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여론조사서 비관적 결과 소문…2011년 박원순처럼 ‘제3의 인물’ 부상 가능성도
여권에 특명이 내려졌다. 작전명은 ‘야권의 서울 탈환 저지.’ 오는 2022년 3·9 대선의 최대 변수로 꼽히는 서울 민심을 잃으면 정권 재창출은 사실상 물건너간다. 야당 서울시장 후보군이 커밍아웃하는 것과는 달리, 여당은 로키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하지만 물밑 기류는 ‘초비상’이다. 최근엔 여당이 비공개 여론조사를 돌렸다는 소문까지 도는 등 밑바닥 기류는 흉흉하다. 여권 수뇌부 셈법도 고차 방정식으로 격상했다. 제1 야당인 국민의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자 정가에선 제3의 인물이 부상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른바 ‘박원순 데자뷔’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9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청 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내년 4월 재보궐 선거와 관련한 공식 논의를 삼간 채 조심스러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한 당직자는 “조만간 내부에서 공론화하지 않겠느냐”라고만 했다. 당 최고위원회 등에서 공식 논의는 없었다는 얘기였다. 다만 당 일각에선 ‘내부 비밀여론조사를 했다’는 소문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낮은 여당 후보군 경쟁력’이라고 한다. 여권 한 관계자는 “서울시장 하마평에 오른 여권 인사들이 야권 후보군보다 지지도가 낮다는 말을 들었다”고 귀띔했다.
여권 후보군이 어느 선까지 포함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언론에 거론되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추미애 법무부 장관, 민주당 우상호 의원 등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관계자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국무총리 등까지 포함해 돌린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이 없는 차기 대권잠룡을 여론조사 표본에 포함한 것은 여권 서울시장 후보군의 경쟁력을 분석하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NY(이낙연)와 SK(정세균)는 야권 후보군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일부 인사들 사이에선 “SK가 출마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자포자기했다고 한다. 이런 기류가 확산되면서 일부 인사들은 ‘SK 구원등판론’을 흘렸다. 정 총리 측은 발끈했다. 이 소문은 정 총리 측 다수에게 공유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측근들은 격분했다고 한다. 한 측근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여론조사의 실체 여부도 불확실하다”고 일축했다. 이어 “누가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지…”라며 “지금은 코로나19 방역에 온 신경이 가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 총리 측 반발에는 SK를 ‘정권 재창출의 불쏘시개’로 쓰고 버린다는 인식이 깔렸다. 애초 정 총리 측은 내년 4월 재보선 전후 ‘대권 도전’ 여부에 관해 입장을 정리한다는 플랜을 정했다. 내년 초 후보가 결정되는 서울시장 재보선은 처음부터 선택지에 없었다는 의미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도 여당의 내부 여론조사와 관련해 “들어본 바가 없다”며 여의도 호사가들의 얘기로 일축했다.
문제는 내부 여론조사를 둘러싼 소문의 진위가 아니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40% 선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과는 달리, 당내 위기감이 크다고 해석할 수 있다. 174석의 거대 여당을 이룬 지 반년 만에 재보선 패배를 걱정할 처지에 놓인 셈이다. 내부 여론조사가 설에 그친다고 능사는 아니다. 그만큼 물밑에선 치열한 권력암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주도한 ‘2020 더혁신위원회’를 놓고 뒷말이 나오는 것도 여권 내 권력투쟁과 무관치 않다. 이 대표가 내년 4월 재보선과 차기 대선을 앞두고 혁신위를 띄우자, 정치권 안팎에선 ‘NY의 대선 판깔기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통상적으로 선거 패배나 계파 갈등 해소 등을 위해 꺼내는 여의도 문법과는 다른 행보라는 것이다. 앞서 민주당은 선거에서 연패한 2015년 ‘김상곤 혁신위’를 국면전환용 카드를 썼다. 2년 전에도 ‘이해찬 혁신위’를 통해 당내 선거제도를 손질했다.
여당 의원실 한 보좌관은 “김상곤 혁신위에선 당의 인적 쇄신을, 이해찬 혁신위에선 시스템 정당을 각각 구축했다”고 회고했다. 이 대표도 혁신위를 통해 외부 인사 수혈은 물론, 당 조직 정비에 고삐를 당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번 혁신위를 ‘NY의 기강 잡기용’으로 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인적 쇄신 등 당 혁신에 대한 반감을 줄이기 위해 친문(친문재인) 직계인 김종민 최고위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선임했다. 검찰 개혁의 선봉장인 김 최고위원은 ‘정권의 호위무사’로 불린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세계한인민주회의 대표자회의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 대표 측은 NY발 대선 판깔기 논란에 대해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고 일축했다. 대표 정무실장인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10월 14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국난 극복과 동시에 미래 설계를 책임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혁신위에서 기후위기를 비롯해 젠더 등 포스트 코로나 이슈를 끌고 갈 것”이라며 “백년정당 민주당의 설계도를 그리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NY발 칼질은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혁신위를 띄운 민주당은 난제로 남은 서울·부산시장의 보궐선거 공천 문제를 조만간 공론화하기로 했다. 여당 한 중진 의원은 “국정감사와 예산 국회가 남은 만큼, 재보선 논의는 빨라야 정기국회 후반기”라고 예상했다. 후보 공천 문제를 정면 돌파할 전 당원투표 회부 여부도 최종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 탓에 서울시장 하마평에 오른 여당 후보도 로키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당 내부에선 아들 군 휴가 문제로 내상이 깊은 추미애 장관보다는 박영선 장관에 베팅하는 이들이 늘었다.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핵심인 우상호 의원과 당 대표에 도전했던 박주민 의원의 최종 후보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반면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군은 잇따라 ‘나요 나’를 외치고 있다. 경선준비위의 조기 발족이 후보군의 커밍아웃을 끌어냈다. ‘선수가 심판’으로 뛰는 불공정성을 막고자 잠재적 후보군들이 연달아 경선준비위 불참을 선언했다. 제1당의 사무총장을 맡았던 김선동 의원은 논란 끝에 10월 14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사의를 표명했다. 김 의원은 서울시장 후보 경선 준비를 위해 지난 9월 서울 마포에 개인 사무실을 별도로 냈다.
지상욱 여의도연구원장과 오신환 전 의원도 경선준비위 불참을 선언했다. 지 원장은 “여의도연구원장으로서 공정한 선거가 되게 돕는 것이 맞다”고 했다. 오 전 의원도 “시작부터 공정해야 한다”고 출마 여지를 남겼다. 사실상 출마를 공식화한 김 의원을 비롯해 서울시장 후보군이 연달아 커밍아웃함에 따라 국민의힘 내부 경선은 조기에 막이 오를 전망이다. 다만 경선준비위의 조기 발족을 둘러싼 당내 갈등은 부담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군은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차르(김종인 애칭)가 콕 집은 윤희숙 의원, 야권의 잠재적 대권 주자인 오세훈·나경원 전 의원, 홍정욱 전 의원 등도 후보군에 속한다. 야당 중진인 권영세·박진 의원도 서울시장 후보 하마평에 올랐다. 한 야권 인사는 이들과 관련해 “당에서 공식 요청하지 않는 한 움직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권영세·박진 의원은 18대 국회 이후 8년 만에 여의도로 복귀했다. 여의도에 재입성한 지 반년도 안 된 상황에서 또다시 선거에 나서기가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주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8년 5월 22일 서울 견지동 조계사 봉축 법요식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는 모습. 사진=이종현 기자
국민의힘도 여권 대비 후보군의 풀이 넓은 정도지, 서울시장 대세론을 형성한 주자는 없다. 야권 일각에선 거론하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 등은 김종인 비대위와 접점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나 다음 창업자 이재웅 전 쏘카 대표 등 경제통 영입설도 흘러나오지만, 국민의힘 관계자는 “접촉한 적도 없는 것으로 안다”며 선을 그었다.
내년 4월 재보선이 2011년 10·1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판과 유사할 것이란 전망도 여야의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당시는 이명박(MB) 정부가 레임덕(권력누수)으로 내몰렸던 정권 말기 때였다. 한나라당은 한때 선거의 차세대 여왕으로 불렸던 나경원 전 의원까지 출격했지만, 46.2% 득표율에 그쳤다.
최종 승자는 박원순 전 시장(53.4%). 박 전 시장은 당시 지지도 5%에 불과했지만, 혜성같이 등장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양보로 야권 단일후보 승리를 이뤄냈다. 내년 4월 보궐선거는 차기 대선을 1년 앞두고 치른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군은 예측 가능한 범위에 있다. 야권에선 9년 전과 마찬가지로, 단일후보 움직임이 일고 있다. 여야 모두 국민 신뢰도는 바닥이다. 기존 후보군이 아닌 ‘깜짝 인물’이 등장할 개연성이 있다는 얘기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