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빛 바랠수록 금은 더 반짝반짝
올해 하반기 경제의 최대 테마는 ‘물가’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기업실적 개선과 외국인 투자, 그리고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으로 통화량이 크게 늘었다. 하반기 공공요금 인상도 줄줄이 예고돼 있다. 이처럼 물가지표가 상승하자 한국은행은 금리인상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고, 중국의 위안화 절상 방침으로 원-달러 환율도 하락이 유력하다. 전세계적으로 경기회복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원유에 대한 수요가 회복되고 있다. 이는 가장 강력한 물가 자극요인인 유가를 부채질하고 있다. 물가상승기, 즉 인플레이션기 유망 투자처 세 가지를 소개한다.
영원한 인플레 강자
금값은 이미 많이 올랐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아직도 금에 대한 투자매력은 여전하고, 각국의 출구전략이 지연돼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다시금 조명 받을 만하다.
금은 전통적으로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 강세를 보이는 흐름이었으나 최근에는 이런 동조화도 많이 약해졌다. 현재 달러인덱스(세계 주요 통화 대비 달러화의 평균적인 가치)를 구성하고 있는 통화 중 비중은 각각 유로화 58% 엔화 14% 파운드화 12%로, 이 세 화폐가 전체의 84%를 차지한다. 즉 달러는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면 강세, 강세를 보이면 약세를 보이는 구도다.
그런데 이는 상대적인 가치의 흐름일 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각국의 공격적인 화폐공급과 재정확대 정책 때문에 통화 자체의 가치는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부터 현재까지 달러인덱스는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면서 거의 제자리인 반면 금 가격은 상승세를 지속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배성진 현대증권 연구원은 “현재 전세계 금융자산의 규모가 120조 달러 수준인데 반해 금 관련 투자자산의 규모는 불과 5000억 달러로 5%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주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 변동성이 작아 투자 매력도가 낮을 수 있고, 또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지속하면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도 약화로 투자 유인이 약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금은 화폐가치가 절하되면 절하될수록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금은 가치 저장수단인 동시에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회피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 관련 투자 매력도에서는 실물을 보유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이것이 어렵다면 금 ETF, 금 예금, 금 관련 펀드에 대한 투자 순으로 매력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채권으로 지키기
물가연동국채는 원금과 이자지급액을 물가에 연동시킨 국채를 말한다. 원금은 기간별 물가 수준에 따라 조정되고, 이자는 매 6개월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결정된다. 즉 물가가 오르면 원리금이 증가하기 때문에 최근처럼 경기 회복으로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지는 시기에 매력이 커진다.
물가연동국채 원금은 채권 액면가에 채권만기일 물가지수(CPI)를 채권발행일 물가지수로 나눈 값(물가계수)을 곱해 구할 수 있다. 이자 역시 액면가에 지급일과 만기일 간 물가변동률, 그리고 표면금리 등을 곱해 구해진다.
보통 경제가 플러스 성장을 하는 한 물가는 오르는 게 보통이지만, 만에 하나 떨어질 수도 있다. 물가연동국채 보유기간 중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2007~2008년 발행됐던 물가연동국채는 만기일 물가가 떨어질 경우 원금이 보장되지 않았지만 최근 발행된 물가연동국채는 물가가 떨어져도 최소한 원금이 보장된다.
절세효과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물가연동국채는 이자소득의 경우 일반 채권처럼 원천징수(이자소득세 15.4%)되지만, 원금 상승분은 비과세된다. 물가연동국채에 1000만 원을 투자해 소비자물가가 연 2.5% 올랐다면 채권의 원금은 1025만 원으로 늘어나는데 원금증가분인 25만 원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원금 상승에 따른 비과세 수익과 안정적인 이자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에게 적합하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약 금융소득이 연간 4000만 원이 넘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들은 절세 효과는 더 커질 수 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시장 유통물량이 많지 않아 중간에 사고팔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물가가 급등하지 않는 한 중도 해지를 통한 매매차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신동준 동부증권 투자전략본부장은 “경기회복 속도가 빠르지 않고,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글로벌 경기회복 둔화 가능성으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인상은 4분기에 시작해 천천히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다른 나라와 과거 사례를 고려할 때 금리인상기의 물가연동국채 투자는 동일 만기 국고채 대비 초과수익을 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주식으로 불리기
물가상승에 따른 금리인상이 이뤄질 경우 원화강세는 불가피하다. 외화 환산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는 수출주에는 부담요인이다. 그런데 내수주는 상대적으로 괜찮은 편이다. 원화 강세만큼 수입제품에 대한 구매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출업체는 원가 상승 압력을 제품가격에 전가시키기 어렵다. 가격 전가시 판매가 부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내수주는 비교적 가격 상승을 소비자가격에 반영하기 쉽다. 특히 대형 유통업체의 경우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가격결정력이 강하다. ‘밑지는 장사는 없다’는 말이 있다. 통상 한 번 가격이 상승하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대형 유통업체로 대변되는 내수주는 이익률이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가장 좋은 예가 은행이다. 물가상승으로 인한 금리인상기에 은행들의 이익이 늘어난다는 게 통설이다. 원가에 해당하는 예금금리는 ‘찔끔’ 올리는 대신, 제품가격에 해당하는 대출금리는 ‘팍팍’ 올린다. 시장 지배력이 있는 만큼 일정한 이익을 반드시 확보하는 셈이다. 보험사도 사업비 등을 올려 금리인상에 따른 자금조달 비용 상승분을 충당해 일정 수준 이상의 이익을 유지한다. 특히 채권 만기운용을 주로 하는 생명보험사의 경우 물가상승으로 인한 금리인상이 자산운용수익률을 제고시켜 이익률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수출주 가운데서도 시장지배력이 있는 완제품 제조사의 경우 투자매력이 부품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각될 수 있다. 물가상승으로 원가가 오르면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들에게 원가절감을 요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즉 대기업은 일정 수준 이상의 이익률을 확보하기 위해 하청기업들을 쥐어짤 수밖에 없다. 다만 부품주 가운데서도 글로벌 시장경쟁력을 갖거나,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진 경우 원가협상에서 유리한 만큼 이 같은 원가절감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