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외 수익으로 적자 면한 데다 금융당국 중징계로 신사업 진출 막혀
한화 금융계열사의 주축인 한화생명의 경영 위기에 이목이 집중된다. 서울 여의도 한화생명 빌딩. 사진=우태윤 기자
한화생명이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 1758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88.2% 늘어난 성과다. 지난해 한화생명이 20년 만의 영업손실을 내 어닝쇼크 수준의 적자를 낸 뒤 6개월 만에 흑자 전환한 것은 고무적인 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자산 매각과 부대수익 등이 실적을 견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화생명은 올 상반기 금융자산을 대거 매각해 4775억 원의 금융자산 처분이익을 냈다. 금융자산 처분이익이 지난해 상반기 1417억 원, 2018년 상반기 1302억 원 수준에서 크게 늘어난 규모다. 본업인 보험업만으론 상반기 3000억 원대 영업손실을 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룹 차원에서 이뤄지는 계열사 간 거래도 한화생명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한화생명은 서울 중구 장교동 사옥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를 (주)한화에 임대해주면서 지난해 53억 원이던 임대료를 올해 79억 원으로 33%나 올렸다. 반면 한화생명이 (주)한화에 지급하던 브랜드 사용료는 2018년 478억 원, 2019년 511억 원으로 매년 증가하다가 올해는 456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특이한 점은 (주)한화가 올해 계열사에서 받는 브랜드 사용료는 모두 증가했는데, 한화생명만 줄었다는 것이다. 한화생명으로서는 (주)한화에 임대료는 올려 받고, 지급해야 할 브랜드 사용료는 줄었으니 큰 이익을 본 셈이다.
2017년 이래 내리 실적 부진에 고전하던 한화생명은 조직개편과 디지털 혁신을 돌파구로 삼았다. 장기간 회사를 이끌어오던 차남규 한화생명 부회장이 지난해 말 물러나고, 김승연 회장의 신임을 받는 여승주 대표이사 사장 체제로 전환됐다.
디지털 혁신에는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가 전면에 나섰다. 지난해 최고디지털전략책임자에 오른 김 상무는 ‘1호 디지털 손해보험사’인 캐롯손해보험을 출시했다. 캐롯손해보험은 2019년 매출 7억 2500만 원, 당기순손실 90억 원을 냈다.
지난 6월에는 디지털 중심으로 조직을 대대적으로 재편했다. 한화생명은 김동원 상무 주도로 사업본부 50개 팀을 15개 사업본부 65개 팀으로 변경했다. 15개 사업본부 중 9개가 디지털 및 신사업 추진을 위한 조직이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화생명은 난관에 부딪쳤다. 금융당국의 제재로 한화생명의 신사업 전개에 제동이 걸린 것. 한화생명은 자살보험금 미지급과 대주주 거래제한 위반, 두 가지 건으로 중징계인 기관경고를 예고하는 사전통보를 받았다. 또 4일 열린 금융감독원(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위)는 한화생명에 대해 대주주와의 거래제한 등(보험업법 제111조) 및 기초서류 기재사항 준수의무(보험업법 제127조의3) 위반 등으로 기관경고 조치하고, 과징금 및 과태료 부과를 금융위에 건의하는 한편, 임직원에 대해서는 문책경고 상당, 주의적 경고 등으로 심의했다. 앞서 2017년에도 한화생명은 자살보험금을 미지급했다가 기관경고를 받게 되자 그제야 계약자에게 미지급금을 지급한 바 있다.
금감원 제재심위에서 기관경고가 확정되면서 한화생명은 1년간 금융당국의 인·허가가 필요한 신사업 분야에 진출할 수 없게 된다. 또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할 수 없어 새로운 회사를 인수하기 어려워진다. 저금리와 코로나19로 보험업 업황이 좋지 않은 데다 신사업 진출까지 막히면 한화생명으로선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생명 계열사와 자회사로도 불똥이 튈 전망이다. 한화생명은 지난 3월 자회사인 한화자산운용의 5100억 원 유상증자에 나선 바 있다. 한화자산운용은 수익률이 높은 대체투자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국내외 운용사 인수를 추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주주 적격성 여부가 자회사의 인수합병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한화자산운용의 인수도 녹록지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런 이유로 한화생명은 제재 수위를 낮추기 위해 총력방어를 해왔다. 비공개로 4일 열린 제재심에서는 한화생명 측에서 10명 이상 진술인의 의견진술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 역시 윤석헌 금감원장 취임 후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며 사실상 폐지됐던 금융사 종합검사를 4년 만에 부활시킨 만큼 종합검사 첫 타깃으로 삼은 한화생명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화생명 측은 “조직개편이나 임원 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금융당국의 제재와 관련해서는 회사 측에서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재계는 한화생명의 위기가 그룹 경영 승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동원 상무는 2015년 한화생명에 뛰어들며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김 상무 주도의 이뤄진 디지털 혁신 사업이 아직 성과를 보지 못한 데다 캐롯손해보험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까지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한화생명은 보험사 중에서도 자본적정성이 취약한 편이며 감독당국의 규제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악재”라며 “한화생명은 신사업 추진을 통해서라도 수익성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인데 금감원의 기관경고 제재로 사면초가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