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한국의 디즈니’ 꿈꾸며 물밑작업…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 안 맞아 결렬
경기도 과천시 광명로에 위치한 서울랜드 전경. 사진=임준선 기자
#캐릭터 IP 경쟁력 앞세워 테마파크 사업까지 확장
카카오 관계사 고위 임원 A 씨는 지난해 당시 서울시장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한 노동계 인사를 만나 서울랜드 인수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A 씨는 지난해 2월과 4월에 두 차례 이 인사를 만나 서울랜드 인수 관련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 노동계 인사는 “A 씨는 ‘카카오가 IP에 기반한 캐릭터 사업을 테마파크 사업으로까지 확장해 한국의 디즈니를 꿈꾸고 있다’고 설명했다”면서 “서울랜드를 인수해 카카오랜드를 조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부탁해왔으나 김범수 카카오이사회 의장이나 의사결정권을 지닌 대표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선을 그으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3월 권승조 카카오IX 대표는 머니투데이 인터뷰에서 “라이언, 어피치 등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을 활용해 테마파크를 만드는 게 목표”라며 “카카오IX에 건축팀과 외식사업팀을 두고서 테마파크 후보 부지도 물색 중”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 다른 카카오 주력 계열사 대표 역시 재임 당시 테마파크 부지를 찾으면서 후보지로 서울대공원을 물망에 올리기도 했다.
한국의 디즈니로 성장하기 위해선 물적 토대가 되는 테마파크가 필요하다. 수익성 확보 차원에서도 효과적이다. 실제 월트디즈니는 캐릭터 IP 경쟁력을 기반으로 성장한 대표 기업이다. 사업 포트폴리오는 △미디어(케이블 방송) △테마파크·리조트 △영화 제작·배급 △DTC&I(스트리밍·해외 콘텐츠 유통) 등으로 구성됐다. 전체 매출에서는 미키마우스 등의 캐릭터와 디즈니월드가 압도적으로 높다. 2019년 디즈니 실적 자료에 따르면 테마파크 체험과 상품 부문 매출이 262억 2250만 달러(약 31조 9547억 원)로 디즈니 전체 매출 중 37.6%를 차지했다.
서울시 입장에서도 고려해볼 만한 카드다. 지난 2014년 내놓은 서울연구원의 ‘백년을 바라보는 서울대공원 비전수립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랜드와 서울대공원의 운영 이원화와 구조적 갈등이 상호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고, 민간자본 유입 통한 투자비 부담 감소를 추진하는 방향이 낫다고 분석했다. 이를 기반으로 매각 등이 포함된 운영 개선안을 제시했다.
특히 서울랜드의 최근 매출 감소세가 가파르다. 지난해 매출은 516억 원으로 2018년보다 184억 원가량 줄어들었다. 2018년과 2019년 각각 80억 원, 35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서울시가 서울랜드 운영권 입찰을 진행되지 않고 흥행이 되지 않고 연간 임대료가 30억 원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카카오 판교오피스가 입주해 있는 에이치스퀘어 N동 건물 전경. 사진=일요신문DB
#‘카카오랜드’는 왜 물거품이 됐나
비공식적인 접촉뿐만 아니라 서울시와 카카오 실무진 선에서도 매각과 관련된 의견을 오갔다. 지난해 서울시와 카카오 실무진들은 서울랜드 매각과 관련된 협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았다.
공적 이익을 추구하는 서울시와 기업으로서 경영 효율화를 꾀해야 하는 카카오의 입장이 하나로 조율되기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카카오는 서울랜드뿐만 아니라 서울대공원 내 다른 부지도 사용하길 원했지만, 그 부지는 경기도 소유로 또 다른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서울시, 경기도, 과천시의 복잡한 이해관계도 걸림돌이 됐다. 이와 관련해 A 씨는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는 선거 결과에 따라 영향을 받는 곳”이라며 “서울시장, 과천시장, 경기도지사 등뿐만 아니라 시의원과 도의원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랜드는 서울시장이 바뀔 때마다 부침을 겪었다. 서울랜드의 역사는 1984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서울시는 서울대공원 안에 서울랜드를 BTO(수익형민간투자사업) 방식으로 건설했다. BTO는 민간 사업자가 시설을 직접 건설해 정부 등에 소유권을 이전해주고 일정 기간 직접 시설을 운영하면서 수익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서울랜드는 한일시멘트가 85.67%의 지분을 보유한 (주)서울랜드(한덕개발)가 20년 무상, 10년 유상으로 서울시와 30년 운영계약을 맺었다.
2004년 (주)서울랜드의 20년 무상사용 계약이 종료되자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서울랜드 부지에 디즈니랜드를 유치할 계획을 세우면서 10년 유상사용 계약을 거부했다. 지난 2009년 법정공방 끝에 10년 유상사용 계약을 거부한 것은 적법하지 않다는 대법원의 판결로 (주)서울랜드가 최종 승소했다.
2014년 9월 서울시는 (주)서울랜드와의 30년 계약이 종료되자 신규 사업자 입찰 공고를 냈다. 당시 후보로 거론된 이랜드그룹, 롯데그룹 등이 입찰에 응하지 않았다. 시설 운영권 기간이 2017년 5월까지로 3년도 채 되지 않는다는 점 등이 흥행 실패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새롭게 운영권을 확보한 기업이 노후화된 시설 개선과 새로운 CI 적용 등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데만 2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다. 결국 (주)서울랜드가 2017년까지 계약을 갱신했다.
2015년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랜드의 30년 이상 된 놀이기구를 단계적으로 철거하고 서울랜드를 8개 구역으로 나눠 최대한 전기를 쓰지 않는 무동력 놀이기구를 설치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서울시는 (주)서울랜드 운영권 계약이 만료되는 2017년 5월 이후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이를 시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2017년 입찰에서도 (주)서울랜드가 운영권 계약을 갱신하며 2022년 5월까지 5년간의 운영권을 맡게 됐다.
서울시는 서울랜드 매각이 물 건너가면서 올해 초 서울랜드를 포함한 서울대공원의 장기적인 종합적인 전략계획을 다시 수립하고자 연구 용역을 공공개발기획에 맡겼다. 연구 결과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나올 예정이다.
#카카오IX 합병, 테마파크 인수 초석?
서울랜드 인수는 포기했지만 카카오가 테마파크 사업까지 접을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카카오는 IP 콘텐츠를 활용한 수익을 다각화하고 있다. 카카오M은 드라마나 예능 등의 콘텐츠 제작을 맡았다. 최근 카카오M이 공개한 새 예능 콘텐츠는 ‘찐경규’, ‘내 꿈은 라이언’, ‘카카오TV 모닝’, ‘페이스 아이디’ 등이 있다. ‘연애혁명’, ‘아직 낫서른’ ‘아만자’ ‘90년생’ 등의 웹툰을 원작으로 드라마를 제작한다.
카카오페이지는 영화를 맡았다. 지난 8월 14일 카카오페이지는 인도, 일본, 중국, 미국을 주무대로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어온 제작사 ‘크로스픽쳐스(Kross Pictures)’를 인수했다고 밝혔다. 현재 카카오페이지가 보유한 IP는 한국과 일본을 합쳐서 약 7000개다.
최근 카카오IX가 공간 개발 등 부동산 사업만 남긴 것을 두고 테마파크 인수를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8월 5일 카카오·카카오커머스·카카오IX는 각자 이사회를 열고 카카오IX 사업 부문을 분할해 카카오·카카오커머스에 합병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카카오IX의 IP 라이선스 부문은 카카오로 합병한다. 카카오IX의 리테일 부문은 카카오커머스로 합병한다.
다만 이와 관련, 카카오IX 관계자는 “이번 합병은 카카오커머스 강화를 위해서 진행됐고 부동산 사업도 연수원 등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정하는 것”이라며 “합병도 10월에 마무리가 되는데 현재로선 땅을 사서 부동산 개발을 확장하겠다는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