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명 소송 결과 유사 소송들에 적용 어려워…삼성생명 “원칙과 기준에 따라 지급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74길 11 삼성생명 건물 전경. 사진=이종현 기자
#1명 소송 결과가 가져올 파장은?
지난 9월 24일 대법원은 보암모 회원인 이 씨가 삼성생명에 제기한 암 입원비 지급 청구 관련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내렸다. 2심 판결을 뒤집을 만한 사유나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2017년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은 이 씨는 대학병원에서 수술·항암 치료를 받았고 이후 요양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삼성생명의 암보험 4개를 가입한 이 씨는 보험금을 청구했다. 삼성생명은 진단비·수술비 9488만 원만 지급하고 요양병원 입원비 등 5558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 씨는 보험금을 받기 위해 삼성생명과 법정공방을 벌이게 됐다.
2심 재판부는 요양병원 입원이 암 치료에 도움이 됐다고 인정했다. 다만 암 후유증이나 합병증 등을 완화하거나 치료하기 위한 입원까지 보험금 지급사유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례와 요양병원 의사가 이 씨에게 입원치료를 진단했다고 하더라도 굳이 입원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삼성생명이 웃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 같은 결과가 소송을 제기한 전체 환자에 일괄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환자마다 입원치료를 어떻게 입증하느냐에 따라서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한 재판에서는 요양병원 입원치료가 암의 치료를 직접 목적으로 하는 입원에 해당하므로 보험금 지급이 타당하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판례 속 환자는 이 씨처럼 대학병원에서 수술·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요양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병행했다.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입원치료가 직접적인 치료인지 아닌지가 모호한 가운데 일단 어떻게 입증하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지는 것 같다”며 “보험사 고객들은 약관이 모호한 걸 문제 삼아서 공정위원회에 ‘약관규제법’에 대해 제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이 금융감독원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금감원은 10월 중으로 삼성생명 종합검사에 대한 징계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종합검사 과정에서 보암모가 제기한 암입원 보험금 지급건을 집중적으로 확인해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금감원 관계자는 “종합감사는 한 고객에 대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전반적인 경영 실태를 조사하는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지만, 고객의 소송 결과는 종합검사와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9월 29일 삼성생명은 보암모 회원 10명에게 총 6억 4200만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공시송달 방식으로 청구했다. 강남 서초구에 있는 삼성생명 본사 2층 고객센터를 보암모가 불법점유하고 있는 것을 사유로 들었다. 공시송달은 원고(삼성생명)가 피고(보암모 회원)에게 소송 서류를 전달할 방법이 없을 때만 인정된다. 4개월 동안 보암모 회원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어 소송 서류를 전달하지 못했다는 삼성생명의 입장이 법원에서 인정됐다.
이에 대해 김근아 보암모 공동대표는 “지금까지 법원에서 소송 서류를 받으면 성실히 의견서를 작성해 제출해왔다”며 “이번 손해배상 관련해서 삼성생명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고 공시송달 됐다는 걸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공시송달은 삼성생명의 법률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시송달이 되면 법원 게시판에 소장이 게재되고 피고가 소장을 받았다고 간주한다. 피고가 소장에 대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도 법원 게시판에 게재된 후 기간 내에 의견서 제출, 항소 등을 하지 않으면 소송에서 패소하게 된다.
이민 법무법인 창과방패 변호사는 “피고가 어디에 있는지 알면서도 일부러 다른 곳으로 소장을 보내서 공시송달이 되게 할 수 있는데 불법은 아니다”며 “법을 상당히 기술적이고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이런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삼성생명 관계자는 “공시송달은 법원에서 타당하다고 인정해서 진행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지난 2017년 보암모는 암환자들에게 요양병원 보험비를 지급하라고 보험사에 시위를 하면서 결성됐다. 사진=보암모 제공
#금감원 권고에도 경쟁사 대비 낮은 지급률
금감원은 약관해석에 따라 요양병원에 입원한 보험금 전액을 보험사가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2018년 9월 금감원은 암보험 민원 관련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기준을 세웠다. △말기암 환자의 입원 △집중 항암치료 중 입원 △암수술 직후 입원 등에 대해서는 보험사가 요양병원 입원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기준에 해당하면 각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을 재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금감원의 권고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24일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암 입원비 분쟁 처리 현황’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작년 금감원이 지급을 권고한 296건 중 186건(62.8%)에만 암 입원비를 전부 지급했다. 98건(33.1%)은 일부만 수용했고 12건(4.1%)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8년 27.2%보다는 많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다른 생명보험회사들보다 현저히 낮다. 삼성생명과 함께 생보업계 ‘빅3’인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은 각각 90.9%, 95.5%였다.
오는 10월 13일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감원 국정감사에서도 삼성생명의 요양병원 암 입원보험금 미지급 등의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삼성생명은 암 보험 분쟁 문제로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게 됐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암 입원비 지급률은 저희 건수가 타 보험사보다 많아 비율이 낮아 보이는 것이다. 원칙과 기준에 따라서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