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추경 처리 과정 이재명·김경수 눌렀지만 ‘통신비 지원’ 오락가락 행보 탓 리더십 상처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임준선 기자
[일요신문] 2차 재난지원금이 영세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에 대한 맞춤형 지원으로 결정됐다. 기획재정부가 피해계층 지원을 중심으로 한 7억 8000억 원 규모의 맞춤형 추경안을 선보였고 국회는 23일 저녁 추경안을 통과시켰다.
추경에 앞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피해 계층에 선별 지원을, 이재명 경기지사는 전 국민 보편 지원을 주장했었다. 이 지사가 보편 지원의 경제적 효과를 연일 강조하며 전 국민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번 추경에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청와대가 선별 지원에 동의한 것을 두고 건국대 경제학과 최배근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임 당대표 첫 결정을 배려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9월 중순만 해도 이 대표 측은 만 13세 이상 국민 모두에게 2만 원의 통신비를 지원하는 안을 내놓으며 한 줄기 보편 지원의 여지는 남겼었다. 추경이 자영업자 소상공인에게 집중된 데 따른 국민 반발을 고려한 대목이 아니었겠느냐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16~34세, 65세 이상에만 지급하기로 선회하며 보편 지원의 색깔을 지웠다.
9월 22일 통신비 선별 지급 결정이 나오자 포털과 SNS에서는 이번 결정을 비판하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통신비를 받지 못하게 된 30~40대는 “이럴 거면 처음엔 왜 준다고 한 거냐. 우리가 세금만 내는 노예냐”는 불평을 늘어놓았고, 받게 된 20~30대에서도 지난 1차 재난지원금 30만 원과 비교하며 “고작 2만 원으로 재난 지원했다고 생색내는 거냐”며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낙연 체제의 첫 결정인 통신비 지원이 부정적 반응으로 점철된 셈이다.
추경안 처리 과정에서 통신비 지원을 반대하는 의견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통신비 지원은 (소비가 의무인 지역화폐가 아니므로) 예산이 직접 통신사로 들어가 ‘승수’ 효과가 없다”며 “소액이라도 모두에게 주자”는 의견을 냈고, 김경수 경남지사도 “9000억 원의 예산으로 일회성 통신비를 지급하는 대신에, 학교를 비롯한 공공장소와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수단,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 경로당 등에 무료 와이파이망을 대폭 확대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도 “국민 60%가 통신비 지원에 반대하고 있다. 통신비 지급 철회 없이는 추경 처리가 어렵다”며 민주당을 압박했고 결국 여야 합의를 거치며 기존 9200억 원에서 5000억 원이 삭감된 채 본회의를 통과했다.
반쪽짜리가 된 통신비 지원을 두고 이낙연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포털 기사마다 이 대표를 향한 실망과 분노의 댓글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이낙연 대표의 9월 초 “비대면 활동 증가로 급증한 통신비 부담은 ‘전체 국민의 부담’으로 볼 수 있다”는 발언이 회자되며 말 바꾸기 리더십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따라서 이번 추경이 겉으로는 이재명, 김경수 지사를 누른 이낙연 대표의 승리로 보였지만 정작 승전고를 울리지 못하는 상황에 접어들었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
게다가 이번 결정으로 이낙연 대표는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됐다. 선별 지원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선 적어도 1차 재난지원금 못지않은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성과를 판단할 지표로 소상공인 자영업자 매출액, 폐업률, 가계 부채 증감 등이 꼽힌다. 무엇보다 추석을 전후한 정당 지지율의 변화도 정부와 여당에 대한 민심의 향배를 가늠할 지표 중 하나다.
한편 이낙연 대표가 이재명 지사를 견제하려 했다면 오히려 보편 지급을 하는 편이 나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낙연 대표가 보편을 택했다면 오히려 이재명 지사의 강력한 무기 하나를 공유할 수 있었을 거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번 선택으로 인해 이낙연 선별, 이재명 보편이라는 인식은 굳어졌고 이 대표는 자신을 스스로 선별 안에 가둔 꼴이 됐다.
이전까지 민주당은 무상급식 등의 이슈에서 줄곧 보편적 복지를 주장해왔다. 이 기조는 직전 이해찬 대표 임기에도 유효했다. 하지만 이낙연 대표는 선별의 길을 갔고 10년 이상 당의 정체성이던 보편 복지의 흐름을 전환한 결정에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관심이 쏠린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