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진로 맹추격에 ‘대항마’ 내놓지 못해 위기 자초…노사갈등도 불안 부추기는 요인
경쟁사인 하이트진로의 ‘테라’가 출시된 이후 오비맥주의 아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오비맥주 전경. 사진=임준선 기자
식품산업통계정보의 제조사별 소매점(슈퍼와 마트 등) 통계에 따르면 2018년 4분기 브랜드별 매출액은 오비맥주의 카스가 2829억 원, 하이트진로의 하이트가 708억 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2019년 3월 하이트진로의 테라가 등장한 이후인 2019년 4분기 카스는 2686억 원으로 다소 감소한 반면, 테라는 900억 원으로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우선 카스가 테라에 점유율을 내주게 된 배경으로 오비맥주의 신제품 부재가 꼽힌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오비맥주는 개발 비용에 투자를 아끼다보니 영업이익률이 경쟁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며 “카스가 한창 잘되니 새로운 투자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는 5년 전부터 테라라는 신제품을 구상하고 2년 전부터 실제 개발에 나섰지만, 오비맥주는 그동안 카스 뒤를 이을 새로운 제품을 내놓지 않았다. 2019년 하이트진로가 발포주 ‘필라이트’를 출시하자 이에 대응해 오비맥주도 ‘필굿’을 내놓긴 했지만, 이는 유흥시장이 아닌 가정용 맥주시장에 한정됐고 메인 브랜드가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뿐만 아니라 오비맥주의 영업활동이 다소 소극적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판관비는 판촉물 등 영업에 필요한 비용을 나타내는데, 오비맥주의 판관비는 2018년 5370억 원에서 2019년 5200억 원으로 줄었다. 반면, 하이트진로의 판관비는 2018년 약 6714억 원에서 테라가 출시된 2019년 7836억 원으로 증가했다. 신제품을 출시한 하이트진로의 간절함과 오랜 기간 1위를 차지한 오비맥주의 안일함이 반영된 결과로 주류업계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오비맥주가 수년간 왕좌를 차지하다보니 비교적 안일했던 것 같다. 제품 개발력과 경쟁력을 등한시했고, 유흥시장 영업에서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며 “그 사이에 출시된 하이트진로의 히트상품이 오비맥주의 점유율을 위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비맥주의 2019년 가격 정책 실패도 거론된다. 오비맥주는 카스 등 맥주의 출고가를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동안 인상과 인하를 반복하며 네 차례나 바꿨다. 인하 소식이 전해지면 도매상인들은 주문량을 늘려 재고를 확보했는데, 이후 점차적으로 가격이 인하되며 금전적인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가격 정책으로 오비맥주가 시장의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거세지며 전국종합주류도매업 중앙회가 ‘카스 보이콧’에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오비맥주 측은 “가격을 인상했던 것은 원·부자재의 가격 및 제반 관리비용 상승 등, 누적된 가격 인상요인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러나 종량세 도입을 환영하고 국산맥주 중흥의 기회를 마련하고자 다시 가격을 전격 인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가격변동이 이례적이라고 말한다. 앞의 주류업계 관계자는 “물론 물가와 물류비용 상승으로 인해 주류의 가격을 인상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카스처럼 인상했다가 인하하고 이를 또 반복하는 사례는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하이트진로의 맥주 하이트 가격이 인상된 시점은 2012년 7월과 2016년 12월이었다. 4년 정도의 주기를 두고 가격을 인상한 것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들은 오비맥주가 신제품 연구개발 및 영업에 소홀했다고 평가한다. 대형마트에 진열된 캔맥주들. 사진=박정훈 기자
좀처럼 해결하지 못하는 노사갈등도 오비맥주의 입지를 위태롭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오비맥주 노동조합은 지난 6월 17일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이 해결점을 찾지 못하자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했고, 이 투표는 가결됐다. 언제라도 쟁의행위(파업)에 돌입할 수 있는 자격이 갖춰진 상황이며 노사 간 교섭은 아직 진행 중이다.
앞서의 증권사 관계자는 “오비맥주는 과거 두산그룹 소속이었는데, 그곳 노조가 강성인 것은 다들 잘 아는 사실”이라며 “오비맥주 노조는 매년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사측과 아슬아슬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데 노사 관계가 안정적이지 못하면 맥주 생산에도 불안정한 요소로 작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오비맥주 측은 “아직 교섭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상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면서도 “노조는 회사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로 존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한 “2021년까지 영업과 마케팅, R&D(연구·개발) 시설 등 다양한 영역에 1조 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이 있다”며 “올해도 호가든 청포도 출시, 카스 디자인 교체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