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층 결집 위한 ‘리얼리티쇼’ 의혹…연임 포기 후 사면 받기, 존 바이든 감염시키기 등 주장도 난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코로나19 치료를 받던 병원에서 퇴원한 뒤 백악관으로 돌아와 발코니에서 엄지를 치켜들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트럼프 부부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간 직후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각종 의혹과 추측들이 퍼져 나갔다. 대부분은 근거 없는 소문에 불과했지만, 이 가운데 몇몇은 그럴듯한 논리로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다. 평소 트럼프가 보여준 언행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의심하는 것은 트럼프의 실제 감염 여부다. 이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트럼프는 사실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대선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확진된 척 쇼를 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조 바이든 후보에게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뒤처지고 있는 마당에 이렇게 해서라도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한편, 중도표를 가져오려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동정표를 얻는 한편, 코로나19에 감염된 후에도 다시 건강하게 업무에 복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을 둘러싼 건강 문제를 불식시키려는 의도다. 다른 한편으로는 평소 코로나19의 위험성에 대해 무시해왔던 자신의 노선을 더욱 굳건히 하려는 의지도 깔려 있다. 자신의 주장대로 코로나19가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보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 가운데는 좌파 운동가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마이클 무어도 있다. 무어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트럼프에 관해서는 한 가지 절대적인 진실이 있다. 그는 한결같고, 완벽하며, 완고하면서, 겁이 없고, 전문적인 거짓말쟁이다. 트럼프는 이미 과거에도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 거짓말을 한 전력이 있다. 그는 어쩌면 진짜 확진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게 팩트다”라고 주장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 마이클 무어는 “트럼프는 한결같고, 완벽하며, 완고하면서, 겁이 없고, 전문적인 거짓말쟁이다”라고 주장했다. 사진=마이클 무어 페이스북
또한 무어는 “트럼프 입장에서는 분위기 전환이 절실했다”고도 주장했다. 특히 근래 들어 몇 차례 (소득 신고를 둘러싼) 부정적인 언론 보도가 나갔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에 코로나19 감염을 빌미로 대선을 연기하거나, 혹여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패배 요인을 코로나19 탓으로 돌리기 위해서라고도 무어는 주장했다.
대통령 사면을 염두에 둔 쇼라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음모론은 트럼프의 전 변호인이자 해결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주장했다. 지난 9월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 후 연방법원으로부터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던 코언은 만일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를 대비해 자신을 사면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트럼프가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바통을 넘겨주기 위해서 코로나19에 감염된 척 꾸몄다고 의심했다.
트럼프가 미리 짜놓은 각본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을 핑계로 자신이 연임을 포기하고 후보직을 사퇴하는 조건으로 펜스 부통령이 후보가 돼고, 만일 당선될 경우 펜스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으로 트럼프를 사면해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극적으로 백신을 승인함으로써 대선에서 승리하려는 계획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의심하는 한 누리꾼은 “아마도 트럼프는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극적으로 회복될 것이다. 그리고 선거 직전에 백신이 짠하고 나타날 것이다”라고 의심했다. 트럼프가 약속했던 코로나19 백신이 기적적으로 나타나 인류를 구한다는 시나리오다.
한편으로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도 있다. 트럼프가 일부러 대선 TV 토론회에서 바이든을 감염시키려고 확진 사실을 숨겼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런 의심은 지난 9월 29일 토론 진행자인 크리스 월리스가 “트럼프 대통령이 토론장에 너무 늦게 도착해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지 못했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실제 토론장에 늦게 도착했던 트럼프는 이를 핑계로 코로나19 검사를 받지 않은 채 토론을 시작했다. 이미 다른 곳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굳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부러 대선 TV 토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감염시키려고 확진 사실을 숨겼다는 다소 과격한 주장도 나오고 있다. 9월 29일(현지시간) 대선 첫 TV 토론을 벌이는 바이든(왼쪽)과 트럼프. 사진=AP/연합뉴스
하지만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안 그래도 계속해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반복적으로 퍼뜨린 그(트럼프)를 믿기로 결정한 것은 위험했다”고 주장하면서 “무모한 행동과 이를 통해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 어떤 누리꾼은 “트럼프는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토론회에 나갔다. 그는 바이든을 감염시키고자 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어떤 누리꾼은 “이는 명백히 바이든에 대한 암살 기도다. 트럼프 측은 의도적으로 바이러스가 가득한 토론회에 참석해서 고령인 바이든이 코로나19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을 알고 바이든을 감염시키려고 했다. 이는 살인미수 혐의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바이든이 이런 상황에서도 감염되지 않은 이유는 평소 마스크를 착용했던 덕분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주장들은 다소 황당하기도 하지만 현재로선 진위를 알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지 사흘 만에 퇴원한 트럼프는 다시 이틀 만에 업무에 복귀하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치의인 숀 콘리 박사는 현재 트럼프가 무증상 감염 상태라고 말하면서 “열도 없고 산소 공급도 필요로 하지 않는 안정적인 상태다”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또한 건재함을 과시하면서 “나는 매우 건강한 상태다”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에 미국인들은 트럼프의 코로나19 감염이 향후 대선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앞으로 코로나19를 대하는 트럼프의 태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주목하고 있다.
너무 빠른 회복 트럼프는 정말 괜찮은 걸까 주치의에 따르면, 코로나19에 감염된 트럼프가 투여받은 약물은 항바이러스제인 렘데시비르와 실험적인 항체 칵테일, 스테로이드제인 덱사메타손 등이었다. 약물 덕분인지 빠른 회복세를 보인 트럼프는 병원에서도 연달아 트윗을 올리는 등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오히려 트럼프의 이런 모습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약물 부작용과 후유증을 염려하고 있다. 브라운대 응급의학과 겸 부교수인 메건 래니는 CNN 인터뷰에서 “덱사메타손은 정신건강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하면서 “가령 의식이 혼미해지거나 조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또한 “대통령이 스테로이드에 의한 정신적 부작용을 앓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근래 보여준 그의 행동들은 확실히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요컨대 병중에도 계속해서 트윗을 올리거나 경기 부양책을 두고 오락가락하는 모습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 알려진 바에 따르면, 렘데시비르로 인한 부작용으로는 메스꺼움, 구토, 오한, 잠재적인 간 손상 등이 있으며, 스테로이드제인 덱사메타손은 공격성, 감정 동요, 불안, 짜증, 우울증과 같은 정신 건강 문제를 포함해 몇 가지 잠재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가족들 역시 걱정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입원 중에도 폭풍 트윗을 한 아버지를 염려한 장남 도널드 주니어 트럼프는 아버지가 트윗을 멈추도록 말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가족들의 이런 우려는 지나친 게 아니다. 실제 의학 전문가들은 약물 부작용으로 인해 트럼프의 인지 능력이 심각하게 손상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복용하고 있는 스테로이드제의 일종인 덱사메타손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약물 성분은 기분에 영향을 미쳐 희열이나 행복감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자신의 증상을 부인하고 끝까지 업무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트럼프의 모습은 그의 부친인 프레드 트럼프 시니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프레드는 1990년대 알츠하이머가 상당히 진행된 후에도 계속해서 업무를 보겠다고 고집을 부렸었다. 평소 “은퇴를 하면 인생도 끝난다”라고 주장했던 그는 병이 악화된 후에도 한사코 회사로 출근을 하려고 했다. 넥타이를 세 개나 매고 외출을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프레드는 여전히 자신이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착각했으며, 이런 그를 위해 가족들은 일종의 연극을 해야 했다. 가령 매일 그가 브루클린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하면 결재 사인을 할 수 있는 백지를 책상 위에 준비해 놓았는가 하면, 비서에게만 전화를 걸 수 있는 전화기 한 대를 비치해 놓기도 했다. 가족의 지인들은 “프레드는 출근 후 일하는 척만 했다”고 말하면서 한동안 이런 연극은 계속됐다고 말했다. |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