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굳건한 지지 힘입어 박근혜와도 절연 시도…상대 ‘똥볼’ 따른 기저효과, 언제든 역공당할 수도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8월 13일 전북 남원시 금지면 용전마을에서 수해 복구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진(西進)으로 광명 찾자
오래전 일도 아니다. 불과 1년여 전이다. 지난해 5월 18일 제39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을 위해 광주를 찾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대표는 일부 시민들과 시위대의 육탄 항의에 부딪혔다. “‘5·18은 폭동’이라고 망언한 한국당 의원들에 대한 징계 없이는 기념식 참석이 절대 안된다”며 5·18 추모단체 회원 등 수백 명이 황 대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과정에서 황 대표는 국립 5·18 민주묘지 민주의 문 아래에서 인파에 둘러싸여 사실상 갇히기도 했다. 일부 회원들이 황 대표를 향해 물건을 던지거나 물을 뿌려, 경호인력이 이를 막기 위해 우산을 펴는 장면도 연출됐다. 이른바 ‘물벼락 사건’으로 명명된 이날의 모습은 특정 지역에서 혐오의 대상이 된 제1야당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줬다.
이랬던 통합당이 올해 들어서는 광주를 비롯한 호남에서 손님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출발점은 지난 5월 18일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행사 때였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직접 광주를 찾아 기념식에 참석하고, 유족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는가 하면 주먹을 쥐고 위아래로 힘차게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도 제창했다. 5·18 민주화운동 단체들도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참배해 주고, 먼저 영령들을 위해 사죄한 데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메시지까지 통합당에 전했다.
통합당은 서진 정책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8월 19일 주호영 원내대표와 함께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지역 경제인들 및 5·18 단체와 면담할 예정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참배와 함께 국민통합을 강조하는 대국민 메시지 발표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통합당은 당대표급인 비대위원장 직할로 국민통합위원회도 만든다. 통합당은 새 정강 초안에 ‘5·18 민주화운동 정신’도 담았다.
광주에서 초·중학교를 다녔다는 김 위원장은 광주 방문 취지와 관련해 “통합당이 그동안 지나칠 정도로 호남 지역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을 새롭게 운영하기 위해선 호남 민심도 파악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통합당은 8월 13일 섬진강 범람으로 피해를 본 전북 남원에서 국회의원과 보좌진 등 280여 명이 참가한 수해복구 자원봉사를 하는 등 호남에서 지역민들과의 소통 폭을 넓히고 있다. 김종인 위원장 등 지도부는 8월 10일 전남 구례에서 피해 현황을 둘러보기도 했다.
호남에서 한 석도 얻지 못한 통합당은 현직 의원들이 호남 지역구와 자매결연 맺는 형식으로 ‘호남 명예의원’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호남에 연고가 있는 의원, 국민통합에 공감하는 의원 등이 신청하면 지역구를 배정, 자기 지역구처럼 지역현안을 챙기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름은 명예의원이지만 사실상 ‘중복 지역구’다. 8월 13일 기준 이미 당내 현역 의원 10명이 “호남에 중복 지역구를 두겠다”고 신청했다.
비례대표 공천에서 호남 출신 인사를 일정 비율 이상 포함하도록 하는 비례할당제를 당헌당규에 담는 방안 역시 거론된다.
통합당은 광주에 있는 광주전남 당사 매각도 적극 고려 중이다. 현 당사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시위대의 목표가 된 곳이다. 광주전남 지역민들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당사 매각을 통해 이미지 개선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을 통합당 지도부는 갖고 있다.
#영남 집토끼는 확실하다
통합당이 그동안 호남에 대해 너그럽지 못한 태도를 보이고, 기본소득 도입 등 진보적 색채의 정책 도입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전통적 지지층의 이탈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걱정 탓이었다. 하지만 통합당 지도부는 ‘외연 확장 노력이 전통적 지지층의 이탈과 직결된다’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내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통합당은 지난 4·15 총선 분석에서도 이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본다. 20대 총선에서는 통합당의 텃밭인 대구에서 민주당 김부겸 후보, 당시 무소속이었지만 선거 직전까지 민주당 소속이었던 홍의락 의원이 배지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21대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전멸했다. 부산에서도 20대에서는 민주당이 5석을 가져갔지만, 21대 총선에서는 3석만 확보했다.
부산의 한 현역 의원은 “2018년 지방선거 때까지만 해도 부산·울산·경남에서 민주당 바람이 셌다. 광역단체장을 모조리 민주당이 거머쥐는 등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통합당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증세 정책 등 국민을 옥죄는 정책이 잇따라 나오면서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인 부산도 최소 60%가량이 반문 세력이 됐다. 흔들리던 영남이 이제 완전히 통합당으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통합당은 영남 집토끼를 확실히 잡았다는 판단 하에 과감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그동안 당의 ‘가장 큰 숙제’이자 ‘최대 고민’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해서도 과감한 ‘절연 시도’로 나가고 있다. 통합당 소속이었다가 현재 무소속인 윤상현 의원과 통합당 박대출 의원이 8월 11일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요청하고 나섰지만, 당 지도부는 이에 대해 손사래를 쳤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8월 13일 한국지방신문협회 정치부장단과 간담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당 차원의 공식 사면 건의는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통합당은 한발 더 나아가 김 위원장이 박근혜 이명박 전직 대통령의 구속 수감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할 계획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러 당 관계자들은 김 위원장이 최근 여러 차례 비공개 회의에서 “(통합당 출신)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됐으므로, 거기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적절한 시기’에 공개적인 사과를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부 언론에 보도됐듯이 ‘무릎을 꿇는’ 형태는 고려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생각에 잠긴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민주당 역공 어떻게 막을까
통합당 지도부는 최근 지지율 상승과 관련해 쾌재를 부르고 있지만 여세를 몰아 내년 4월 재보궐선거, 2022년 차기 대선까지 지지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는 부담을 하소연하고 있다. 특히 지난 4번의 전국 단위 선거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선거 전문가 정당’으로서의 모습은 통합당에게 큰 공포감으로 다가온다.
정부·여당이 잇따른 부동산 정책 실패를 가져오자 행정수도 완성과 공공기관 지방 추가 이전 카드를 들고 나오면서 지지율 반등을 가져온 최근 기억도 통합당은 부담스럽다. 더욱이 이 카드는 충청권 표심을 자극할 수 있고 영남 텃밭도 건드릴 수 있는 사안이어지만, 통합당으로서는 딱히 대응책도 없는 실정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수도 이전은 물론 공공기관 이전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이고, 기업 분산을 통한 일자리 균형이 국가균형발전의 요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이 정책이 국민들에 먹힐 가능성은 없다. 김 위원장이 유학 생활을 했던 독일의 경우 오랜 세월 동안 지방분권이 잘돼 기업 본사는 물론 명문 대학도 각 지방에 고르게 흩어져 있지만, 한국은 서울에 모든 것이 몰려 있어 새로이 인위적으로 분산시키기가 쉽지 않다.
통합당 한 당직자는 “정책 준비 완성도에서 여당을 따라잡기가 힘들다. 정부는 물론, 정부 산하 싱크탱크를 장악하고 있어 자료를 모으는 능력이 좋은 데다 가장 큰 무기는 재정이 많이 들어가든, 뒷감당이 안 되든 일단 지르고 본다는 것이다. 통합당이 누리고 있는 지금의 지지율 상승이 언제든 무력화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통합당은 민주당의 인기영합적 정책에 대비, 정강정책개정특위 초안에 ‘한국형 기본소득’부터 ‘국회의원 4연임 제한’ 등 정치개혁, 경제민주화, 부동산 공급 확대 등의 정책 방향을 담았지만 ‘참신함’ 측면에서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다.
통합당이 지금까지 한 일이라곤 숨만 쉬고 있었을 뿐인데도 지지율이 계속 오른다는 것 역시 부담스런 부분이다. 가만히 있었는데 상대의 ‘똥볼’에 따른 기저효과만 누리는 ‘가마니’당이라는 꼬리표다. 통합당이 실제 한방 날린 것은 윤희숙 의원의 ‘5분 발언’뿐이다. 게다가 모든 초선의 ‘윤희숙화’를 지도부는 주문하고 나섰지만 후속타가 나오지 않았다. 통합당 한 다선 의원의 충고다.
“예전에는 정치를 돈으로 한다는 말도 있었고, 배짱으로 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정말 ‘사람이 말로 하는 것’이란 점을 실감한다. 휴대전화 등 실시간으로 전국민들에게 알려질 수 있는 매체가 너무 발달해 ‘능력 있고 말 잘하면’ 단번에 스타가 될 수 있다. 통합당은 민주당이 들고 올 카드를 무력화시킬 스타를 연말까지 몇 명 더 발굴해내면 민주당의 공세를 방어하면서 현재 지지율 상승 추이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