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인지 서울중앙지검 새로운 뇌관 부상…윤석열 패싱, 여권 조직적 ‘박원순 구하기’ 드러나면 파장 커
7월 13일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피해자 측 김재련 변호사가 유현정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조사부 부장에게 면담을 요청한 것은 7월 7일 2시 무렵이다. 피해자가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한 7월 8일(오후 4시 30분) 전날이다. 김 변호사는 고소 대상자가 박원순 시장임을 밝히고, 유 부장과 7월 8일 오후 3시 면담 일정을 잡았다. 하지만 7월 7일 저녁 유 부장은 개인 일정을 이유로 면담을 취소했다고 한다. 이에 김 변호사는 피해자와 상의한 뒤 다음 날 경찰에 고소했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김 변호사가 7월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러한 내용을 공개한 직후 해명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측은 “해당 부장은 (고소 접수 전 사전 면담이) 절차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돼 부적절하다고 말해주면서 검토해보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고, 같은 날 퇴근 무렵 변호인에게 다시 전화해 일정이나 절차상 사전 면담은 어려우니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절차에 따라 고소장 접수를 하도록 안내했다”고 밝혔다. 법무부와 대검찰청엔 알리지 않았다고 밝힌 서울중앙지검은 내부적으로 어디까지 보고가 됐는지를 두고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해명을 접한 전·현직 검찰 관계자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내놨다. 서울중앙지검 요직을 거친 한 변호사는 “내 상식으론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다. 박원순 정도 되는 거물급 정치인 성비위 제보를 두고 저렇게 한가한 소리를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부장 선에서 저런 결정을 내렸다면 감찰을 통해 적절한 징계까지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검찰청 부장검사도 비슷한 취지로 말했다.
“민원인에게 고소장 접수를 먼저 하라고 하는 건 매뉴얼이긴 하다. 하지만 대상이 박원순이다. 변호사가 직접 부장검사에게 전화를 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고소장 접수 요구나 개인 일정 등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확신한다. 부장 선에서 뭉갰다면 나중에 책임 추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잘 알 텐데 그랬겠느냐. 부장검사 직속상관인 차장검사, 그리고 서울중앙지검장까진 보고됐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왜 면담을 취소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여기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과연 지검장 혼자서 결정했을까.”
서울중앙지검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대검찰청에서도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대검은 피해자 측이 경찰에 고소한 이후에야 박 전 시장 사건을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이 하루 전 이를 인지하고도 상급기관인 대검에 보고조차 하지 않은 것을 놓고 사실상 ‘윤석열 패싱’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검찰보고사무규칙에 따르면 각급 검찰청의 장은 사회적 관심을 끌 만한 사건에 대해 상급 검찰청의 장이나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 대검은 7월 23일 피해자 측 면담 요청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박 전 시장 사건 내용이 외부로 유출됐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당연히 대검찰청으로 보고해야 할 사안인데 왜 그러지 않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라고 밝혔다. 또 다른 대검 관계자는 “부장검사가 왜 피해자 측 면담을 취소했는지, 누구에 의한 결정이었는지를 파악하는 게 핵심이 될 것”이라면서 “이 과정에서 외부 유출 여부는 자연스레 드러날 것이라고 본다”고 귀띔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사진=일요신문DB
대검 관계자들은 이번 건 역시 노골적으로 윤 총장이 ‘패싱’ 당했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의 대검 관계자는 “최소한 중앙지검장은 알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아무리 총장이 마음에 안 들어도 내부 절차는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 고소장이 접수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 건이면 최소한 유선으로라도 보고를 했어야 했다”면서 “정권을 등에 업은 이성윤 지검장이 사실상 총장이 된 것처럼 처신하고 있다는 비판이 조직 내에 파다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검찰 내 진상 규명과는 별개로 세간의 관심은 서울중앙지검에서 ‘박원순 사건’ 내용이 유출됐는지에 쏠린다. 피해자 측 검찰 면담 요청이 알려지기 전까지만 해도 고소장을 접수받은 경찰이 유력한 유출 진원지로 거론됐다. 이에 경찰은 피해자가 고소장을 낸 후에야 피고소인이 박 전 시장임을 알았다고 밝혔다. 박 전 시장이 경찰 고소장 접수 전부터 피해자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던 정황이 드러나자 해명에 나선 것이었다.
그러자 박 전 시장에게 기밀을 귀띔해 준 제3의 경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했다. 피해자를 돕고 있던 여성 단체도 그중 하나였는데, 이번에 서울중앙지검도 새롭게 떠올랐다. 박 전 시장 최측근으로 꼽혔던 전직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지금 생각해보면 박 전 시장이 늦어도 7월 8일 오전엔 피해자의 고소 가능성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 무렵 박 전 시간 성추행을 알았던 곳은 서울중앙지검과 피해자 측 지원 단체 정도다. 상식적인 선에서 봤을 때 서울중앙지검 쪽이 더 가능성 높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검찰 내에서도 석연찮은 면담 취소 통보와 맞물려 부적절한 일이 벌어졌던 것은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앞서 여러 검찰 관계자들이 언급했듯 피해자 측과 처음 접촉한 부장검사가 이를 상부에 알리지도 않은 채 면담 취소를 단독으로 결정했을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 때문이다. 박 전 시장 비위 내용이 알 수 없는 통로로 새어나갔고, 또 모종의 의도 하에 면담이 불발됐다는 게 골자다. 청와대, 법무부, 대검찰청 그 어떤 곳도 공식 보고를 받지 않았다고 밝힌 것을 감안하면 서울중앙지검으로 향하는 의심은 더욱 짙어진다.
앞서의 전직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장례를 다 치른 후 몇몇 측근들이 각자 알고 있는 내용들로 퍼즐을 맞춰본 적이 있다”면서 “시민단체 시절부터 시장님이 친하게 지냈던 한 변호사가 성추행 관련 내용을 이미 경찰 피소 전에 알고 있었다고 얘기를 했다. 그 변호사는 어디서 알았는지, 또 박 전 시장에게 전달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그는 현 정부 들어 법무부 출신의 한 전직 고위 관료로부터 검찰 쪽 사정을 듣는다는 것을 여러 차례 말했다. 그 변호사가 이성윤 지검장을 비롯해 현 정권에서 잘나가는 검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소속의 한 검사 역시 “내부적으로도 우리 쪽에서 흘러 나간 게 아니냐는 얘기가 많은 게 사실이다. 현 정권에서 승승장구하는, 이른바 ‘법조 실세’들을 통해서다. 여기엔 서울중앙지검 최고위층과 법무부 전직 관료 등이 속한다”면서 “고소장이 접수되지 않아 문서 형태로 보고되진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유출이 됐다면 사적인 라인에서 이뤄졌을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앞서의 전직 서울시 고위 관계자가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이 검사는 “이번 일로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싸움에서 사실상 문재인 정부 ‘행동대장’ 역할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있다. 대검이 신속하게 경위 파악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향후 검찰 파워게임의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점쳤다.
기밀 유출 및 면담 취소 등의 과정에서 서울중앙지검이 연루돼 있을 경우 이는 청와대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정권 실세로 꼽히는 법조 인력들 이름이 오르내리는 까닭에서다. 이들의 면면을 봤을 때 청와대 출신 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엮여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피해자 측과 통합당 등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됐던 여권의 조직적인 ‘박원순 구하기’가 물밑에서 벌어졌던 것은 아니냐는 의혹으로 사태가 확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