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전사고 급증,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 위험…영국 정부, 번호판 부착 등 사고 방지 대책 고심
최근 들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1인 이동수단 가운데 하나라고 하면 단연 전동 킥보드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공유 서비스가 활발해지면서 이제는 어디서나 전동 킥보드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됐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경우가 아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대중교통 탑승을 꺼리는 사람들이 늘면서 대안으로 전동 킥보드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유럽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편리함’만 생각하기에는 부작용도 큰 것이 사실. 바로 날이 갈수록 급증하는 안전사고 문제 때문이다.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고도, 또 면허 없이도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사실 전동 킥보드는 자칫하면 도로 위의 무법자가 될 수 있다. 실제 뺑소니 사고가 급증하고 있는 영국에서는 이에 전동 킥보드 관련 규정을 개선함과 동시에 인식 변화 또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1인 교통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는 전동 킥보드. 그 편리함만큼이나 안전사고라는 부작용이 따른다. 독일 헤르네에서 전동 킥보드를 즐기는 여성들. 사진=EPA/연합뉴스
때는 지난 9월 중순경. 새벽 1시 무렵 자전거를 타고 런던 동부 리젠트 운하 옆 좁은 둑길을 따라 귀가하던 28세의 요가 강사는 순간 무언가와 쿵하고 부딪히는 바람에 그만 운하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5분가량 허우적대던 그는 다행히 마침 운하 옆을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구조됐다.
리젠트 운하 둑길은 두 명이 나란히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데다 사고가 발생한 다리 아래는 특히 어둡기 때문에 항상 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이곳에서 지난 1년 동안 전동 킥보드 관련 사고가 빈번히 일어난 이유 역시 이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최악은 전동 킥보드가 조용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바로 옆에 다가와도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요가 강사와 충돌한 전동 킥보드 운전자의 경우에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달리고 있었던 까닭에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조차 몰랐다.
리젠트 운하 근처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전동 킥보드는 시속 32km로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와 같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다리 밑에서는 최소한 속도를 줄이거나 아예 내려서 걸어가지만, 전동 킥보드 이용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전동 킥보드가 운하를 따라 달리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처럼 근래 들어 영국에서는 전동 킥보드와 관련된 사고가 날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대중교통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1인 교통수단으로 찾기 시작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현재 영국에서는 전동 킥보드로 인도를 달리는 것은 금지돼 있으며, 최고속도는 시속 약 25km로 제한을 두었다. 또한 이용자는 반드시 헬멧을 착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동 킥보드로 인한 안전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긍정적인 버밍엄 걷기 투어’를 운영하는 조나단 버그는 얼마 전 가이드 한 명이 도로 한복판에서 마치 나무가 쓰러지듯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는 소름이 끼쳤다고 말했다. 다름 아니라 전동 킥보드와 충돌했던 것이다. 버그는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충분한 공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던 전동 킥보드와 부딪쳐서 넘어졌다”며 “전동 킥보드는 무모함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그린 라이트’를 허용했다”라며 비난했다.
28세의 요가 강사가 전동 킥보드와 부딪혀 추락한 런던의 리젠트 운하. 5분간 허우적대다가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구조됐다.
이런 불만을 의식한 듯 최근 영국 정부는 앞으로 전동 킥보드에 번호판을 부착하는 것을 의무화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할 방침을 세우고 있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가해자를 쉽게 추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런던왕립병원 외상센터 신경외과 과장인 크리스토퍼 우프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동 킥보드가 직장에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인 교통수단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인도에서 탄다면 보행자들을 죽일 수 있고, 만약 자동차 도로에서 탄다면 자살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이렇게 위험한데도 전동 킥보드는 현재 붐비는 도로와 인도에서 새로운 불확실성과 위험을 만들어 내고 있다”며 비난했다.
한번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전동 킥보드 한 대가 여덟 살 딸 옆을 시속 32km로 쌩 지나갔다고 말한 우프는 전동 킥보드를 타고 지나간 남자를 가리켜 ‘잠재적인 살인범’이라고 부르면서 “그는 20대 초반이었고, 짙은 색의 비즈니스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추측컨대 젊은 직장인이었다. 그는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며 분개했다.
이는 영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2018년부터 전동 킥보드의 도로 운행이 허용된 프랑스 파리의 경우에도 현재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에는 30대 남성이 고속도로에서 전동 킥보드를 타고 달리다가 그만 뒤에서 쫓아오던 오토바이에 받혀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그는 헬멧을 착용하지 않고 있었으며, 결국 프랑스에서 전동 킥보드로 사망한 세 번째 희생자가 됐다. 그런가 하면 한 81세 노인은 교외 인도에서 전동 킥보드를 타고 달리다가 넘어져서 사망하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에게도 전동 킥보드는 위험한 장애물이다. ‘가이드 도그스’의 크리스 테오발드 공보담당은 “시각장애인과 부분 시력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도로 위에서 전동 킥보드를 인지하고 피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대부분 전동 킥보드는 소리없이 조용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영국 정부와 전동 킥보드 회사들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가령 강력하게 속도 제한을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영국 왕립 시각장애인 연구소의 엘레노어 사우스우드 회장은 “전동 킥보드의 최고 속도를 가능한 최대 시속 20km로 제한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전동 킥보드를 이용하기 전에 반드시 강습을 받도록 하거나, 혹은 면허시험을 보도록 하거나,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타이어 바람 빠진 채 달리다 그만… 영국 유튜브 스타 지난해 전동 킥보드 사망 사고 전동 킥보드 사고로 사망한 유튜브 스타 에밀리 하트리지. TV 진행자 겸 유튜브 스타인 에밀리 하트리지(35)가 전동 킥보드 사고로 사망한 것은 지난해 7월이었다. 당시 그녀는 개인 소유의 전동 킥보드를 타고 런던 남서부 배터시의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순간 중심을 잃고 넘어졌으며, 그 결과 도로 위를 달리던 화물차에 깔려 즉사하고 말았다. 검시 결과 사고 원인은 킥보드의 타이어에 있었다. 타이어에 바람이 빠진 사실을 모른 채 빠른 속도로 달리다 그만 전복했던 것이다. 선임 검시관인 피오나 윌콕스 박사는 “하트리지는 퀸스타운 로드에서 전동 킥보드를 타고 달리던 중 자전거 도로에 있는 턱을 통과하면서 순간 중심을 잃었고, 결국 대형 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사고 당시 전동 킥보드는 너무 빨리 달리고 있었고, 타이어의 공기압이 낮은 상태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라고 검시 결과를 발표했다. 이 킥보드는 남친에게서 선물받은 것으로, 사실 개인 소유의 전동 킥보드를 공공도로에서 이용하는 것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트리지의 남친은 이번 사고가 그에게 상처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전동 킥보드 운행을 금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성인의 경우에는 반드시 금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전기로 구동되는 만큼 친환경적인 데다, 속도를 최대 32km까지만 허용한다면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의견을 나타냈다. |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