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을 3루타로? ‘꾀돌이’ 강기웅 멋쩍은 ‘고의 공과’ 비화

사이클링 히트 위해 홈플레이트 안밟아…상대팀 ‘침묵’으로 홈런 인정

[일요신문] 강기웅은 삼성 라이온즈 레전드 중 한 명이다. 현역 시절 주로 2루수를 맡았던 그는 유격수였던 류중일 LG 트윈스 감독과 함께 전설적인 키스톤 콤비를 이뤘다. 그런 그가 실업 야구 시절, 조금은 멋쩍은 비화를 남긴 적이 있다. ‘누의 공과’를 사이클링 히트의 발판으로 사용하려다 실패한 사연이다. 

삼성 레전드 강기웅은 고의로 누의 공과를 이용하려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1988년 10월 25일, 실업 야구 한국화장품 소속이던 강기웅은 제일은행을 상대로 안타, 2루타, 홈런을 차례로 쳤다. 스코어는 이미 크게 벌어져 승부는 한국화장품 쪽으로 기울어진 상황. 이제 경기의 초점은 강기웅의 사이클링 히트 달성 여부에 쏠렸다. 홈런보다 더 어렵다는 3루타를 남겨 뒀다는 게 유일한 걸림돌이었다. 

마지막 타석에 선 강기웅은 또 다시 큼직한 타구를 날렸다. 공이 펜스에 맞았다면 3루타에 도전할 수도 있을 듯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의도와 다르게 타구가 외야 담장을 넘어가 버렸다. 홈런을 치고도 기쁘지 않을, 희한한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순간 ‘꾀돌이’로 유명했던 강기웅의 머릿속에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누의 공과였다. 홈런을 치고도 홈플레이트를 밟지 않으면 해당 베이스의 점유권을 상실해 3루타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강기웅은 1루와 2루, 3루를 차례로 밟은 뒤 보란 듯이 홈 플레이트를 밟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누가 봐도 고의성이 다분한 ‘공과’였다. 

그러나 강기웅이 하나 잊은 게 있었다. 누의 공과는 반드시 상대 팀이 어필해야 성립되는 기록이라는 점이다. 이미 큰 점수 차로 뒤져 있던 데다 이날 맹활약한 강기웅의 ‘고의 공과’에 기분이 상한 제일은행은 그대로 침묵했다. 홈 플레이트 공과를 바로 눈앞에서 지켜본 제일은행 포수조차 꿈쩍하지 않았다. 심판은 그대로 강기웅의 홈런을 선언했고, 그가 그토록 바랐던 사이클링 히트 기록은 실패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