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사 선정 과정서 향응·접대 의혹 수사 착수…미국 증권거래위도 ‘채용 청탁’ 등 부정 의혹 제기
지난해 말,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국내에서 영업 중인 외국계 증권사 두 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수출입은행이 외화표시채권 발행과 관련해 주간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증권사들로부터 접대와 향응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내사를 벌여왔던 경찰이 압수수색에 나선 것은 혐의를 확인하고 증거 확보에 돌입했다는 의미가 된다.
수출입은행이 때아닌 경찰 수사로 긴장감에 휩싸였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수출입은행 본점. 사진=연합뉴스
수출입은행이 받은 혐의는 채권을 발행할 주간사로 일부 증권사를 부당하게 골라 위탁했다는 의혹이었다. 사실 말이 의혹이지 혐의는 이미 확인된 상태나 다름없었다. 경찰 수사는 자체적으로 착수한 것이 아니라 감사원의 수사 의뢰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앞서 감사원은 수출입은행이 주간사 일부를 미리 내정한 후 평가도 하지 않은 채 선정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수출입은행은 이 같은 선정 결과에 맞춰 평가 자료를 사후에 작성했고, 담당 단장은 선정된 주간사가 정당한 평가 절차를 거쳐 고득점을 받은 것처럼 평가 자료를 조작하도록 지시했다.
통상 은행이나 기업이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할 때는 현지 투자 유치망을 가지고 있는 증권사들이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한다. 특히 국내 수출입 기업의 자금 지원을 위해 설립된 수출입은행은 달러나 유로 보유가 필수인 만큼 1년에도 서너 차례 해외에서 외화표시채권을 발행한다.
이 과정에서 현지 투자 유치망이 넓은 국내·외 증권사가 채권 발행 주간사로 선정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외화표시채권을 발행할 때는 로드쇼(해외투자설명회)를 통해 글로벌 금융시장의 ‘큰손’들을 유치해야 하기 때문에 주간사의 역할이 절대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자금조달이 목적인 만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낮은 이자율로 채권이 발행되도록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일이라는 것이 금융권의 설명이다.
역할이 큰 만큼 증권사는 투자자를 모집해주는 대가로 은행으로부터 거액의 수수료를 받는다. 그리고 그만큼 주간사가 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실제로 수출입은행이 이번 일과 관련해 5년간 증권사에 지급한 수수료는 768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감사원은 파악했다.
문제는 수출입은행의 주간사 선정 과정이 상식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출입은행은 2014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17회에 걸쳐 채권 25조 9374억 원을 발행했다. 통상 외화표시채권을 발행할 때 주간사로 증권사 다섯 곳 정도를 선정한다. 주간사 선정은 증권사들이 제안서를 제출하면 이를 평가한 뒤 선정하도록 돼 있다.
수출입은행 내규에도 주간사는 은행이 증권회사에 제안서 제출을 요청하고, 증권회사가 제안서를 제출하면 평가를 거쳐 선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주간사 평가는 팀장 등 직원 10명이 평가자가 돼 항목별 점수를 매기고, 합산 점수가 높은 순으로 주간사를 3~6개 선정하도록 돼있다. 그런데 수출입은행은 임의로 두 곳 정도를 먼저 골라놓은 뒤 나머지 서너 곳만 제안서 평가를 거쳐 주간사로 선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출입은행이 이런 일을 벌인 배경에는 부적절한 대가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권에 따르면 수출입은행 담당자들은 뉴욕과 런던, 홍콩 등지에서 진행된 해외투자설명회 과정에서 몇몇 증권사로부터 접대와 향응 등을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경찰은 수출입은행 직원들이 접대 등을 받고 투자 유치 능력이 떨어지는 증권사를 주간사로 선정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이 경우 과도한 수수료 지급과 함께 불리한 조건으로 채권이 발행되는 피해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금융권의 전언이다.
최근에는 다른 의혹도 퍼지고 있다. 수출입은행이 채권 발행 주간사를 선정하면서 취업 청탁 등을 했다는 폭로가 미국에서 불거진 것.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금융위기 직후 수출입은행 고위 임원들이 국제투자은행 ‘바클레이즈’를 채권 발행 주관사로 선정해주는 대가로 친구 아들과 친인척의 채용을 청탁했다고 폭로했다. 바클레이즈는 2009년 6월 수출입은행이 15억 달러 규모의 외화채권을 발행할 당시 주간사로 선정돼 115만 달러의 수수료를 챙겼다.
자녀들뿐만이 아니다. 당시 채권 발행에 관여했던 수출입은행 A 부행장이 퇴직 후 바클레이즈 고문으로 취업하면서 ‘셀프 재취업’ 논란까지 더해졌다. 그가 옮겨간 뒤 바클레이즈는 수출입은행이 발행하는 15억 달러의 채권발행 주간사로 다시 선정됐고, 1년 뒤에도 22억 5000만 달러의 거래를 또 따냈다.
금융권에서는 경찰수사로 수출입은행의 불법 행위가 드러나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의 신인도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했다. 아직도 한국 금융시장에서는 후진적인 영업행태가 먹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민간 금융사 고위 관계자는 “아직도 비싼 술집 데려가서 진탕마시고 돈 좀 찔러주면 되는 나라인 줄 착각하게 될까 걱정된다”면서 “다른 은행도 아니고 수출지원을 맡은 국책은행이 이런식이면 국가 브랜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경찰 수사에 성실히 협조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는 논란이 된 부분에 대해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