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코크 해물매운탕’ 포장재 15개 등 업계 과포장 고수…“신선도·미관상 개별 포장” 해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와 함께 HMR(가정간편식)과 밀키트(반조리 가정간편식)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한편에서는 HMR과 밀키트의 과대 포장으로 환경 파괴를 우려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밀키트 코너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사진=이수진 기자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적인 ‘쓰레기 대란’이 보도되면서 국내 소비자들은 플라스틱 반납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두유나 요구르트 등 유음료에 부착된 빨대를 제조사로 반납, 플라스틱 포장 사용 자제를 요구했다. 유업계도 이에 화답해 빨대를 제거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매일유업은 어린이 요구르트인 ‘엔요’에 부착된 빨대를 제거했다. 2017년 부착된 빨대는 엔요의 시장 점유율을 이끄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3년 만에 자취를 감추게 됐다. 남양유업도 소비자의 빨대 반납 운동이 진행되자 거래처에 공급하던 플라스틱 빨대 수량을 30% 줄이고 제품 ‘네모우유’에 플라스틱 대신 친환경 소재로 만든 빨대를 부착하는 등 변화를 보였다. 이 밖에도 요구르트 ‘이오’에 빨대 부착을 추진 중이었으나 계획을 전면 중단했다.
한미헬스케어는 소비자의 요구를 받아들여 제품 ‘완전두유 1000’에 부착된 플라스틱을 종이 빨대로 바꿨다. 한미헬스케어 관계자는 “종이 빨대는 플라스틱 빨대보다 제조 원가가 세 배가량 높지만 환경보호를 위해 이 같은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빨대 제거로 인한 일부 소비자들의 불만도 상당하지만 환경보호를 위한 기업의 책임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한 유제품 업체 관계자는 “어린이들이 빨대 없이 음료를 섭취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 빨대 제거 후 부모들의 불만과 항의가 만만치 않게 접수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환경보호가 세계적 추세이자 과제인 만큼 소비자 불만을 감수하고 이런 변화를 시도했다”고 밝혔다.
반면 HMR과 밀키트는 친환경 행보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내 주요 밀키트 브랜드는 대형마트의 PB브랜드(이마트 ‘피코크’와 롯데마트 ‘초이스엘’ 등)와 GS리테일의 ‘심플리쿡’, 한국야쿠르트의 ‘잇츠온’, CJ제일제당의 ‘쿡킷’ 등이 있다. 요리를 못하는 사람도 정량대로 담긴 식재료로 보장된 맛을 낼 수 있고 1~2인 가구에 맞는 양으로 식재료를 구매했다가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어 왔다. 가공식품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밀키트 시장은 지난해 200억 원대에서 올해 약 400억 원으로 두 배가량 성장했다.
특히 밀키트와 HMR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마트에 따르면 올해 3월부터 지난 8월 24일까지 밀키트와 HMR(피코크와 일반 브랜드 상품 포함)의 판매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63.1%, 2.8% 증가했다. 소비자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외식보다 내식을 선호하며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밀키트와 HMR을 찾은 것이다.
밀키트와 HMR 판매량 상승과 함께 재활용품 발생량도 증가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플라스틱류와 비닐류의 재활용품 발생량(공공처리량 기준)은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15.6%, 11.1% 늘어났다. 코로나19 사태로 택배, 배달 등 비대면 소비가 확대된 만큼 일회용품 사용량이 증가한 것이다.
HMR보다 신선도를 강점으로 내세운 밀키트는 들어가는 식재료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포장재를 과도하게 사용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물론 식재료의 특성이 다르고 조리 순서가 달라 나뉘어 포장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함께 포장돼도 큰 문제가 없는 식재료들까지 굳이 개별로 포장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실례로 한국야쿠르트 잇츠온 제품 ‘소곱창순대전골’에 포함된 식재료 대파‧양파‧팽이버섯‧청양고추는 함께 포장돼도 제품 보존에 큰 문제가 없고 동시에 조리되지만, 비닐 포장은 4개로 나뉜다.
이마트의 밀키트 제품 ‘피코크 해물매운탕(왼쪽)’과 ‘오뎅식당 부대찌개’는 상당량의 플라스틱과 비닐로 포장돼 있다. 사진=이수진 기자
이마트에서 판매 중인 밀키트 제품 ‘피코크 해물매운탕’을 살펴본 결과 식재료를 담은 12개 비닐 포장이 커다란 플라스틱 포장 용기‧뚜껑에 담겨 있었고 종이 커버까지 표면에 둘러져 있었다. 사용된 포장은 총 15개였다. 각각의 비닐 포장에 나뉘어 담긴 재료들은 조리 순서에 따라 따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콩나물과 미나리 등은 같은 단계에서 한꺼번에 들어가는데도 각자 분리된 채 비닐에 담겨 있었다.
피코크의 ‘오뎅식당 부대찌개’에는 식재료를 담은 6개의 비닐팩과 두부를 담는 플라스틱 용기, 비닐이 있었다. 여기에 전체 포장을 덮는 뚜껑 용도의 플라스틱과 종이 포장지, 그리고 냄비 용도로 사용되는 일회용 알루미늄 용기까지 나왔다.
HMR 제품에서도 과포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CJ제일제당의 HMR 제품인 ‘매콤새콤 쫄면’의 비닐 포장을 뜯자 쫄면 사리와 소스, 참깨‧김 고명과 함께 커다란 플라스틱 용기가 함께 나왔다. 플라스틱 용기는 조리 과정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제품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용도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마트 노브랜드의 ‘비빔 쫄면’ 제품에는 플라스틱 용기가 없었음에도 품질 보존이나 제품 형태 유지에 큰 문제가 없었다.
플라스틱 포장재를 사용한 CJ제일제당의 ‘매콤새콤 쫄면’(왼쪽)과 그렇지 않은 이마트 노브랜드의 ‘비빔 쫄면’. 사진=이수진 기자
오린아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밀키트의 과도한 포장이 향후 수익성에 문제가 될 수 있다. 밀키트 사용자의 주된 불만은 포장 등에서 나오는 폐기물이 너무 많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밀키트를 판매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요리에 사용되는 재료를 손질한 뒤에 한 곳에 담아두면 신선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재료가 뒤섞이면 미관상 좋지 않다”며 “요리에 배추와 깻잎을 동시에 넣는다고 할지라도 두 재료의 크기가 다르니 분리해서 담는다. 한 곳에 같이 담으면 보기가 안 좋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바쁜 일상 속에서 편하게 준비하려고 구매했는데 재료를 분리하면 더 번거로우니 개별포장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밀키트‧HMR 제조‧유통업체들은 신선도와 미관상 이유로 과대 포장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지만, 해외에서는 비교적 적은 포장으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미국의 밀키트 업체 ‘퍼플 캐롯(Purple Carrot)’은 한 메뉴의 밀키트에 사용되는 재료들을 최대한 같은 포장 안에 담아 포장의 개수를 줄인다. 이 밖에도 패키지 안에 포함된 플라스틱 용기 등을 재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유튜브 영상으로 소개해 소비자들의 재활용을 자연스럽게 돕기도 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소비자들의 ‘플라스틱 반대 운동’은 시작단계지만 앞으로 항의가 거세지면 기업들도 변할 것”이라며 “그 전에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비닐과 플라스틱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방법, 사용되는 플라스틱의 재활용이 잘 되게 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제품을 판매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포장재를 줄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