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년 ‘추진력’ 윤호중 ‘윤석열 견제’ 이광재 ‘정책위의장 1순위’…“2년간 상왕 원맨쇼” 대체불가 회의론도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왼쪽)와 윤호중 법사위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과거 상왕의 위상은 어렵지 않겠나.” “마지막으로 킹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다.” 당내 의견이 분분한 만큼 이해찬 대표의 행보는 정치권 뜨거운 감자다. 여권에 따르면 이 대표는 민주당 8·29 전당대회 이후 파란만장했던 32년간의 현실 정치를 접고 ‘인생 2막’을 위한 회고록 집필에 들어간다. 회고록에는 유신정권에 맞서 학생운동을 한 1972년부터 반세기 동안의 정치 역정을 담을 예정이다. 상왕이 본 한국 현대사인 셈이다. 출간 시점은 차기 대선이 열리는 ‘2022년’이다. 영원한 킹메이커 이 대표의 ‘상왕 역할론’이 제기된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상왕의 좌우에는 김태년 원내대표와 윤호중 사무총장이 자리 잡고 있다. 친문 직계인 전해철 의원을 1차 경선으로 꺾은 김 원내대표는 당분간 당권파 친문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원내대표는 2012년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당시 이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최측근이다. 이른바 ‘김태년 효과’는 여당 싹쓸이로 끝난 21대 국회 원구성 협상 과정에서도 입증됐다. 김 원내대표는 그간 야당 몫이 관례였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애초부터 원내대표단 차원에선 ‘여당 법사위원장 확보’를 전제로 대야 협상에 나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미래통합당의 강력 반발에도 불구하고 ‘단독 개원’을 밀어붙인 것도 김 원내대표의 강력한 추진력이 한몫했다. 국회 한 보좌관은 “김 원내대표가 민주당 정책위의장 시절부터 차기 원내대표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며 “권력 의지가 결단력 등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평했다. 명분 없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도 김 원내대표의 강점이다. 그는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협상 과정에서 주호영 원내대표가 잠행 중이던 강원도 고성의 사찰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거대 여당이 ‘통합당=발목잡기’ 프레임에 가둘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명분 축적이 결정적이었다.
‘김태년 리더십’에 딜레마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복수의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원내대표는 명분을 축적하면 일단 고(GO)하는 성격이다. 중간에 결정을 번복하는 일명 ‘갈지자 행보’는 하지 않는다. 당권파 친문계인 데다, 정책통으로서 나오는 자신감의 자산이다. 하지만 김 원내대표의 리더십은 대야 협상과정에서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하기로 한다. 21대 국회 전반기 상임위원장 싹쓸이 과정에서도 김 원내대표의 강한 드라이브는 통합당의 퇴로를 막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도 “당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 중진 의원도 “전례 없는 상임위 독식은 임기 후반기를 맞은 정부에 치명상을 가할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7월 2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과반(50.7%)이 “민주당의 국회 상임위원장 단독 선출은 잘못됐다”고 밝혔다.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 맏형인 윤호중 사무총장 행보도 뜨거운 감자다. 윤 총장은 거여 상임위 독식의 분기점이었던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애초 기획재정위원장 1순위로 거론됐지만, 막판 법사위원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당권파 친문계의 위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윤 총장은 서울대 재학 시절인 1984년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함께 서울대 프락치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1988년 평화민주당 간사로 제도권 정치에 발을 들인 뒤 한광옥 전 의원의 보좌관, 국민의 정부에선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21대 총선을 통해 4선 고지에 올랐다. 야권 인사들과도 친분이 깊은 윤 총장은 여의도의 ‘팔방미인’으로 통한다.
‘검언 유착’ 수사지휘권 발동을 둘러싼 국면에서 윤 총장은 ‘윤석열 저격수’ 역할을 맡았다. 이해찬 대표의 함구령에도 윤 총장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충성해온 조직을 위해 결단하라”며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쌍끌이 작전을 개시했다. 서울중앙지검의 건의를 수용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일각에선 온건파인 윤 총장의 강성발언을 놓고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지만, 정치권 한 관계자는 “초·재선 때의 윤호중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윤 총장은 당권파 친문을 등에 업고 적폐청산 정점에 있는 ‘검찰 개혁’에 총력전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윤 총장의 운명은 파국으로 치닫는 ‘추미애-윤석열’ 격돌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순항 여부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지난 1월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만찬을 앞두고 악수를 나누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이광재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원조 친노’ 이광재 의원의 행보도 관심사다. 이 의원이 다시 여의도로 돌아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사는 다름 아닌 이해찬 대표다. 이 대표는 4·15 총선 당시 이 의원을 출마를 직접 요청했다. 민주당 산하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포스트코로나본부장인 이 의원은 21대 국회 공부모임인 ‘우후죽순’도 이끌고 있다. 이 의원은 민주당 차기 정책위의장 1순위로 꼽힌다.
이들 3인방이 당과 국회 요직을 꿰찰 경우 ‘상왕의 영향력’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 대표는 임기 마무리 국면이지만 ‘한명숙 사건’을 비롯한 정치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그는 6월 2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 유죄 확정판결 과정에 대해 “의구심이 많다”며 재조사에 군불을 지폈다. 반면 ‘윤미향 정의연’ 의혹에 대해선 “어느 정도 소명됐다”며 이슈를 잠재웠다. 최근 일파만파 확산된 부동산 논란에 대해선 “송구하다”며 부동산 정책 실패를 사실상 인정했다. 이후 당 주도로 부동산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임기 한 달 반 남기고 마지막 과제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주택자 청와대 참모진을 압박했다. 당 차원의 부동산 태스크포스(TF)를 전격 구성, 7월 임시국회 내에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부동산 관련 법안을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여권 안팎에선 “상왕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발휘됐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특히 청와대와 정부의 ‘민주당 패싱’에 대해선 격노했다. 이 대표는 7월 3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언론에 알린 뒤 당·정 협의를 요청하는 것은 사실상 당·정 협의라고 보기 어려운 것 아니냐”며 분개했다. 보도자료를 미리 낸 뒤 당과 논의하는 형식적인 당·정 협의는 거부하라는 지시였다.
이 대표가 언급한 ‘형식적인 당·정 협의 거부’는 지난 6·17 부동산 대책 발표를 말한다. 당 한 관계자는 “정부가 ‘대외비’라는 명목을 앞세워 당·정 협의 직전까지 관련 안건을 당에 통보하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이 대표는 당·정 협의를 민주당 산하 정책위에서 컨트롤하는 방안도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위에 ‘당 정책위’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들은 상왕의 작품인 20년 장기집권론부터 176석의 거여 출범, 당·정·청의 무게 옮기기 등을 언급하며 “당 내부 권력구도만 보면, 지난 2년은 상왕의 원맨쇼였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이유로 여의도 안팎에선 ‘김태년·윤호중·이광재’ 3인방이 상왕을 대체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이 대표의 ‘2022년 대선 킹메이커 역할론’과도 맞물려 있다. 3인방 제외 다수의 이해찬계가 낙선한 만큼 이 대표가 모종의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친노·친문 관계자들은 “지금 시대에 무슨 상왕 정치냐”라고 일축했다. 이 대표는 퇴임 후 회고록 집필과 함께 남북 관계 해법 찾기에 나설 예정이다. 이 대표는 평소에도 주변에 “은퇴 후 평양대표부 대표를 하고 싶다”는 속내를 밝혀왔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