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명분 ‘제2재보험사 설립’ 제동 걸렸지만 JC파트너스, 여전히 LP 모집하는 등 ‘진의 아리송’
오랜 기간 KDB산업은행의 계륵으로 취급받던 KDB생명을 선뜻 인수하겠다고 나선 곳은 JC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PEF)다. JC 측은 KDB생명을 인수한 뒤 미국의 글로벌 사모펀드인 칼라일 그룹과 손잡고 제2재보험사를 설립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놨다.
JC파트너스는 업계에선 낯선 회사다. 보험사 경영 경험이 없는 사모펀드지만 한 회사가 장기간 독점하고 있는 재보험 시장을 재편한다는 밑그림에다 칼라일이라는 이름값이 더해지면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서울 용산구 KDB생명보험 본사 전경. 사진=최준필 기자
이번 협약으로 코리안리는 칼라일과 본격적으로 공동재보험 시장에 뛰어들게 됐다. 칼라일은 1987년 미국 워싱턴에 설립된 글로벌 투자회사로, 전세계 32개 지사를 통해 무려 2210억 달러(한화 약 267조 원)에 달하는 운용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과거 한미은행을 인수하고 여러 대기업에 투자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회사다.
칼라일이 코리안리를 공동재보험 사업 파트너로 낙점한 것은 국내 재보험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국내 유일의 재보험사란 점 때문으로 풀이된다. 칼라일은 2018년 AIG그룹의 재보험 사업부문을 분할 설립한 포티튜드리의 지분을 취득해 보험사업 부문의 확장을 추진해왔다.
문제는 칼라일과 협업해 KDB생명을 인수하려던 JC파트너스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점이다. 산은 측은 JC파트너스가 칼라일과 손잡고 KDB생명을 공동재보험사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을 믿고 KDB생명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로 JC파트너스를 선정했다. 실제로 이를 근거로 JC파트너스 측은 KDB생명 인수를 위한 기관투자자(LP) 모집에도 열을 올려왔다. 하지만 칼라일이 코리안리와 손잡으면서 KDB생명의 공동재보험사 전환은 사실상 물건너 갔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인허가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당장 자금 조달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보험사의 보험사’로 불리는 재보험사는 다른 보험사들이 고객에게 돈을 받고 판매한 보험 상품에 대해 다시 보험을 들어주는 회사다. 보험사는 고가의 미술품 등 혼자 감당하기에는 가입금액이 너무 크거나 위험하다고 느끼는 경우 재보험을 가입해 위험을 분산시킨다. 쉽게 말해 보험에 가입된 100억 원짜리 고려청자가 도난당할 경우 보험사는 일단 고객에게 100억 원을 지급한 뒤 재보험사에 다시 이를 청구해 손실을 메우게 된다.
이렇다 보니 재보험사는 일반 시중 보험사보다 훨씬 큰 위험부담을 안게 되고, 그만큼 막대한 자본력이 요구된다. JC파트너스가 KDB생명을 인수하면서 굴지의 글로벌 금융그룹인 칼라일을 끌어들이려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독점기업인 코리안리와 경쟁하려면 어마어마한 자금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지금의 KDB생명은 증자 없이는 독자생존도 불투명한 회사”라면서 “예정대로 칼라일이 들어와도 모자랄 판인데 혼자서는 재보험사 전환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이 와중에도 JC파트너스는 제 갈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이다. JC파트너스는 칼라일과 코리안리의 제휴가 결정된 뒤에도 여전히 LP를 모집하고 있고, 지난 7일에는 신승현 전 데일리금융 대표를 KDB생명의 신임 각자 대표로 내정했다.
금융권에서는 최종 계약 체결 전 우선협상대상자 측이 내정한 새로운 경영진이 외부에 공개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JC파트너스의 자신감일 수도 있지만, 당초 제시했던 청사진이 엎어진 상황임을 감안하면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JC파트너스 측은 KDB생명의 인수가 마무리되면 신 대표는 대외 업무를 맡고 본업인 보험업은 또 다른 각자 대표가 맡을 예정이다. JC파트너스 측은 “투자자 후보들에게 경영계획 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새 경영진에 대한 구상이 흘러나간 것일 뿐 공식적으로 각자 대표 선임을 발표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사진=임준선 기자
KDB생명의 대주주인 산은은 현재 상황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섣불리 방향성을 밝히기보다는 상황을 지켜본 뒤 입장을 정리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산은이 매각에 급급해 저자세를 취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산은은 2010년 금호그룹 부실사태로 옛 금호생명을 떠안은 이후 KDB생명으로 이름을 바꾸고 매각을 추진했으나 실패를 거듭했다.
산은은 2014∼2016년 세 차례 KDB생명 매각을 추진했지만 마땅한 인수자를 찾지 못했고, 몸값도 크게 낮춘 상태다. 특히 이동걸 산은 회장이 KDB생명에 공을 들였기 때문에 임기 내 매각에 대한 의지가 큰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권에서는 JC파트너스가 원점에서 다시 그림을 그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원수보험사를 공동재보험사로 전환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데, 단기간에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금융권 다른 고위 관계자는 “일반보험사가 재보험사로 전환하려면 막대한 자금 투입 외에 기존에 하던 영업을 모두 접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면서 “이는 당연히 대규모 구조조정을 동반하게 되는데, 자금 투입 없이 구조조정을 한다면 사모펀드라는 특성과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칼라일이 빠지더라도 재보험사 전환을 명분으로 다른 투자자들을 모집한 뒤 몸집은 줄이고 몸값은 높여 재매각하는 전략을 구사한다면 사모펀드인 JC파트너스 입장에서는 나쁠 것 없는 ‘엑시트 전략’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