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에 불만 높은 금융사들, 금융위 등 정부 쪽엔 적극 협조 ‘관치금융 방증’ 시선도
하지만 금융권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2022년 임기가 끝나는 정부에서 5년짜리 대규모 투자 계획을 들고 온 것도 그렇지만, 논란이 있었던 곳들 중심으로 정부 정책에 협조하는 모양새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투자 금액 역시 논란의 화제성에 비례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감독원과 ‘불편한 만큼’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관치금융’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7월 23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5대 금융그룹 회장과의 조찬 간담회를 통해 한국판 뉴딜 정책 지원에 대한 협조를 구했다.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간담회 후 ‘투자’ 화답
7월 23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5대 금융그룹 회장과의 조찬 간담회를 통해 한국판 뉴딜정책 지원에 대한 협조를 구했다. 은 위원장은 “한국판 뉴딜의 성공적 추진 여부가 향후 한국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으며, 여기서 금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자금 투자에 적극 나서 줄 것을 당부했다.
KB금융은 곧바로 화답했다. 23일 아침 금융위원장 간담회가 끝난 직후, 윤종규 회장은 주요 계열사 경영진을 모아 ‘케이비뉴딜·혁신금융협의회’를 열고 ‘그린 스마트 스쿨’ ‘국민안전 에스오시(SOC) 디지털화’ 등에 2025년까지 모두 9조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신한금융도 23일 조용병 회장과 그룹사 경영진들 중심으로 ‘긴급 화상회의’를 열고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금융지원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신한금융이 밝힌 계획은 현재보다 30조 원 늘린, 85조 원 규모의 대출·투자공급액 확대안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신 성장동력 강화와 금융의 선제적 역할을 실천하기 위한 ‘신한 네오 프로젝트’에 뉴딜정책도 포함해, 5년 동안 85조 원의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하나금융과 우리금융도 향후 5년 동안 각각 10조 원의 금융지원 계획안을 내놨다. 하나금융은 디지털 뉴딜 부문과 관련해 소재·부품·장비 산업과 스마트산업단지 등에 대한 금융지원 확대를, 우리금융은 혁신금융추친위원회를 통해 향후 5년 동안 ‘디지털 뉴딜 부문’ 3.3조 원, ‘그린 뉴딜 부문’ 4.5조 원 등 10조 원 상당의 투자 확대 계획을 내놨다.
#“원해서 하는 곳 어디 있겠나”
하지만 금융권 내부 목소리는 조금 다르다. 정부(금융위) 부탁에 곧바로 이뤄진 발 빠른 협조는 올해 초부터 잇따라 불거진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 DLF 사태 등 금융감독원과의 불편한 관계와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가장 많은 금액을 내놓은 신한금융은 올해 상반기 조용병 회장의 연임을 놓고 잡음이 있었다. 라임자산운용 펀드 판매 과정에 신한금융 계열사가 개입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신한금융투자는 물론, 라임자산운용의 환매 중단 펀드인 ‘크레딧인슈어드(CI) 무역금융펀드’를 신한은행에서 가입한 투자자들이 불완전판매 의혹을 제기했고 이에 경영진 책임론이 제기됐다.
조용병 회장이 채용비리 혐의로 재판 중인 것도 ‘논란’이었다. 조용병 회장은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음에도 신한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조 회장을 낙점하면서 연임에 성공했다. 당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조용병 회장에 대해 “법적 위험이 존재한다”고 경고했음에도 연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드러나지 않은 지원사격’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신한금융은 올해 상반기 조용병 회장의 연임을 놓고 잡음이 있었다. 라임자산운용 펀드 판매 과정에 신한금융 계열사가 개입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진=일요신문DB
10조 원을 내놓기로 한 하나금융과 우리금융도 논란이 많았다. DLF 불완전판매 사태, 우리은행의 비밀번호 도용, 우리은행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의 사건으로 금감원과 각을 세워야 했던 우리금융은 금감원이 라임자산운용 ‘무역금융펀드’ 투자금 전액 배상 권고안을 제시하자 이에 대한 결정을 유보했다.
하나금융도 상황은 비슷하다. 금감원이 DLS 불완전판매의 책임을 물어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에게 중징계인 ‘문책경고’ 결정을 내리자, 제재의 효력을 정지시켜달라는 내용의 가처분 신청과 제재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의 행정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문책경고를 받은 임원은 연임과 3년 동안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게다가 올해 첫 은행권 종합검사 대상으로 하나금융지주와 하나은행을 선정했다. 금감원은 옵티머스자산운용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서도 하나은행이 수탁사 업무를 제대로 했는지 살펴보겠다는 계획이다.
관련 흐름을 잘 아는 정부 관계자는 “금감원과 금융위, 정부가 보통 ‘금융당국’이라고 묶여서 불리지만 금감원은 공적 민간기구이고, 금융위는 정부와 한 몸 아닌가. 사실 다 다른 역할을 맡고 있고 금융기관들과의 관계도 조금 다르다”며 “제재를 하는 금감원과 불편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금융위 등 정부 쪽에는 적극적으로 협조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금감원과의 갈등에서 한 발 빗겨나 있는 곳들의 뉴딜정책 대응은 사뭇 다르다. 23일 조찬 간담회에 김광수 NH농협금융지주 회장도 참석했지만 NH농협지주는 아직 뉴딜정책 투자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NH농협금융 측은 “현재로선 한국판 뉴딜정책과 관련해 지원 여부를 확답하기 어렵다”고 밝혔는데, 내부적으로는 구체적인 안을 다른 금융기관들과 비교하며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vs 금감원과의 관계 속 줄서기(?)
금감원과 시중 금융기관들의 불편한 관계는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금융감독원에 대한 감찰을 진행했는데, 이 감찰의 시작은 시중은행과 금융지주를 중심으로 한 금융권 투서에서 비롯됐다는 게 중론이다. 이 투서를 바탕으로 민정수석실은 윤석헌 금감원장과 금감원 간부, 금감원의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검사 및 제재 과정 등을 4개월 동안 광범위하게 감찰했지만 별다른 비위를 관찰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금감원의 불만이 극에 달한 것은 당연한 상황.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들이 금감원을 저지하려고 정부에 줄을 선 상황”이라고 평가했는데, 금감원 안팎에서는 “가만둬서는 안 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는 후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금융지주들이 문재인 정부의 뉴딜정책에 앞다투어 ‘투자 확대계획’을 내놓은 것을 놓고 지적도 제기된다. 앞선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감원과 정부(금융위) 사이에서 금융지주들은 ‘자기 말’을 들어주는 쪽에 협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관치금융의 현실을 보여주는 모습들 아니겠냐”며 “정권이 바뀌면 언제 휴지조각이 될지 모르는 뉴딜정책 협조 계획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