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예방효과 두고 통합당 ‘효용론’ vs 민주당 ‘무용론’…학계 “단편적으로 따지기엔 무리”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금강 백제보. 사진=연합뉴스
4대강 정비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치수 사업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때 ‘한반도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그러나 한반도 대운하 건립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명박 정부는 울며 겨자먹기로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파기했다. 그리고 한반도 대운하의 대체재로 나온 사업이 바로 4대강 정비 사업(4대강 사업)이다. 4대강 사업은 2009년 7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유역 정비를 목적으로 진행됐다. 사업은 국토해양부(국토교통부 전신) 4대강살리기추진본부가 맡았다. 4대강 사업 예산으로는 총 22조 2000억 원이 소요됐다.
4대강 사업 주목적은 수해 예방, 수자원 확보, 수변 복합공간 조성, 지역 발전 4가지로 이뤄졌다. 전국에 걸쳐 분포된 큰 강줄기엔 총 16개 보(洑)가 설치됐다. 보는 하천 수리시설 중 하나다.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수위와 수량이 불규칙하게 변하는 것을 통제하려는 수단이다. 보는 전 세계 문명에 걸쳐 설치된 시설이다. 통상적으로 기후와 상관없이 식수와 농업용수를 보급하고, 일정 수위 이상에서만 이동이 가능한 여객선이나 무역선 등의 운행을 원활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지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4대강 사업 이후 주요 강 물줄기에 보가 건립됐다.
4대강 사업은 추진 과정과 사업 완료 이후에도 꾸준하게 논란의 중심에 서 왔다. 4대강 사업을 지지하는 쪽에선 4대강 본류에 설치된 보로 인해 나라의 ‘물그릇’이 커졌다고 주장한다. 4대강 사업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쪽에선 환경 훼손을 강조한다.
전남 구례군 구례읍 섬진강 지류인 서시천 인근 제방이 무너져 홍수 피해가 난 모습. 사진=연합뉴스
최근 공방이 뜨거운 ‘4대강 실효성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앞서 언급한 보의 존재다. 미래통합당 측은 “문재인 정부 들어 4대강 주요 보를 개방한 것이 올여름 전국적인 홍수 피해를 불러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8월 10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남 지역 수해 피해를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섬진강이 4대강 사업에서 빠진 것이 다행이란 사람도 있는데 이번 홍수를 겪으면서 그것도 잘못된 판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섬진강이 4대강 사업에서 빠진 것이 이번 홍수 피해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의. 사진=박은숙 기자
8월 9일 정진석 미래통합당 의원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4대강 사업을 끝낸 후 지류, 지천으로 사업을 확대했더라면 지금의 물난리를 좀 더 잘 방어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8월 8일 “민주당이 4대강 지류·지천 정비를 못하게 막더니 폭우 피해가 지류·지천에 집중된 사실을 실감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며 정부 여당을 압박했다. 친이계로 꼽히는 조해진 미래통합당 의원은 “지류·지천 사업을 마쳤다면 강 본류 수위가 최근처럼 높아지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지금부터라도 보를 낮추지 말고 준설을 꾸준히 해 ‘물그릇’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을 구성하는 물줄기는 본류, 지류, 지천으로 나뉜다. 본류는 강의 원줄기다. 지류는 본류에서 흘러나온 물줄기다. 지천은 강의 원줄기로 흘러들거나 원줄기에서 갈려나온 물줄기를 일컫는 말이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강 본류를 정비하는 데 치중했다. 2011년 10월 4대강 사업이 마무리된 뒤 이명박 정부는 30조 원 규모의 예산을 추가 투입해 4대강 지류와 지천을 정비하는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과 환경단체의 반발로 무산됐다.
한 미래통합당 당직자는 “이명박 정부에서 지류·지천 정비 사업이 무산된 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다”면서 “박근혜 정부에서도 지류·지천 정비 사업을 실시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실효성이 확실히 판명나지 않은 상황에서 4대강 사업에 다시 손을 댔을 때 정치적 후폭풍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4대강 사업이 완성된 뒤 지류 지천 정비 사업은 미해결 과제로 남게 됐다”고 했다.
경남 창녕군 합천창녕보 인근 제방이 무너진 현장. 사진=연합뉴스
미래통합당이 섬진강 둑이 무너진 것을 계기로 ‘4대강 효용론’을 내세웠다면, 더불어민주당은 8월 9일 합천창녕보 인근 낙동강 제방이 무너진 것을 두고 ‘4대강 무용론’ 카드를 내밀고 있다. 합천창녕보는 4대강 사업 당시 낙동강에 건립된 보다. 8월 9일 무너진 낙동강변 제방은 합천창녕보 좌안상류 250m 지점(창녕군 이방면 장천리)이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낙동강 본류에 설치된 합천창녕보가 홍수 피해를 예방하기는커녕, 제방이 터지는 데 일조한 것”이라고 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월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낙동강 강둑이 터진 가장 큰 이유는 4대강 사업으로 건설한 보가 물의 흐름을 방해해 수위가 높아지면서 강 둑이 못 견딜 정도로 수압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월 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래통합당이 섬진강 등에 4대강 사업을 했다면 이번 물난리를 막았다고 주장하는데 어처구니가 없다”고 했다.
당권 주자를 비롯한 민주당 내 주요 관계자들도 미래통합당의 4대강 효용론에 비판을 쏟아냈다. 8월 11일 합천창녕보를 직접 방문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대강이 합천창녕보 홍수에 미친 영향을 반드시 규명해야 할 것”이라면서 “(미래통합당이) 자신들의 실패한 업적을 미화하려고 하는 듯해 안타깝다”고 했다. 김부겸 전 의원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4대강 사업을 하고 보를 설치한 영산강과 낙동강에서도 제방이 터졌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한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폭우로 국가적 재난이 발생한 이 마당에 4대강 예찬론을 들고 나온 미래통합당이 제정신인지 묻고 싶다”며 미래통합당을 향한 비판의 날을 세웠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 사진=박은숙 기자
정치권에서 논란이 확산되자 문재인 대통령도 8월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4대강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4대강 보가 홍수 조절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실증·분석할 기회”라면서 “댐 관리와 4대강 보 영향에 대해 전문가와 함께 깊이 있는 조사를 당부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 발언 이후 환경부는 8월 12일 4대강 사업과 올여름 홍수 피해에 대한 실증분석에 착수했다.
환경부는 미래통합당이 주장한 ‘4대강 효용론’과 관련해 “이번 피해는 대부분 지류에서 발생했다”면서 “4대강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홍수 피해가 커졌을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곤란하다”고 했다. 4대강 사업이 본류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지류에서 일어난 홍수 피해와 4대강 사업의 연관 관계를 추정하는 데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8월 10일 경기도 연천군 남북 접경지역 호우 피해 상황을 점검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학계에서도 4대강 사업에 대한 평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그 가운데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복수의 학계 관계자들은 “4대강 사업 때 만들어진 보가 홍수 예방에 효과가 있는지를 단편적으로 따지기엔 무리가 있다. 보 때문에 제방이 무너졌을 가능성도 있고, 본류 보 준설로 홍수 피해가 줄어들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학계 인사는 “4대강 사업으로 인해 홍수가 났냐 안났냐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일반 사업을 해도 매출이 나기도 하고, 손해가 나지도 않은가. 이럴 때 기업은 최종적인 매출과 영업 이익이 흑자인지 적자인지를 보고 생산성에 대한 평가를 마친다.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다. 4대강 사업 후폭풍으로 제방이 터졌을 가능성이 있는 반면, 4대강 사업 효과로 홍수가 예방된 지역도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4대강 유역의 홍수 피해량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4대강 사업이 홍수 예방에 흑자였는지 적자였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낙동강에 제방에 터졌다고 4대강 사업이 아예 쓸모 없는 것도 아닐뿐더러 섬진강에 제방에 터졌다고 4대강 사업을 추앙하는 단편적인 사고는 지양해야 한다.”
4대강 사업은 2011년 사업 완료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정부 기관 감사를 받았다. 2014년 박근혜 정부가 4대강 사업조사평가위원회를 꾸려 4대강 사업을 감사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2018년 감사원이 직접 4대강 사업을 감사했다. 2014년 감사 당시 4대강 사업조사평가위원회는 “4대강 사업 후 전체 홍수 위험 지역 93.7%에서 홍수 위험도가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2018년 감사원은 “본류에서 홍수 때 최고수위(계획홍수위)가 낮아진다”고 분석했다. 당시 감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강 54.9%, 낙동강 92% 구간에서 홍수 때 최고 수위가 최대 3.93m까지 내려간 것으로 발표됐다. 다만 감사원은 강수량이 적어 홍수 피해 예방효과의 객관적 분석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4대강 사업의 홍수 피해 예방 편익을 ‘0’이라 평가했다.
8월 12일 환경부는 두 차례 감사 결과를 근거로 “4대강에 설치한 16개 보는 홍수 예방 효과가 없고 오히려 홍수위를 일부 상승시켜 홍수 소통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환경부 발표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기존 감사 결과를 정부 입맛대로 해석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일요신문DB
이런 상황에서 친이계 인사들은 틈새 ‘4대강 마케팅’에 힘쓰고 있다. 친이계 좌장으로 불렸던 이재오 전 의원은 8월 1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4대강 보는 물 흐름을 방해하는 기능이 없다”면서 “물을 조절하는 기능은 기계식 자동”이라고 했다. 이 전 의원은 정부와 여당을 향해 “부동산 정책 실패를 4대강으로 호도하지 말라”면서 “4대강 16개 보를 설치하지 않았으면 이번 비에 나라 절반이 물에 잠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친이계인 권성동 무소속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가뭄과 홍수 예방에 자신이 있으면 지금 즉시 4대강 보를 파괴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라”고 했다. 권 의원의 발언 역시 이명박 정부의 유산인 4대강 사업과 관련한 ‘효용론’을 강조하는 일환으로 읽힌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