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마켓컬리 등 새벽 배송이 더 저렴…유업계 대체상품이나 다른 아이템 고민해야
구독경제 서비스 범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지만 구독경제의 ‘조상’ 격인 우유 가정배달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우유 대리점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박정훈 기자
1980년대 우유 가정배달은 그날 생산한 신선한 우유를 바로 다음 날 가정으로 직접 배달한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동트는 새벽이면 신선한 우유를 가득 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집집마다 돌며 우유를 배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동네 곳곳에서 ‘우유배달’이라는 간판을 단 가게도 자주 눈에 띄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광경을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우유와 남양유업 등 유업체들은 물론 연세우유, 건국우유 등 대학 이름을 붙인 우유들도 가정배달 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렸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가정배달 쪽 매출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 남양유업의 우유 가정배달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4.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계약 건수도 25% 줄어들었다. 연세우유의 우유 가정배달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10%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업계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판촉 활동이 중단된 점을 우유 가정배달 매출 감소의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우유 가정배달 비중이 높은 건국우유 관계자는 “기존 우유 가정배달 영업은 85~95%가 대면 영업으로 이뤄졌는데 코로나19로 대면 영업이 어려워졌다”며 “온라인을 통한 신규 주문량은 소폭 상승했지만, 대면 영업 감소세를 상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털어놨다. 코로나19 사태로 구독경제가 활기를 띠고 있다는 점은 감안하면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이 같은 상황의 중심에는 유통 채널의 변화가 있다. 쿠팡, 마켓컬리, SSG닷컴 등 유통업체에서 새벽 신선제품 배송 등을 확대하면서 우유 가정배달도 이들에게 치이고 있는 것이다.
이커머스의 신선제품 배송 규모가 확대된 반면 우유 가정배달의 매출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사진은 로켓배송 중인 쿠팡 직원. 사진=연합뉴스
마켓컬리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8월 4일까지 흰 우유 판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0% 증가했다. 다른 제품들의 평균 매출 증가율이 75%였던 점에 비춰볼 때 우유 판매량의 증가폭이 유독 두드러진 셈이다. 이와 관련해 유업계 한 관계자는 “우유는 신선도가 중요하고 기호식품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먹고 싶을 때만 주문하는 경향이 있다”며 “과거에는 가정배송 우유를 기다렸지만 이제는 필요할 때만 우유를 구매하는 소비 형태로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격 경쟁력 저하도 우유 가정배달의 침체 원인으로 꼽힌다. 유업계 다른 관계자는 “우리가 배달하는 제품보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더 저렴하다”며 “우유 배달 대리점의 배달 인력 인건비가 제외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우유의 대표 흰우유 제품인 ‘나100%’ 1000ml는 지난 5일 기준 가정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면 2800원에 구매할 수 있지만, SSG닷컴과 마켓컬리에서는 2560원에 구매할 수 있다. 매일유업의 ‘소화가 잘되는 우유 저지방’ 930ml 역시 가정배달 서비스 가격은 3300원이지만 SSG닷컴과 마켓컬리에서는 3150원으로 판매되고 있다.
같은 제조사 우유라 할지라도 대형마트의 자체브랜드(PB) 이름을 붙이면 가격이 더욱 저렴하다. 남양유업의 ‘맛있는 우유 GT’는 SSG닷컴에서 100ml당 237원이지만, 남양유업이 제조해 이마트의 PB상품으로 판매되는 ‘진심을 담은 우유’는 100ml당 2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매일유업의 ‘오리지널 후레쉬팩’은 100ml당 260원이지만 매일유업이 제조하는 이마트 PB상품 ‘피코크 우유’는 100ml당 188원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유 가정배달 시장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우세하다.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박사는 “우유 소비량 감소는 출생률 감소와 대체 건강식품 출시 등으로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대두된 문제여서 코로나19가 끝난다 할지라도 우유 소비량과 가정배달 서비스가 옛 활기를 되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유업계는 커피 등 대체상품이나 다른 사업 아이템을 계속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