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손보 보유 지분 한화자산운용으로 넘겨…시너지보다는 투자 통한 육성 관측
사진=캐롯손보 홈페이지 캡처.
#캐롯손보에 관심 집중된 이유
한화손해보험은 보유 중이던 캐롯손보 지분 68.3%를 한화자산운용에 넘겼다. 매각가는 542억 원이다. 해당 공시에 따르면 한화손해보험의 처분 목적은 재무건정성 강화, 한화자산운용의 취득목적은 캐롯손보와 사업연계를 통한 시너지 창출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인터넷전문 손해보험사인 캐롯손보를 손해보험사 품에서 떼어내 자산운용 품으로 이동시킨 것을 두고 ‘시너지’보다는 투자를 통한 캐롯손보 육성이 목적이라 분석한다.
캐롯손보는 지난해 5월 한화손해보험(지분 75.1%)과 SK텔레콤(9.9%), 알토스벤처스(9.9%), 현대차(5.1%) 등이 주요 주주로 참여해 설립된 디지털 손해보험사다. 캐롯손보 설립에는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한화생명에 디지털팀장으로 합류한 김동원 상무는 추후 승계 과정을 거쳐 한화그룹 금융계열사를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한화손해보험은 캐롯손보 출범 당시 자동차보험 CM(온라인 마케팅)채널을 접고 캐롯손보에 몰아줬다. 한 회사가 2개의 자동차보험 요율(1사 2라이선스)을 갖게 되는 문제로 인해 캐롯손보 설립 본허가 승인 획득 과정에서 계열사 간 수수료가 다른 2개 채널을 운영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 더불어 2017년부터 한화손해보험 디지털추진단장을 맡았던 정영호 캐롯손보 대표이사를 비롯해 3명의 한화손보 디지털사업추진파트장이 캐롯손보 사내이사로 자리를 옮기며 신생 디지털 손보사에 힘을 실었다.
김동원 상무는 현재 한화생명에서 최고디지털전략책임자를 맡고 디지털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대대적으로 진행된 한화생명의 디지털 중심 조직개편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업황 부진이라는 긴 터널 지나고 있는 탓에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긴 어려운 상황이다.
한화 금융계열 맏형 한화생명은 저금리 장기화에 따라 과거 고금리 상품 판매로 인한 금리 역마진 현상이 심화돼 자본 확충 부담이 가중됐다. 한화생명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연결기준 586억 원으로 전년(4465억 원) 대비 87% 급감했다. 한화생명이 지분 51.36%를 보유한 자회사 한화손해보험은 지난해 당기순손실 690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실적악화로 지난해 말 기준 지급여력비율이 200% 아래로 떨어지면서 금융감독원의 경영관리대상에 포함되기도 했다.
올해 초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한 캐롯손보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7억 2500만 원의 매출액을 올렸으나, 초기투자비용 집행 등으로 90억 8600만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그러나 디지털 손보사들 경쟁이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전망인 만큼 투자는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최근 네이버와 카카오 등 ICT(정보통신기술) 대기업들은 디지털 손보사 진출을 준비 중이다. 더욱이 앞서 더케이손해보험을 인수해 디지털 손보사로 전환한 하나금융지주의 사례처럼 다른 금융지주의 시장 진출도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디지털 손보사로서 입지를 다져야 하는 캐롯손보를 재무상황이 어려운 한화손해보험에서 한화자산운용 품으로 이동시켰다고 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한화손해보험은 ‘제 코가 석자’인 상황이라 캐롯손보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며 “향후 투자가 필요한 캐롯손보를 떼어내면 한화손해보험 입장에서도 부담이 줄어 재무구조 개선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 여의도 한화생명 빌딩. 사진=우태윤 기자
#캐롯손보 입양한 한화자산운용 ‘시너지’ 전략은?
캐롯손보의 새 주인이 된 한화자산운용은 실탄이 넉넉한 상황이다. 한화자산운용은 한화생명의 100% 자회사로, 지난 2월 한화생명으로부터 5100억 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받으며 자본 규모를 7098억 원(지난해 말 기준 1998억 원)으로 늘렸다. 한화자산운용은 유상증자 당시 공시에서 자금조달의 목적을 운영자금 1500억 원, 타법인 증권 취득자금 3000억 원, 기타자금 600억 원 등이라고 명시했다.
한화자산운용은 앞서 ‘타법인 증권 취득자금’ 3000억 원을 활용해 해외 대체투자 운용사를 인수할 계획을 밝혔지만, 모회사 한화생명에 대한 금융당국의 중징계로 인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한화자산운용은 해외 운용사 인수가 어려워진 만큼 일단 자금을 계열사 지원에 투입한 것으로 보인다. 한화자산운용이 캐롯손보를 인수하며 캐롯손보에 대한 한화생명의 지배력도 한층 강화됐다.
다만 한화자산운용 관계자는 “증자 자금을 기반으로 글로벌 역량 강화 및 디지털 경쟁력 제고를 추진하고 있으며, (캐롯손보 인수도) 증자 시 용처 배정 금액 범위에 따른 전략 실행의 일환”이라며 “캐롯손보는 새로운 사업영역에서 성장 가능성이 커 그룹 간판을 떼어놓고 봐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추진 중인 자산운용 입장에서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또 “현재 캐롯손보는 필수 인원 충원 및 기술개발로 적자를 보이고 있으나, 대부분의 디지털 신생사업이 경험하는 초기 J커브의 일부”라며 “플랫폼 구축 및 제휴사 연계로 상품을 다각화하면 흑자전환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한화자산운용이 우선과제로 꼽히는 한화투자증권에 대한 지분 추가 매입보다 캐롯손보 인수를 먼저 택했다는 점도 캐롯손보의 이동이 금융계열사 차원에서 이뤄진 결정이란 분석에 힘을 싣는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7월 한화투자증권 유상증자를 통해 ‘한화생명→한화자산운용→한화투자증권’으로 이어지는 금융부문 수직계열화를 구축했다. 한화자산운용은 한화투자증권의 1000억 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비금융계열사 한화첨단소재(현 한화글로벌에셋)를 제치고 한화투자증권의 최대주주가 됐다.
그러나 한화자산운용이 보유한 한화투자증권 지분은 여전히 19.63%에 불과하다. 한화글로벌에셋(12.49%)과 한화호텔앤드리조트(8.72%), 한화갤러리아 타임월드(3.86%), 한화갤러리아(1.41%) 등 비금융계열사가 여전히 한화투자증권 지분 26%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생명 중심의 금융계열사 지배구조 개편이 완성되려면 한화투자증권에 대한 비금융계열사들의 지분 정리가 이뤄져야 한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