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 ‘강철비’ 1편과 같은 주제로 인물 소재 바꿔…드라마 ‘비밀의 숲’ ‘슬의생’ 속편도 기대
시리즈물이 코로나19 여파로 한껏 위축된 극장가 혹한기를 딛고 선전하고 있다. ‘부산행’ 속편 격인 ‘반도’는 300만 관객을 넘어섰고 ‘강철비2: 정상회담’은 7월 29일 개봉 첫날 22만 관객을 모았다. 이 영화들은 성공한 1편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후속편에 머물지도 않는다. 동일한 주제를 공유하면서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 전혀 다른 이야기를 새롭게 펼친다. 그동안 할리우드 마블스튜디오가 ‘어벤져스’를 비롯해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으로 구축한 ‘세계관 시리즈’가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도 안착하고 있다는 징표다.
드라마도 예외는 아니다. 인기를 얻은 드라마의 후속편을 영화로 제작하는 시도부터 성공한 1편의 주인공을 다시 내세워 현실 이슈를 깊게 파고드는 방식도 잇따른다. 최근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확산, 카카오TV 등 신규 플랫폼의 공격적인 시장 진입 등과 맞물려 시리즈의 진화는 속도를 내고 있다.
강동원 주연의 ‘반도’는 2016년 좀비 열풍을 일으킨 1000만 흥행작 ‘부산행’의 후속편이지만 이야기를 연결하는 대신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 좀비가 점령해 또 다른 세상을 그린다. 사진=영화 ‘반도’ 홍보 스틸 컷
#이야기 연결은 안 되지만…
강동원 주연의 ‘반도’는 2016년 좀비 열풍을 일으킨 1000만 흥행작 ‘부산행’의 후속편이지만 이야기를 연결하는 대신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 좀비가 점령한 또 다른 세상을 그린다. ‘부산행’의 세계관을 공유하되, 인물부터 사건, 배경을 새롭게 구성한 과감한 시도를 통해 한국 영화에서 보기 어려웠던 포스트 아포칼립스(대재앙 이후) 장르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은 흥행을 겨냥한 하이콘셉트의 좀비물로, 당시 한국영화에 없던 좀비 장르를 해본다는 의미를 가졌지만 ‘반도’까지 비슷한 방식을 취한다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며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체험하는’ 영화의 방향으로 제작했다”고 밝혔다. 관객에 영화를 보여주는 방식까지 고민한 후속편이라는 의미다.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한 ‘강철비2: 정상회담’의 시도 역시 돋보인다. 1편의 주인공인 정우성과 곽도원이 그대로 출연하지만 캐릭터가 바뀌었고, 이야기도 연결되지 않는다. 단지 큰 주제만 같을 뿐이다. 1편은 북한 쿠데타로 인한 한반도 핵전쟁 위기를 그렸다면 2편은 남북미 정상회담 도중 북한 핵잠수함에 각 정상에 납치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과연 가능한지 질문하고, 주변 강대국의 패권 다툼을 현실감 넘치게 담은 점은 1, 2편의 공통점이다.
‘강철비’ 시리즈를 기획하고 두 편의 시나리오 집필과 연출까지 맡은 양우석 감독은 2편을 “상호보완적인 후속편”이라고 소개했다. 양 감독은 “1편을 구성했던 캐릭터의 남북한 진영을 싹 바꾸고, 그렇게 사람들이 달라져도 남북한의 현 체제에서 바뀌는 건 없다는 걸 웅변하고자 했다”며 “2편은 좀 더 냉철하게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면서 한반도 문제를 한반도가 결정할 수 없다는 걸 따져보고,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살펴야 하는지 묻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강철비2: 정상회담’의 시도 역시 돋보인다. 1편의 주인공인 정우성과 곽도원이 그대로 출연하지만 캐릭터가 바뀌었고 이야기도 연결되지 않는다. 단지 주제만 같을 뿐이다. 사진=‘강철비2: 정상회담’ 홍보 스틸 컷
‘반도’와 ‘강철비2: 정상회담’이 증명한 ‘세계관 공유’ 방식의 시리즈는 또 다른 영화들로도 이어진다. 강하늘·한효주 주연의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도 같은 길을 걷는다. 2014년 손예진 김남길 주연으로 800만 흥행을 거둔 ‘해적: 바다로 간 산적’ 후속편이지만 배우들의 진용부터 새롭게 짰다. 어드벤처 코믹 사극이라는 시리즈 고유의 개성은 유지하되, 이야기나 등장인물은 전부 바꿨다.
이런 변화 속에 대중성을 증명한 콘텐츠는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된다. 실제로 ‘반도’의 제작진은 번외편도 구상하고 있다. ‘부산행’과 ‘반도’ 사이 4년 동안 한국에서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증으로부터 출발하는 이야기다. 연상호 감독은 “관객 요구가 선행돼야겠지만 ‘부산행’ 사건을 겪은 뒤 반도가 폐허가 되기까지의 일을 담아보는 건 어떨까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드라마 시리즈도 활발
시리즈의 진화는 플랫폼 다변화에 따른 콘텐츠 형식의 파괴로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한다. 방송가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리즈는 조승우·배두나 주연의 tvN ‘비밀의 숲’과 조정석을 주축으로 유연석·정경호 등이 뭉친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다. 1편의 성공을 이으려는 의도는 동일하지만 영화 못지않게 세계관 공유 및 확정 시도가 활발하다.
특히 ‘비밀의 숲’은 그동안 숱하게 다뤄진 검찰 문제를 보다 심도 있고 현실적으로 파고든 작품으로 각광받는다. 2017년 검찰 스폰서 문제로 촉발된 검찰 내부의 비리를 추적한 1편의 성공을 이어받아 15일 후속편이 출격한다. 이번에도 첨예한 현실문제 중 하나인 검경 수사권 조정 이슈를 담는다. 주연 배우와 작가, 제작진이 다시 뭉쳐 검찰의 세계를 다루는 점은 이어가면서도 후속편에서는 ‘새 판’을 짠 셈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기획단계에서부터 시리즈 제작을 시도한 작품이다. 보통 1편을 내놓은 뒤 대중 반응을 살피면서 후속 시리즈를 기획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처음부터 ‘시즌제’를 과감하게 시도했다. 한쪽에서는 더욱 과감한 시도도 벌어진다. 올해 초 방송한 엄지원·정지소 주연의 OCN 드라마 ‘방법’은 후속편을 드라마가 아닌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주연진이 그대로 참여해 2시간 분량의 압축적인 영화로 색다른 후속편을 시도한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