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금법 개정 빅테크 기업 금융업 진출 문턱 낮춰…소액 후불결제 기능 허용에 카드사 긴장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가 지난 28일 ‘네이버 서비스 밋업’ 행사를 통해 자사의 사업 방향과 준비하고 있는 주요 서비스들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네이버파이낸셜 제공
#전금법 네이버·카카오에 날개 달아줄까
“업계가 사업영역에 매몰돼 10~20년을 바라보는 종합혁신방안을 못하면 정부로서는 안타깝고 유감이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기획단장은 지난 7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디지털 금융 종합혁신방안과 발전방향’ 정책토론회에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기존 금융권의 반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금융위가 하루 전 발표한 개정안에 대해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카드업계는 종합지급결제업 도입으로 인해 핀테크 기업과 카드사 간의 규제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고, 은행업계에서는 정부의 빅테크 활성화에 따른 대형 IT기업의 금융 독점 현상을 우려했다.
금융위가 지난 24일 발표한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의 주요 내용은 △신규업종을 도입하고 진입‧영업규제를 합리화하는 규제개선 △인프라와 제도를 법제화하고 빅테크 진출을 규율하는 기반 마련 △고객자금 보호와 금융사의 책무를 강화하는 이용자 보호 강화 △금융보안을 관리·감독하고 거버넌스를 현대화하는 보안 강화 등이다. 이와 함께 금융위는 오는 3분기 중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국내 디지털금융을 규율하는 전자금융거래법이 2006년 제정 이후 큰 변화가 없어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코로나에 따른 금융환경 변화를 적극 수용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금융사들은 금융위의 발표에 긴장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새로운 업종을 도입하고 금융업 진입 허들을 낮추는 전금법 개정이 빅테크 기업(대형 IT기업)의 금융업 진출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한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네이버와 카카오는 비대면 국면에서 확실히 유리하다. 카카오뱅크 설립 때에도 시중은행들의 걱정이 있었지만, 플랫폼 영향력이 막강한 네이버의 경우 사실상 금융시장 장악에 나설 수도 있다”며 “업계의 우려가 큰 만큼 5대 금융지주사 회장단이 (지난 7월 23일) 금융위원장과의 만남에서 규제 형평성 문제 등을 건의했다”고 전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금융시장에 진출해 최근 무서운 확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4년 카카오톡 결제기능을 통해 국내 최초로 온라인 간편결제 서비스를 선보인 카카오는 2017년 인터넷 전문은행 카카오뱅크를 설립해 은행업에 뛰어들었다. 또 같은 해 핀테크 사업부를 카카오페이로 분사하며 금융업 진출을 본격화했다. 카카오페이는 지난해 증권사 바로투자증권을 인수해 카카오페이증권을 출범했고, 보험대리점(GA) 인바이유 인수를 통해 현재 디지털 손해보험사 설립을 준비 중이다.
네이버의 경우 2015년 선보인 간편결제 서비스(네이버페이)를 시작으로 지난해 11월 금융 자회사 ‘네이버파이낸셜’을 설립하며 금융시장 본격 진출을 알렸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지난 6월 미래에셋대우와 협업해 CMA(종합자산관리)통장인 네이버통장을 선보였고, GA 자회사 ‘NF보험서비스’도 설립했다.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는 지난 7월 2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SME(중소상공인)와 씬파일러(금융이력 부족자) 등 금융 소외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서비스로 금융시장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큰 방향”이라며 SME 관련 대출·보험 상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자 기존 금융사들은 네이버와 카카오에 대해 견제에 나선 동시에 금융당국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위가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 세부·연관 과제를 하반기 중 구체화하기로 밝힌 만큼 규제 불평등 문제 등을 지속적으로 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구글과 아마존 등 글로벌 IT기업의 국내 진출을 앞두고 정부가 네이버와 카카오를 밀어주는 것으로 보인다”며 “업계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우려하는 부분이 있지만 아직은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의견을 피력하며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밥그릇 사수 나선 기존 금융권, 고민은 제각각
은행권에서는 빅테크 금융업 진출에 대해 근본적인 우려를 하고 있다. ‘디지털 운동장’에서 IT기업과의 속도 경쟁시 쉽게 우위를 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네이버와 카카오는 변화의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은행이 노력한다고 해서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아직 작은 부분이라고 하지만, 네이버는 SME 대출 서비스를 시작으로 당연히 사업을 확장할 것이다 은행과 달리 규제에서도 자유롭다. 금융당국과 금융권·핀테크사 3자 협의체(디지털금융협의회)를 통해 이를 건의하고 추후 은행연합회 차원의 대응도 예상된다”고 전했다.
카드사들의 우려는 조금 더 구체적이다. 간편결제 사업자에 대한 소액 후불결제 기능 허용과 종합지급결제사업자 제도 도입 등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위는 ‘페이’로 불리는 간편결제 업체에 대해 최대 30만 원까지 소액 후불결제 기능을 허용키로 했다. 카드업계에서는 소액 후불결제의 허용 정도에 따라 사실상 여신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데다, 하나의 플랫폼에서 급여 이체와 카드 대금·보험료·공과금 납부 등 계좌 기반 서비스를 일괄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종합지급결제사업자 대상에 카드사가 포함되지 못할 경우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카드업계에도 30만 원 한도로 후불결제 기능을 부여한 하이브리드 체크카드가 있지만 1인당 2매로 제한하고 있다. 반면 간편결제 사업자의 소액 후불결제는 업체당 한도가 30만 원이라는 점밖에 언급되지 않았다”며 “‘페이’로 불리는 핀테크 업체가 국내에 80개가량 되는데, 매수 제한이나 인당 제한이 없으면 2400만 원까지 후불결제를 할 수 있게 돼 여신이나 다를 바 없어진다”고 강조했다.
보험업계에서는 네이버가 오는 9월 NF보험서비스를 통해 자동차보험 비교견적 서비스 출시를 계획한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논란이 일었다. 네이버가 참여 의사를 밝힌 일부 보험사들에 광고료 명목으로 11% 수준의 수수료를 요구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다만 네이버파이낸셜은 지난 7월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자동차 비교견적 서비스는 검토 중이지만 출시 자체에 대해 정해진 바가 없다”며 선을 그었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네이버가 이번에 이슈가 된 까닭은 단순 플랫폼 제공에 비해 높은 수수료를 요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토스에서도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지만 11%보다 낮은 수수료를 받고 있다“며 “생명보험의 경우 대면영업이 중요한 만큼 아직까지 위기감이 크지는 않지만, 자동차보험 등 비교적 보험료가 저렴하고 구조가 단순한 다이렉트 상품이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손해보험사는 IT기업의 보험업 진출로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손보업계 한 관계자는 “새로운 서비스라면 수수료가 높아도 동의할 수 있지만 이미 금융당국과 보험사들이 보험 비교 플랫폼 ‘보험다모아’를 수수료 없이 운영하고 있다”며 “대형 IT기업들이 플랫폼을 제공하면서 높은 수수료를 가져가면 접근성은 편리해진다 할지라도 다이렉트 보험의 싸다는 장점이 사라지고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된다”고 지적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