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회복 내년 돼도 기약 없어…생명 연장 미봉책일 뿐, 중소여행사 버티기 힘들어
여행업과 관광숙박업 등 8개 특별고용지원업종의 지원 기간을 180일에서 240일로 연장하는 방안을 의결하기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특별고용지원업종이지만…
특별고용유지 지원금은 고용 사정이 급격히 악화될 우려가 있는 업종에 정부가 특별 지원을 해주는 제도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직격탄을 맞은 여행업, 관광숙박업, 관광운송업, 공연업 등 4개 업종이 먼저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됐고 이후 항공지상조업, 면세점, 전시국제회의업, 공항버스업 등 4개 업종이 추가로 지정됐다. 특별고용지원업종은 실업률이 대폭 상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용노동부 장관이 업종을 지정해 특별 지원하는 실업 대책이다. 위 8개의 특별고용지원업종은 이 기간 직원에게 지급한 휴업·휴직 수당의 90%까지 지원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업계 실무자들은 이 역시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 장기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고 정부 지원책이나 정책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누가 손쓸 수도 없이 산업 자체가 고꾸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20년 동안 해외여행업을 해온 A 대표는 “3~4월만 해도 해외여행 멈춤이 이렇게 장기전으로 갈 줄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가을쯤이면 하늘길이 다시 열릴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내년이 되어도 해외여행이 쉽게 살아나지 않을 것 같아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말하며 “지원책이 연장되어도 지원금을 받을지 그냥 폐업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물론 진작에 폐업했을 수도 있는 수많은 소규모 여행사들이 특별고용유지 지원금을 받으며 6개월을 버텨온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연장한 미봉책일 뿐 다시 지원 연장기간이 끝나면 또 똑같은 상황이 올 게 뻔하다”며 “정부 지원책에 의존하는 시한부로는 답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2016년 조선업의 경우 과거 6개월씩 5차례에 걸쳐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이 연장된 바 있지만 당시엔 조선업이 특히 어려웠을 뿐 다른 산업군은 잘 돌아가던 때다. 반면 지금은 어느 산업을 막론하고 정부 지원금이 절실하니 여행업 등에만 한정 없이 특혜를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업계에서도 연말까지는 연장해 줄 것으로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내년부터는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하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8월 1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여행업을 비롯해 항공, 숙박 등 8개 특별고용지원업종을 제외한 일반업종의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기간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고용지원금을 받고 있던 7만여 개 사업장의 지원이 바로 9월부터 끊기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과도한 지원금 지급으로 고용보험기금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고용유지지원금 누적 지급액은 8월 말 기준 1조 213억 원에 달한다. 아직 8월이지만 연 기준 1조 원을 넘긴 건 올해가 처음이다. 지난해 지급액이 총 669억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미 10배가 훌쩍 넘는다.
직원 30여 명 가운데 3명 정도만 주 3일 근무하고 있는 오지특수여행사 대표 B 씨는 “유급휴직 지원금이 끊긴 뒤에는 일단 무급 휴업·휴직 지원금도 신청할 예정”이라며 “그것도 오래 일한 직원들 생각해서 신청해 주는 것이고 사장 인건비와 임대료도 안 나오는 현실에서 계속 버티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그는 “지원금이 모두 끝나면 일단 사무실을 빼고 고용 유지도 더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게다가 무급휴직 수당은 유급휴직 수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원수준이 낮고 절차가 까다롭다. 무급휴업 및 무급휴직에 관한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직원이 10명 이상이어야 한다. 때문에 1만 8000여 개 여행사의 90%를 차지하는 10인 미만의 소규모 여행사는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또 무급휴직 수당을 지원 받는 여행사는 소명자료와 함께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따로 받아야 하고 노동위원회 승인 내용을 첨부해야 하는 데다 대상자 선정 이유와 고용 유지 계획, 복귀일 등을 구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수령 인원수와 무급일수 제한도 있다. 이렇게 번거로운 서류 절차를 거쳐 신청한다고 해서 다 통과되는 것도 아니다. 관할 고용센터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절차가 있다. 또 무급 수당을 받는 근로자는 평균임금의 절반가량밖에 수령할 수 없다.
연말까지 연장되는 정부의 특별고용지원마저 끊기면 소형여행사 경영자 입장에서는 고용 유지 여력도, 필요성도 찾지 못할 것이라 예견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학여행 상품도 아무나 못해
10여 년 동안 여행사에 근무한 C 씨는 “한시적인 정부지원만 믿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일용직이든 배달이든 음식점 알바든 이것저것 하고는 있는데 내년이 더 막막하다”며 “정부의 고용지원마저 끊기면 소형 여행사 경영자 입장에서는 고용 유지 여력도, 필요성도 찾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업계에서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으며 20~30년씩 잔뼈가 굵은 중소형 여행사 대표들도 모이면 “답이 없다” “IMF, 금융위기 다 겪어냈지만 이번엔 진짜 모르겠다” 등의 하소연만 쏟아낸다.
당분간은 어려운 해외여행 대신 잠재적 수요가 급증한 국내여행으로 사업방향을 돌리면 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여행사 대표 D 씨는 “국내여행은 돈이 되지 않는다”고 일축한다. 그동안 해외 패키지 시장에서 옵션투어와 쇼핑 등의 커미션 기반으로 주 수입을 올렸던 대부분의 패키지여행사들은 오랜 업력에도 불구하고 상품개발이나 진행에 대한 노하우가 많지 않다. 해외여행 상품을 주로 취급했던 아웃바운드 여행사들이 더 당황하는 이유다.
게다가 국내 여행은 개별여행 중심이라 여행사가 끼어들 부분도 크지 않다. 여행사가 꼭 필요한 수학여행 등에는 나름의 특화된 전문성이 필요한데다 기존의 사업체들끼리도 입찰을 따기 위해 마이너스 견적을 올리는 등 경쟁이 심한 상황이다.
노동부는 “전국 고용센터에 ‘고용 취약 사업장 대응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해 고용유지지원금 지원 기간이 끝나는 기업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실업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특별 관리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당장 수익이 없는 여행업계로서는 별다른 기대를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여행업에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생태계가 무너지면 향후에는 한국시장이 자본력 두둑한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들, 예컨대 중국자본의 트립닷컴이나 미국자본의 부킹닷컴과 익스피디아 등의 여행사가 쉽게 먹을 수 있는 파이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당장 지원금 60일 연장이 아니라 2021년 이후의 상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