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코로나 여파 겹치며 차주 재정난…미래에셋 “만기 연장 합의, 세부 내용 조율 중”
2019년 4월 18일, 미래에셋이 낸 보도자료에 국내 금융권의 관심이 집중됐다. 최근 수년 사이 적게는 수천억 원에서 많게는 조 원 단위에 달하는 규모로 공격적인 해외 부동산 투자 행보를 보여온 미래에셋이 새로운 투자 계획을 발표해서다. 새 투자처는 홍콩 CBD2(이스트 카우룽)에 위치한 오피스 빌딩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였다. 메자닌(중순위) 대출에 2억 4300만 달러(약 2800억 원)를 투자하는 내용이 담겼다. 미래에셋은 짧은 만기(1년)에 높은 수익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래에셋이 지난해 2800억 원을 투자한 부동산 소유 회사의 재정난이 심각해지면서, 당초 계획했던 투자금 회수에 차질이 생겼다. 사진은 서울 중구 미래에셋센터원빌딩. 사진=박정훈 기자
홍콩의 이스트 카우룽은 홍콩 정부가 약 34조 원을 투입해 총 690만 평 규모의 새로운 업무중심지역으로 개발하고 있는 지역이라 세계적으로 높은 투자 가치를 인정받고 있었다. 미래에셋이 투자한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는 부동산 개발, 다이닝(Dining) 등의 사업을 하는 홍콩 거래소 상장회사 골딘파이낸셜홀딩스와 최대주주인 홍콩 부호 판수통이 공동으로 보유한 오피스 빌딩으로, 이 지역에서 손꼽히는 투자처로 통했다.
미래에셋은 투자 발표 당시 “GIC(싱가포르투자청), 도이치뱅크 등 글로벌 투자자와 함께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미래에셋이 투자자로 참여했다. 홍콩 오피스 시장의 주요 글로벌 투자자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 발표 두 달 뒤엔 미래에셋이 판매하고 멀티에셋자산운용이 운용하는 240억 원 규모의 메자닌(중순위) 대출 펀드가 조성됐다. 미래에셋이 발굴한 앞서의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 메자닌 딜에 일부 참여하는 형태였다. 만기 10개월짜리 펀드로, 대출채권을 유동화한 DLS(파생결합증권)를 편입했다. 이 펀드 역시 최소가입금액이 개인투자자는 10억 원, 기관투자가는 20억 원으로 설정되는 등 고액자산가를 겨냥한 상품이라 업계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미래에셋은 만기가 4개월이 지난 8월 21일 현재까지도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차주인 골딘파이낸셜홀딩스가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투자업계와 현지 펀드 매니저들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이 회사에 도이치뱅크 등 채권자들이 공식적으로 상환을 요구한 금액은 5282억여 원(4억 4450만 달러)에 달했다.
지난해 홍콩을 뒤흔든 송환법 반대 시위 여파와 올해 코로나19 사태 등 악재가 잇따라 불거졌고, 이에 따라 홍콩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손실을 내기 시작한 골딘은 대규모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위해 2018년 매입한 홍콩의 옛 국제공항인 카이탁 부지를 올해 초 적지 않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급히 매각했지만 부채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불어났다.
홍콩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 사진=미래에셋대우
골딘은 지난 7월부터 별도 대출을 진행 중이다. 지난 4월 9일 만기였던 미래에셋과 GIC(싱가포르투자청), 도이치뱅크 등이 참여한 메자닌 대출 상환을 위해서다. 골딘이 계획대로 대출에 성공할 경우, 이 금액과 앞서의 카이탁 공항 부지 매각 대금을 더해 상환 자금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국내 금융투자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차주인 골딘이 상환을 위한 노력은 하고 있지만, 현재 회사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미래에셋이 투자금 손실을 낼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순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지난해 하반기부터 해외 부동산 투자 손실에 대한 경고가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데다, 올해 금융당국이 국내 증권사를 상대로 해외 부동산 투자 현황을 전수조사하며 본격적인 관리 감독에 나선 상황에서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국내 금융권에선 최근 미래에셋이 중국 안방보험과 진행 중인 7조 원 규모의 법정 소송 탓에 대규모 투자 손실을 낼 수 있다는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은 2019년 9월 안방보험과 미국 내 주요 도시에 소재한 15개 호텔 인수계약을 체결했지만, 코로나19 등으로 시장 상황이 악화돼 계약 취소와 관련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미래에셋이 홍콩 골딘글로벌파이낸셜센터에 투자한 방식은 위험도가 높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엔 만기도 짧고 수익성이 높아 투자 가치가 높게 평가됐다. 홍콩 시위와 코로나 여파가 겹치면서 문제가 커진 것”이라며 “정확한 계약 관계를 알 수 없어 조심스럽지만, 겉으로 드러난 정황만을 두고 보면 투자금 손실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지난 8월 20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지금까지 발생한 손실은 없다”고 밝혔다. 이자는 연체 없이 받아왔고, 만기를 4월에서 10월로 6개월 연장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골딘이 부도가 나거나 디폴트 상황은 아닌 만큼, 아직까지 금감원 보고 의무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도 “구체적인 계약 내용이나 흐름을 파악하는 게 먼저지만, 일단 합의를 통해 만기를 연장했다면 보통 정상채권으로 본다. 정상채권일 경우에는 보고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미래에셋은 구체적인 골딘의 상황 및 투자금 회수 계획 등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앞서의 미래에셋 관계자는 “미래에셋이 골딘 및 다른 투자자들과 구체적 내용을 조율하고 있는 상황이고, 계약상 비밀유지 조항도 포함돼 있어 현재로선 공식적인 입장을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