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임직원 등 배웅 속 영결식 진행…자택·리움·화성사업장 등 들른 뒤 수원 선산에 영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발인이 진행된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운구차량이 나오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영면에 들다
10월 28일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지하 강당에서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영결식이 비공개로 진행됐다. 오전 6시부터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는 취재진이 모여들었다. 삼성 관계자들과 경호원 등이 장례식장 주변을 삼엄하게 통제했다. 외부인과 취재진의 출입은 철저히 제한됐다. 장례식장 진입을 시도한 일부 조문객이 경호원에게 저지당하며 소란이 일기도 했다.
이날 오전 7시 20분께 유족은 영결식을 위해 장례식장 지하주차장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암센터로 이동해 지하 강당으로 들어갔다. 암센터는 빈소가 차려진 장례식장에서 도보 3~5분 정도 거리다. 영결식은 이수빈 전 삼성생명 회장의 약력 보고와 고인의 고교 동창인 김필규 전 KPK 회장의 추억, 추모영상 상영, 참석자 헌화 순서로 진행됐다.
이수빈 회장은 약력보고를 하면서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산업의 초석을 다지고 신경영을 통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고인의 삶을 회고했다. 보고 중에 ‘영면에 드셨다’는 부분에서는 목이 메인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김필규 전 회장은 고인의 어린 시절과 반도체산업 진출을 아버지인 이병철 선대회장에게 진언한 일화 등을 회상했다. 이어 김 전 회장은 “‘승어부’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말로, 이것이야말로 효도의 첫걸음이다. 이 회장보다 ‘승어부’한 인물을 본 적이 없다”며 “이 회장의 어깨너머로 배운 이재용 부회장은 새로운 역사를 쓰며 삼성을 더욱 탄탄하게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등 유족들이 28일 오전 서울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강당에서 열린 영결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영결식에는 부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등 유족과 이 회장의 동생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과 조카인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 등 친인척들이 참석했다.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정현호 사업지원TF 사장,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등 전·현직 삼성 임원들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등 재계 인사들도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이날 오전 8시 20분께 영결식을 마친 이재용 부회장과 유족들이 암센터에서 나왔다. 이부진 사장은 눈물을 보였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이 부회장의 부축을 받으며 버스에 올라탔다. 유족은 미니버스에 탑승해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이후 발인까지 마친 뒤 오전 8시 50분께 장례식장에서 이건희 회장의 운구차가 출발했다. 그 뒤를 유족이 탄 대형버스 등이 운구 행렬을 이루며 따랐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운구 행렬이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 방문했고, 임직원들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사진=허일권 기자
장례식장을 나선 운구 행렬은 고 이건희 회장의 발자취가 담긴 장소를 차례대로 들렀다. 이날 오전 9시 30분께 운구 행렬은 이 회장이 거주하던 용산구 한남동 자택과 이태원동 승지원, 리움미술관 등을 정차하지 않고 차례로 돌았다. 고인이 2014년 5월 한남동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후 6년 5개월 만에 방문한 것이다. 승지원은 이병철 선대회장의 집을 개조한 삼성그룹의 영빈관으로 생전 이건희 회장이 집무실로 자주 이용한 곳이다.
운구 행렬은 한남동 일대를 천천히 돈 후 삼성전자 기흥‧화성 반도체사업장으로 향했다. 화성사업장은 이건희 회장이 사재까지 출연해가며 일군 곳이다. 이 회장은 1984년 기흥 삼성 반도체통신 VLSI 공장 준공식부터 2010년 화성사업장의 16라인 메모리 반도체 기공식까지 직접 참석해 삽을 떴다. 이듬해 준공식까지 총 8번의 공식 행사에 참석할 정도로 애착을 가진 사업장이다.
이날 오전 11시 5분께 운구 행렬은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H1 정문으로 들어섰다. 한 차량 위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는 고인이 생전 화성사업장을 찾았을 때 모습이 담긴 영상이 흘러나왔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임직원들은 국화 한 송이씩을 손에 들고 고인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사업장 입구에는 인근 주민들도 나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사업장부터 주변 길가에 고인을 기리는 현수막들로 가득했다. 현수막은 “회장님의 위대한 여정, 역사와 함께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반도체 100년을 향한 힘찬 도약을 회장님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반도체 신화 창조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회장님의 발자취를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흙으로 다시 돌아간 한국 재계 거목
이날 오전 11시 22분께 운구 행렬은 화성사업장 H3 문으로 사업장을 빠져나와 장지인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의 가족 선영으로 향했다. 운구 행렬은 오전 11시 55분께 장지에 도착했다. 도로에서 선영으로 향하는 이면도로 입구에는 삼성 관계자들이 경광봉을 들고 외부 차량의 출입을 통제했다. 이 회장의 묘역에서 200m가량 떨어진 곳에도 삼성 관계자들이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 지호 씨가 고인의 영정을 들고서 목탁을 든 스님들을 따라 묘역으로 걸어 올라갔고 자녀들과 삼성그룹 임원들이 그 뒤를 따라 걸어갔다. 묘역에서 장례는 1시간가량 진행됐다. 재계의 거목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그가 그렇게 흙으로 돌아갔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