠적한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그나마 보증보험에 가입된 경우는 운이 따랐다고 할 수 있다. 간혹 보증보험에 가입됐어도 절차를 제대로 따르지 않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신축 빌라는 구옥 빌라보다 상황이 더 심각할 수도 있다. 신축 빌라의 경우 전세뿐 아니라 분양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B 씨는 “신축 빌라를 분양받으면 매매가와 별개로 분양 지원금이 3000만 원인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원금은 기호로 표기한다. 암호처럼 알이나 별 혹은 네모로 적어 놓고 분양업자가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홍보한다. 암호를 아는 중개업자는 분양을 받으면 지원액 일부를 매매인에게 선심 쓰듯 베푼다. 하지만 중개업자가 제공하는 지원금은 전부 분양가에 포함된 금액이다.
세대 건물 타입 옆에 괄호 친 ‘R26’이 지원금 규모다. 전문가끼리는 지원금이 2600만 원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아파트에선 벌어지지 않은 이런 일이 빌라에서만 일어나는 것일까. 이에 대해 A 씨는 “빌라와 달리 아파트는 액수 자체가 크고 시세 확인이 쉽다. 세입자가 아파트 전세 계약을 할 때 매매가 파악이 쉬워 전세 보증금을 많이 받는 거래를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인중개사들은 ‘호구’로 전락한 보증보험 상품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동영 전 민주평화당 의원도 비슷한 지적을 한 바 있다. 올해 1월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이었던 정 전 의원은 “2019년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사고는 1630건이 발생했고, 사고 금액은 3442억 원에 달했다”며 “세입자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을 의무화하고, 일정 규모 이상 주택임대사업을 하는 사업자에게는 보증금을 갚을 자본금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빌라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피해를 입은 세입자들 중에는 결국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전세 대출 연장이 안 되면서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공인중개사 C 씨는 “빌라 전세를 구할 때는 주변 시세를 잘 알아보고 공인중개사도 몇 군데씩 들러봐야 한다”면서 “1000만 원 지원해 준다는 곳은 1000만 원보다 더 많은 돈을 챙기게 돼 있다. 그런 곳은 아예 발길을 돌리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