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로 여겨지던 선납수수료까지 동원…‘IPO 앞두고 몸집 불리기’ 해석도
게다가 교보생명은 ‘금기’처럼 여겨지던 선납수수료까지 동원해 영업에 나선 것으로 나타나 결국 감독당국이 개입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금융권은 교보생명이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장부상 자산규모를 늘리는 작업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교보생명이 ‘독이 든 성배’로 불리는 저축성보험 판매를 크게 늘렸던 배경은 IPO를 앞두고 장부상 자산규모를 늘리는 작업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사진=최준필 기자
저축성보험은 보험사에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고객에게는 은행예금보다 훨씬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경쟁력이 있고, 판매채널에는 다른 상품보다 많은 수수료를 지급해야 적극적인 영업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높은 금리는 저축성보험 만기에 결국 큰 현금 출혈로 이어지고, 과도한 수수료는 수익성 하락을 불러온다. 이런 이유로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결과를 낳는 상품이 저축성보험이라는 것이 보험업계의 정설이다.
그럼에도 보험사가 저축성보험 판매에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주로 최고경영자(CEO)와 관계된 경우가 많다. 새로운 CEO가 부임했거나 특히 기존 CEO의 연임 여부가 결정되는 시기가 오면 단기간에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저축성보험에 힘을 쏟는다. 하지만 교보생명은 신창재 회장이 이끄는 오너 체제로 운영되는 회사다. 연임을 신경 쓸 이유도,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도 필요없는 구조다. 실제 교보생명은 그동안 저축성보험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교보생명이 올해 초부터 저축성보험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주로 은행을 통해 보험을 판매하는 방카슈랑스를 통해 저축성보험 매출을 급격히 늘리고 있다. 교보생명의 방카슈랑스 초회보험료 수입은 지난 1월 43억 원, 2월 47억 원에 불과했다. 그러다 지난 3월 67억 원, 4월 53억 원, 5월 61억 원 등으로 그래프가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6월에는 120억 원으로 수직상승했다. 교보생명의 방카슈랑스 월납 초회보험료 수입이 100억 원을 넘긴 것은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비결은 ‘선납수수료’에 있었다. 선납수수료는 고객이 보험료를 미리 내면 판매수수료도 앞당겨서 지급하는 방식이다. 주로 2~3년짜리 단기 상품인 저축성보험에는 처음 1년 치 보험료를 첫 달에 한 번에 내는 기능이 있다. 여기에 보험료의 2배까지 추가 납입할 수 있는 기능을 더하면 3년 치 보험료를 한 번에 낼 수 있다.
이를 통해 2년납, 3년납 저축보험을 일시납(거치형)처럼 가입하는 것이다. 교보생명은 일시납 형태로 가입하는 고객에게는 우대금리 등 각종 혜택을 제공했고, 은행에게는 일시납 방식으로 가입시키면 판매수수료도 한 번에 지급하는 방법으로 적극적인 영업을 이끌어냈다. DLF사태와 라임사태 등으로 어려움에 빠진 은행 입장에선 뭉칫돈이 들어오는 교보생명의 저축성보험이 판매 1순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다른 생명보험사들은 ‘멘붕’에 빠졌다. 저금리에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등으로 저축성보험 판매를 점차 줄이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2023년 도입되는 IFRS17은 저축성보험을 매출로 인식하지 않도록 했다. 오히려 저축성보험 판매가 늘어나면 부채가 증가한다. 고객에게 나중에 이자까지 얹어 돌려줘야하기 때문이다.
고객입장에서도 저금리로 만기환급금이 줄어드는 상황이라 별다른 메리트를 느끼지 못한다. 이 때문에 국내 생명보험사들의 지난해 저축성보험 수입보험료는 6.0%나 줄었다. 반면 보장성보험 수입보험료는 3.9% 늘었다. 올해는 더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기존의 관측이었다.
하지만 교보생명이 치고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고객을 뺏기지 않으려면 다른 보험사들도 비슷한 방식을 동원해 영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가뜩이나 지명도 등에서 교보생명에 밀리는 중소형 보험사들은 울며겨자먹기로 출혈 마케팅까지 감수해야 했다.
신창재 회장. 사진=일요신문 DB
과당경쟁이 벌어지면서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방카슈랑스 초회보험료는 1조 8527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1조 4919억 원 대비 24%나 급증했다. 당초 6% 이상 감소할 것이라던 예상과는 정반대 결과였다.
이렇게 되자 결국 감독당국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은행과 보험사들이 협의를 통해 선납수수료 정책을 자율적으로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결국 보험사들의 건전성을 해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만큼 조기에 정리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교보생명은 금감원의 권고를 받아들여 최근 선납수수료 지급을 중단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금융권은 교보생명이 이처럼 전에 없던 무리수를 둔 배경에 주목한다. 급하게 돈이 필요하거나 단기간에 몸집을 불려야 할 까닭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이와 관련해 어피니티 컨소시엄 등 재무적투자자(FI)와의 풋옵션 관련 소송이 거론된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이 내놓은 교보생명 지분 약 24%를 1조 2054억 원에 인수하면서 풋옵션이 포함된 계약을 체결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24%를 주당 24만 5000원에 사들이되 3년 내 기업공개(IPO)로 투자금을 회수하고, 불발되면 풋옵션을 행사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기업공개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갈등이 수면 위로 불거졌다. 결국 재무적 투자자들은 2018년 10월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을 상대로 풋옵션을 행사했다. 어피너티 컨소시엄은 당시 보유 주식 총 492만 주를 주당 40만 9912원에 매수해달라고 요청했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상장을 앞두고 있다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는 “매달 100억 원, 200억 원 수준인 보험료를 모아 2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돌려준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고, 결국 상장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면서 “IPO 과정에서 높은 몸값을 받으려면 회사 전체의 볼륨을 키울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