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부산 지지율 통합당에 밀려…무공천 여부 둘러싸고 당내 갈등 불가피
당장 여권은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패배 그림자에 둘러싸였다. 20대 총선 이후 현 4연속 여당에 손짓한 ‘승리의 여신’은 야당으로 한걸음 옮겼다. 최악 땐 최근 4번의 선거에서 승리한 여당이 2021년 4·7 재보선과 2022년 3·9 대선, 6·1 지방선거 등에서 되치기를 당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8월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운명의 장난 같다.”
여권 관계자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고로 내년 4월 재보선 판이 커진 직후 던진 말이다. 서울과 부산은 대선의 핵심 지역이다. 연간 30조 원을 주무르는 서울시장은 차기 대선급행열차로 불린다. 윤보선(제2대) 이명박(제32대), 2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허정(제8대), 고건(제22대·31대) 전 서울시장은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다.
부산·울산·경남(PK)은 현 여당이 대선 승리 방정식을 푸는 마지막 열쇠로 평가받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경남 김해)도 문재인 대통령(경남 거제)도 PK가 고향이다. 서울과 부산 유권자는 지난 4·15 총선 기준 1100만 명(846만 5419명·부산 295만 6637명)을 웃돈다. 전체 유권자(4399만 4247명)의 4분의 1가량이 ‘미니 대선’에 참여하는 셈이다.
민주당이 서울·부산 사수에 실패한다면 차기 대선의 위기 경고음은 ‘심각’으로 격상한다. 여권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은 최악이다. 서울은 부동산 정책 실정의 직격탄을 맞은 곳이다. 부산은 정치권의 화약고 이슈인 ‘동남권 신공항’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PK는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하고도 ‘소외론’에 시달리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연달아 ‘미투(나도 당했다)’ 의혹에 휩싸이면서 ‘여성 유권자 표심’도 선거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여권의 전망은 어둡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조사한 8월 2주 차(10∼14일까지 조사·17일 공개·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과 PK 정당 지지도는 통합당이 민주당을 압도했다. 특히 PK의 경우 통합당이 45.0%를 기록, 민주당(28.5%)을 16.5%포인트(p) 차로 앞섰다.
서울에서도 통합당은 39.9%로, 민주당(31.2%)을 오차범위 밖에서 따돌렸다. 전체 지지도는 통합당 ‘36.3% vs 민주당 34.8%’였다. 문 대통령 지지도는 43.3%, 부정 평가는 52.6%를 기록했다. 긍정 평가 중 ‘매우 잘한다’는 24.0%에 그친 반면, 부정 평가 중 ‘매우 잘못한다’는 39.6%로 나타났다.
민주당이 여전히 앞선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서울과 PK는 여당의 약한 고리였다. 8월 2주 차(11∼13일 조사·14일 공개) 결과를 보면, PK에선 통합당(33%)이 민주당(31%)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정당 지지율 전체 평균은 ‘민주당 33% vs 통합당 27%’였다. 서울에서는 민주당(29%)이 통합당(25%)에 오차범위 내 우세를 보였지만, 문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부정(59%)이 긍정(35%)을 압도했다. PK 지지도는 이보다 낮은 32%였다. 문 대통령의 전체 평균 지지도는 39%였다. 대구·경북(TK)을 빼고 가장 낮은 지지도를 보인 지역도 서울과 부산이었다.
당 대표에 도전한 이낙연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민주당 한 당직자는 “어쩌다 당 지지도가 이렇게 낮아졌을까”라며 “당 지도부가 정신 차려야 한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20대 총선을 시작으로, ‘2017년 5·9 대선→2018년 6·13 지방선거→2020년 4·15 총선’ 등 4연승을 한 여당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무기력한 모습만 남았다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여당의 지지도 급락은 유력 차기 주자 이낙연 의원이 가세한 민주당 8·29 전당대회의 영향력까지 갉아먹고 있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8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와 관련해 “관심과 논쟁, 비전이 없는 3무 전대”라며 “말로는 민생을 외치면서 몸은 과거사와 검찰에 집중하고 있었다”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을 옭아맨 ‘검은 그림자’는 내년 4월 재보선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파기환송 직후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불 지핀 ‘무공천 주장’은 격론 끝에 ‘후보 공천론’이 다소 우세한 채 일시 봉합됐다. 과거 두 차례(2011년 10·26 보선과 2018년 지방선거) 서울시장에 도전장을 낸 4선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5선의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 여성 후보론이 고개를 든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당 핵심 관계자는 재보선 이유인 미투 파문을 언급하며 “여성 후보가 나서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남성 후보군에는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핵심인 우상호 의원과 당권 후보자인 박주민 의원 등이 포함됐다. 다만 박 의원은 “전당대회에 모든 것을 걸겠다”며 재보선 출마를 일축했다.
통합당은 ‘무공천 이슈’를 선점하며 대여 압박에 나섰다. 당 지도부가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경남 의령군수 재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내면서 민주당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원래 국민들에게 약속한 대로 자기 당 출신 자치단체장 책임으로 보선이 생기면, 후보를 내지 않도록 (당헌에) 돼 있다”며 무공천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러자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윤희숙 띄우기’를 통해 재보선 준비에 시동을 걸었다. 그는 일부 언론과 인터뷰에서 서울시장 후보와 관련해 “새 인물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윤 의원 대해 “가능성 있는 후보 중 하나”라고 말했다. ‘재산세 감면’ 등으로 문재인 정부와 부동산 정책을 놓고 대립각을 세운 조은희 서초구청장도 서울시장 하마평에 올랐다. 일각에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야권 통합 카드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전격적으로 나서는 방안도 거론된다. 안 대표는 8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온(ON)국민 공부방’ 행사를 찾아 ‘박원순표 제로페이’를 콕 집어 “예상했던 대로 거의 유명무실해지고 국고만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선 당시 50% 지지도를 기록했던 안 대표는 5%에 그쳤던 박 전 시장에게 야권 후보직을 전격 양보했다. 보수진영에서 ‘안철수 통합후보론’을 제기하는 이유도 이런 속사정 때문이다.
부산시장 후보군도 사정은 비슷하다. 여당에선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 등의 이름이 거론되지만, 내부에선 “부산시장은 버리고 서울시장만 공천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스스로 잘못을 시인한 오 전 시장과는 달리, 박 전 시장 미투 의혹은 실체 여부를 가리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여권 내부에서는 “박원순 감싸기 프레임에 말려들 수 있다”며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된다. 보수 텃밭 중 한 곳인 PK의 통합당 후보에는 서병수 조경태 장제원 의원, 원외 인사인 이진복 유재중 유기준 이언주 박민식 전 의원 등이 거론된다. 야권 한 관계자는 “대선도 미니 대선도 바람의 핵심은 흥행”이라며 “이낙연까지 나선 민주당 8·29 전당대회도 잠잠하지 않나”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여당 일각에선 “차라리 내년 4월 재보선을 무공천하고 차기 대선을 노리자”라는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원칙론으로 현 난국을 정면 돌파하자는 얘기다. 서울·부산시장을 버리고 정권 재창출하는 편이 낫다는 논리다. 하지만 당 내부에선 “대선 예비고사를 망치고 어떻게 대선을 잘 치를 수 있느냐”는 의견이 다수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안 낼 수가 있겠나”라면서도 “이 문제는 이해찬 지도부가 아닌 새 지도부가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서울·부산시장 후보자의 무공천 문제는 포스트 이해찬 호 출범 이후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악재로 꼽힌다. 내부 계파별로 이해관계가 얽힌 만큼, 여권 내부 분열을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내부 갈등은 반대편의 비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레임덕을 앞당길 수 있는 요소”라고 전했다. 청와대 참모진 갈등과 법무부와 검찰 충돌, 부동산 정책 갈등 등 기존의 위험요소에 새로운 악재가 더해질 경우 선거 패배론은 여권 전반을 강하게 짓누를 것으로 보인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