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사망 신고 중 연관성 인정 단 1건…전문가들 “코로나 시국, 그래도 접종해야”
#기저질환 유무 중요 척도
최근 독감 백신을 무료접종한 뒤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라 보고되면서 보건당국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천, 전북 고창, 대전, 대구, 제주 등에 이어 경기도에서 9번째 사망자가 나왔다. 이들은 모두 독감 예방접종을 한 뒤 숨졌다. 10월 21일 경기도에 따르면 이날 광명시보건소에서 독감 백신을 접종한 서울 시민 1명과 고양시보건소에서 접종한 1명 등 2명이 숨졌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같은 날 대구에서도 백신을 맞은 78세 남성이 숨졌다. 그는 20일 오후 12시쯤 동네 의원에서 무료 백신을 맞은 뒤 점심 식사를 하던 중 이상 증세를 나타내 오후 1시 30분쯤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21일 새벽 12시 5분께 유명을 달리했다.
앞서 제주에서는 20일 오후 11시 57분 68세 남성이 숨졌다. 그는 19일 오전 9시쯤 무료 백신을 접종한 후 이상증세를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19일에는 전북 고창의 78세 여성과 대전의 83세 남성이 백신 접종 이후 사망했다. 78세 여성은 19일 오전 9시쯤 동네 의원에서 독감 백신을 맞은 뒤 이튿날 오전 7시쯤 숨진 채 발견됐다. 대전 83세 남성은 20일 오전 10시쯤 백신을 맞고 같은 날 오후 3시쯤 숨졌다.
질병관리청은 아직까지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특히 사망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고령이며 고혈압, 파킨슨병, 만성폐쇄성폐질환 등의 기저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다른 원인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 강남의 한 내과의는 “백신 접종 이후 사망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원인이 백신에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기저질환 유무는 사망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척도이므로 명확한 사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보고된 인천의 18세 고등학생은 특별한 기저질환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고등학생은 14일 인천의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무료 독감 백신을 맞고 이틀 만인 16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평소 알레르기 비염 이외에 특이 질환이 없었고, 접종 전후로도 이상 반응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서 한바탕 난리 난 ‘불량 백신’
전문가들은 독감 백신 접종과 사망 사례의 연관성 조사가 우선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백신 접종 이후 사망에 이르게 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중국은 이미 2018년 ‘불량 백신 사태’로 홍역을 겪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백신 제조업체인 ‘우한 생물제품연구소’는 파상풍인 DPT 예방백신의 생산 기록을 조작한 약품을 중국 전역에 유통시켰다. 백신 접종 이후 유아가 사망하자 정부가 원인 조사에 나섰고 그 결과 어린이 수십만 명이 불량 백신을 맞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당시 중국 시민들은 무료로 제공되는 중국산 백신이 아닌 수입 백신을 맞겠다며 사립 병원으로 몰렸다. 일부 시민은 “해외에서 백신을 접종하겠다”며 홍콩과 싱가포르 등을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독감 예방접종 뒤 사망하는 사례가 드물게 있었다. 2009년에는 독감 예방접종 60~80대 노인 8명이 숨졌고, 2013년에는 여수에서 독감 예방 백신을 맞은 79세 남성이 접종 후 8시간 만에 사망했으나 당시 질병관리본부 조사 결과 사망원인은 독감 예방접종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에도 보건소에서 독감 예방접종 후 사망한 사례가 10월 이후 4건이 접수됐다.
그러나 여러 건의 사망 신고 가운데 백신으로 인한 사망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단 1건뿐이다. 2009년 10월 65세 여성이 예방접종 이후 팔과 다리의 근력이 떨어지는 증상 등으로 입원 치료를 하던 중 폐렴 증세가 겹쳐 이듬해 사망한 사례다. 나머지 사례들은 심근경색, 내인성급사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결론났다.
이처럼 독감 예방접종 후 사망자가 나오는 사례는 예년 발생하고 있으나 실제 그 원인이 백신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는 사례는 적었다. 21일 현재 9명의 사망자가 나왔으나 이번 조사를 통해 백신과의 연관성이 밝혀지지 않을 경우 백신으로 인한 사망자로 기록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독감 백신 접종과 사망 사례의 연관성 조사가 우선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앞서의 내과의는 “과거에도 독감 예방주사를 맞은 이후 사망했다는 신고 사례는 종종 있었으나 올해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동안 백신에 문제가 있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확인된 사례는 1건뿐이었다. 예방접종을 하지 않아 독감이 퍼질 경우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시기에 더 위험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예방의학과 교수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을 하고 바로 사망한 사례를 본 적은 없다”면서 “부검 결과도 봐야 하고 역학조사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2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브리핑에서 “무료접종 독감 백신에 대한 여러 가지 국민들의 우려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엄중하게 지켜보고 있다”며 “질병관리청을 중심으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 등의 조사가 진행 중이다. 국민들이 보다 안심하고 예방접종을 받으실 수 있도록 철저하게 조사해 관련 정보를 최대한 신속히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