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위 심의 없이 쌍방 가해 판단, 당사자 간 조정 처리…학교 측 “상담 등 최선 다해”
집단 따돌림을 겪던 A 양은 20장의 유서를 남기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B 씨 제공
사건의 시작은 A 양(15)이 중학교 2학년이 되던 2019년 초부터 시작됐다. 경기도 시흥시의 한 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A 양은 같은 반 7명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도가 심하지 않았다. 7명 가운데 일부는 A 양과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해 친분도 있는 사이였다. 평소 활발한 성격의 딸이었고 중학교 1학년도 아무런 문제없이 지나갔기에 엄마 B 씨도 딸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 2019년 6~7월 무렵이었다. 딸은 아침이 되면 미적거리며 등교 시간을 늦췄다. 종종 “학교를 가기 싫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아주 늦은 밤 들어와 조용히 잠드는 날도 있었다. B 씨의 설득 끝에 A 양은 “힘들다”며 집단 따돌림 사실을 털어놨다. 취재결과 A 양은 이미 2019년 5월 이런 사실을 담임교사에게 털어놨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A 양이 도망칠 곳은 없었다. 괴롭힘의 정도는 점점 심해졌다. 무리에서 배제되고 무시당하거나 욕설을 듣는 것으로도 모자라 급기야 소수의 친구마저 A 양과 놀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한 학생은 A 양과 급식을 함께 먹은 뒤 특정 학생들로부터 직접 “A 양과 같이 밥 먹지 말라“ ”가깝게 지내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3학년 진학을 앞두고 B 씨는 학교에 “아이들을 분리해달라”고 요구했다. B 씨의 요구로 A 양은 갈등을 겪었던 학생 일부와는 다른 반이 되었으나 이마저도 실효성 있는 조치는 아니었다. 해당 학교는 한 학년 정원이 40여 명으로 학년당 학급 수도 2개밖에 되지 않았다. 한 학년 여학생의 수는 고작 20여 명이었다. 집단 따돌림이 발생할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가 전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였다. A 양은 쉬는 시간, 점심시간 등 곳곳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무리를 마주쳐야 했다.
코로나19로 등교를 하지 않는 날이 많았음에도 어쩌다 학교를 가야 하는 날이면 A 양은 매우 괴로워했다. 3학년으로 진급한 뒤에는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한 위클래스 상담을 24차례에 걸쳐 받기도 했다.
A 양의 상담일지에는 “교우관계로 힘들다” “걷고 있는데 아이들이 어깨를 치고 감” 등 그동안의 피해 내용이 쓰여 있었다. 늦은 밤 A 양이 상담교사에게 ‘죽고 싶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6월 실시한 심리검사에서는 우울척도, 불안척도 등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는 결과가 나왔다. 도와달라는 간절한 신호였다. 상담교사는 A 양의 상태를 담임교사와 B 씨에게 알리고 병원치료를 권하기도 했다. A 양은 지난 7월 우울증 진단을 받고 정신과 약을 복용해왔다.
집단 따돌림을 겪던 A 양은 20장의 유서를 남기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B 씨 제공
멀어지는 친구들, 계속되는 수군거림, 어려운 학교생활, 배신감 등으로 결국 A 양은 지난 9월 24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행복하고 싶다’ ‘오늘은 꼭 죽자’ ‘그래도 나 은근 괜찮은 사람인데 나만 그런가’ ‘사람은 정말 믿으면 안 된다. 믿어서 상처받는 것이 너무 많다’ 등 20장의 유서가 발견됐다. A 양은 이전에도 두 번의 자살을 시도한 전력이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였던 것이다.
딸의 유서를 본 B 씨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지랄하네’ ‘어장관리하네’ ‘걸레같은 X’ ‘남자애들한테 꼬리치고 다니는 X’ ‘틱X’ 등 딸이 들었다는 욕설을 학교 아이들에게 듣게 됐다. 복수의 아이들이 전한 욕설의 내용은 제각각이었다. 평소 눈을 자주 깜빡이는 버릇이 있던 A 양의 행동을 두고 ‘틱 장애가 있다’며 A 양이 지나가면 ‘틱X’이라는 욕설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상담내용 따돌림만 있는 건 아냐”
그럼에도 학교폭력자치위원회(학폭위)는 열리지 않았다. 당시 학교는 A 양의 사건을 쌍방 가해로 처리했다. 2019년 7월 자신을 향한 욕설을 들은 A 양이 무리 가운데 한 명을 불러 지속적인 욕설에 대한 이유를 따지는 과정에서 싸움이 일어난 까닭이다. B 씨 역시 이 사건의 경위를 묻는 과정에서 딸이 집단 따돌림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B 씨는 2019년 8월 진상규명을 위한 학폭위 개최를 요구했다. 그러나 학폭위는 열리지 않았다. B 씨는 “학교에서 ‘학폭위를 열 경우, 딸아이도 처벌 가능성이 있다’면서 ‘알아서 수습하겠다’고 해 학교의 조치를 따랐다”고 말했다. 사건이 커져 모든 학생들이 알게 되면 더 큰 따돌림을 당할까 하는 우려도 발목을 잡았다.
결국 학교는 당사자 간 조정을 통해 사건을 처리했다. 2019년 9월부로 개정된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르면 학교는 피해자 요구 시 학폭위를 반드시 개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B 씨가 학폭 신고를 한 날짜는 2019년 8월로 법 개정 전이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상호사과를 하고 관계가 호전되어 학폭위 심의를 받지 않고 학교장 자체 해결로 종결된 사안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평소 A 양과 친분이 두터웠던 한 학원 교사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 양이 평소 배려가 깊은 친구였다. ‘사이가 안 좋은 아이 가운데 명문대를 희망하는 친구가 있다. 학폭위 기록은 학생부에 남는다는데 나중에 그 친구가 대학을 못가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을 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A 양 사망 후 학교장은 유족에게 자살예방키트와 책을 전했다. 유족은 “가족을 잃은 지 1주일도 안 된 사람에게 할 수 있는 행동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진=B 씨 제공
딸을 잃은 뒤 겪어야 했던 황당한 일도 털어놨다. A 양이 사망한 지 며칠 뒤, 학교장이 찾아와 자살예방키트와 책 등을 주고 갔다는 것이다. B 씨는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유족에게 자살예방키트를 준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교는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교감은 “학교는 사안이 발생한 뒤 지금까지 24회에 걸친 전문상담교사의 상담과 치료, 관계회복프로그램을 실시했다. 학교에서도 A 양에게 적지 않게 신경을 썼는데 이렇게 돼 유감”이라면서도 자살예방키트에 대해서는 “A 양 사망 후, 유족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여러 번의 회의를 거쳐 나온 결과였는데 시기적으로 적절하진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담일지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상담 내용이 전부 따돌림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며 “A 양이 여러 힘든 일이 있었던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2학년 당시 담임교사는 “2019년 5월 A 양이 학교생활이 힘들다고는 했다. 하지만 이후 아이들끼리 일부 해결이 됐다”면서 “피해자라는 것은 (B 씨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당시 학폭위 심의는 쌍방 가해로 진행됐다. 다만 자세한 내용은 학년부장 교사나 학교 측에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며 말을 아꼈다.
한편 경기 시흥시교육지원청 장학사는 “경미한 사건은 학교장 자체 해결 행정 제도가 있었다”면서도 “다만 최초 신고가 학교폭력예방법 개정 이전에 들어왔기 때문에 피해자가 원하면 학폭위를 다시 열 수 있다”고 말했다. A 양의 사건은 학폭위 심의를 거쳐 다음 달 다시 진행될 예정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